상속세 없는 호주, 속도위반 벌금 200만원 가능한 이유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4. 2. 1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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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상속세와 벌금, 선거제 등 호주에서 배운 세가지
남반구인 호주 시드니에서 찍은 보름달. 달의 가장 밝은 부분인 티코(충돌구, 붉은색 화살표)가 왼쪽 위에 보인다. 북반구에서는 이 티코 부분이 오른쪽 아래에서 관측되는 차이가 있다. /사진=오동희 선임기자, 갤럭시s 22 울트라 촬영.

2년 전 약 1년이라는 길지 않은 호주 생활 중 많은 문화 차이를 느꼈지만 그 중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호주의 상속제와 벌금, 그리고 선거제도였다. 남반구에 속해 있는 호주는 북반구와 여러가지 점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달의 모양부터가 뒤집혀져 있다. 배수구에 물 회오리가 생기는 방향(코리올리 효과)이 북반구와 반대인 시계방향이라는 차이 등은 익히 학습으로 알고 있었지만 정치·경제·문화에서도 '틀린 것'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도록 하는 요소들이 많았다.

우선 대물림(상속)의 인식 차이다. 호주는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속세가 없는 14개국 중 가장 앞서 1977년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Capital gain tax)를 도입한 나라다. 당시 도입 이유는 경제활성화의 목적이었다. 상속·증여세 부담으로 막힌 돈의 흐름을 뚫을 목적으로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 도입한 것이 자본이득세다.

예를 들어 농부가 사망한 선조로부터 경작할 토지와 소, 쟁기 등을 물려받아 농사를 계속 지을 때는 이 상속재산에 대한 세금납부를 미뤄주는 제도다. 이 농부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고 이를 팔 때 선조가 이 자산(토지, 소, 쟁기)을 취득한 가격에서 현 시세의 차익에 대해 자본이득세를 매긴다. 각주마다 다르지만 세율은 25~30% 가량이다.

팔지 않고 농사를 계속 지을 경우엔 자본이득세는 이연하고, 그 토지에서 나오는 1년의 생산품(배당)에 대한 소득세(최고세율 45%)를 내는 방식이다. 상속세를 내느라 농사 지을 기반을 잃는 경우를 막기 위한 조치다. 토지와 소·쟁기의 절반을 미리 떼어서 세금을 걷는 우리의 유산세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그 생산구조를 유지한 채 얻는 이익에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응능부담(應能負擔: ability-to-pay)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삼성의 12조원이나 넥슨의 6조원 상속세를 일시에 과세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인 배당소득이나 자본이득세로 전환해 영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이유에서 호주는 이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 대기업에서 벌어지는 각종 논란의 중심 이슈가 상속과 관련된 것임을 감안할 때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상속세 폐지에 따른 세수결손은 준법질서 확립을 통한 세수확보와 그 파급효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절감으로 감당할 수 있다. 호주가 취하고 있는 방식이다.

상속세와 증여세가 없는 호주는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위법행위에 대한 벌금이 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벌하는 게 호주식이다.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운전 중 휴대폰을 만지는 것만으로 퀸즈랜드주는 1000호주달러(한화 약 86만 9780원)의 범칙금을 물린다. 이러다보니 호주에서는 도심에서 운전 중 휴대폰에 손을 대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이로 인한 교통사고가 현격히 줄어 사회적 비용이 크게 감소한다.

우리의 경우 시속 20km 이하의 속도 위반일 경우 3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되는데 그치지만, 호주에선 10km~20km 사이 위반시 7배인 20만원 이상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 우리는 41km~60km 이하엔 9만원이 부과(벌점 30점)되지만 호주는 45km 초과시엔 200만원이 넘는 벌금이 부과되고, 차량은 압수된다. 스쿨존에서의 위반은 더욱 과중하게 처벌되며, 휴일에 위반할 경우 단속공무원의 휴일인건비를 감안해 벌금이 2배로 부과되는 주도 있다.

국내의 경우 50km 도로에서 규정 속도를 지키는 운전자는 거의 없다. 단속 카메라가 없는 지역의 대부분은 50km를 훌쩍 뛰어넘는 속도로 달린다. 오히려 규정속도를 지키는 운전자에게 "빨리 달리라"는 뒷차의 상향등이나 경적이 울리기 일쑤다. 법을 지키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호주에는 이런 운전자 위협행위도 엄하게 처벌한다. '한번 걸리면 끝장'이라는 인식이 들 정도로 범칙금을 많이 물린다.상속세가 없는 대신 위반시 많은 벌금으로 부족한 세수를 채우고, 안전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줄여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식이다.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스쿨존 사고나 음주사고가 호주에서 드문 이유다.

상속세 폐지와 이런 비싼 범칙금에 대한 반발을 억누를 수 있는 이유는 호주의 선거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주는 연방 선거의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권자들에게 벌금을 물리는 의무투표제를 시행하는 전세계 19개 국가 중 하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투표는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게 그들의 인식이다.

호주는 1924년 연방차원에서 의무투표제도를 도입하고 18세 이상 호주시민은 정당한 사유(질병 등) 없이 투표를 하지 않을 경우 20호주달러(약 1만7400원)의 벌금을 매긴다. 시민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일부 논란이 있긴 하지만 호주는 이를 통해 50%대의 투표율을 95% 이상 끌어올리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해소하는 효과를 거뒀다.

또 호주는 의원 선거시 선호투표와 과반수 득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후보자 중 자신이 선호하는 사람의 순서를 매기는 방식의 선호투표를 통해 50%+1표의 득표자(과반 미달시 꼴찌의 표에서 두번째로 선호하는 사람이라고 기표된 표를 그 후보에게 넘기는 방식)가 나올 때까지 표를 계산한다.

이를 통해 최소한 유권자의 절반 이상은 '싫어하지 않는 후보자'를 선출하게 되는 방식이다. 상대방을 적대시하고 반목하는 정치풍토에서 대화와 화합의 정치로 가는 길에서 한번은 들여다 볼 방식이다. 한국과 호주가 서 있는 방향은 서로 반대일지 모르지만 선진민주사회라는 지향성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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