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년 전 시작된 ‘하늘 맛집’…채식·분식·전문점 메뉴까지 풍성
한국은 1969년 대한항공서 시작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으로 국외여행 수요가 크게 늘면서 항공사들의 고객 유치 경쟁이 기내식 분야로까지 번지고 있다. 유명 식당 또는 요리사들과 협업해 내놓은 메뉴에서부터 분식 등 간편식, 채식 등을 선보이는 항공사들이 늘면서 ‘하늘 맛집’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기내식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대한항공의 한국식 채식(비건) 메뉴다. 전통 사찰음식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식물성 재료와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우엉 보리밥과 버섯 강정, 탕평채, 매실 두부 무침이 기내식으로 제공된다. 일등석 및 프레스티지 클래스에서는 된장 마 구이와 은행 죽도 서비스된다. 메뉴는 노선과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이 밖에도 서양 채식, 동양 채식, 인도 채식, 생야채식 등 6종류의 채식 메뉴도 최근 새롭게 도입했다.
이 항공사는 지난해 3월부터 고등어조림과 제육 쌈밥을, 7월에는 불고기 묵밥과 메밀 비빔국수, 짬뽕도 선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제육쌈밥은 다양한 야채를 기내에서 즐길 수 있는 건강메뉴로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는 것이 대한항공의 설명이다. 고등어조림은 퍼스트 클래스, 프레스티지 클래스 승객들을 대상으로 제공된다.
제주항공은 두 달 전부터 국제선 기내식 새 메뉴로 소갈비찜 도시락과 떡갈비 도시락을 새롭게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 메뉴는 한식 전문점 삼원가든과 협업해 만든 것으로 사전에 주문해야 한다. 도시락 가격은 각각 1만5천원, 1만2천원이다.
에어서울은 일식 전문 요리사인 정호영씨와 협업해 기내식을 출시했다. 통통 새우살 샐러드 우동, 간장계란버터 우동, 고기 마제 우동이 그것이다. 이 메뉴가 인기를 얻자, 최근에는 김치비빔우동과 차슈덮밥을 기내식으로 새롭게 내놓았다.
분식을 기내식으로 내놓은 항공사도 있다. 진에어는 10~20대 승객을 겨냥한 열무비빔국수, 김치비빔국수, 떡볶이·튀김 등의 기내식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기내에서의 ‘한 끼’를 넘어 이제는 항공사 경쟁력으로도 평가받는 기내식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최초의 기내식은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서는 독립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1919년,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오가는 노선을 운항하던 ‘핸들리 페이지 트랜스포트’란 항공사가 샌드위치와 과일이 든 박스를 3실링에 판 것이 최초의 기내식으로 꼽힌다.
항공기 안에 최초로 주방을 설치한 것은 유나이티드항공이었다. 이 항공사는 1935년 엔진의 열을 이용한 가열 장치를 비행기 주방에 설치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따뜻한 기내식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1969년 대한항공이 취항하면서 기내식 서비스가 시작됐다. 다만, 메뉴는 샌드위치와 음료 등 간단한 음식 위주였다. 대한항공 기내식이 본격화된 것은 1972년께로 추정된다. 당시 신문 광고를 보면, 대한항공은 양식 메뉴인 식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일과 음료, 술 등을 승객들에게 기내식으로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대한항공은 1975년 경기 김포에 기내식 전문 공장을 세웠고, 이때부터 다양한 기내식 메뉴 개발 등에 나섰다.
양식 위주였던 기내식에 한식이 접목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부터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을 널리 알리기 위한 시도에서였다. 대한항공은 이때부터 갈비찜, 설렁탕, 김밥 등 한식 개발에 나섰다.
대한항공의 기내식 대표 메뉴인 비빔밥은 이런 노력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비빔밥이 전 좌석 승객에게 제공된 것은 1997년부터다. 이 메뉴는 이내 세계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998년 기내식 분야 최고상으로 꼽히는 머큐리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1998년 한국을 찾은 미국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대한항공 기내에서 비빔밥을 먹은 뒤, 그 맛에 반해 국내 체류 중 호텔에서 수차례 비빔밥을 먹었다는 일화도 있다.
기내식은 지상과 하늘 위에서 먹었을 때 차이가 없을까? 일반적으로 기내식은 지상에서 먹을 때보다 항공기에서 먹을 때 맛이 덜한 것으로 분석된다. 높은 고도에서는 미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내 습도도 낮아 코를 마르게 해서 후각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행기 엔진의 강한 소음이 청각에 영향을 미쳐 사람의 뇌가 맛을 느끼는 데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는 분석도 있다. 앞서 미국 코넬대 연구진은 달걀 스크램블과 감자 샐러드 등 기내식 맛이 지상에서 먹을 때와 다른 이유는 ‘소음’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엔진소음이 심한 항공기에서 음식을 먹을 때 단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 반면 짠맛에 가까운 감칠맛은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는 이유에서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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