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마저 ‘노인과 바다’…국가 소멸 부르는 지방 소멸 해법은 없나[놓치지 말아야할 한경비즈니스⑦]

2024. 2. 1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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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비즈니스는 1년에 두 번 합본호를 냅니다. 추석과 설날 2주치를 한꺼번에 낸다는 말입니다. 기자들은 이때 약간은 숨을 돌릴 여유를 갖습니다. 물론 온라인 기사도 써야 하기 때문에 마냥 맘이 편할수 만은 없지만요. 이 정도로는 좀 아쉽다는 독자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한경비즈니스 편집진은 올해 썼던 기사 가운데 ‘시간의 간섭’을 받지 않는 기사들을 추려봤습니다. 공부해두거나 읽어두면 상식이 되거나, 트렌드를 이해할 수 있는 기사입니다. 이를 한곳에 정리했습니다. 연휴 기간 영상에서 벗어나 활자의 세계로 눈을 돌린 독자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편집자 주>

부산 영도구 봉래동5가의 빈집 밀집지역. 2019년 이곳 골목길 세 가구 중 한 가구가 녹슨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사진=한국경제

“국민 3명 중 1명은 고령자, 세 집에 한 집꼴로 빈집이 즐비하다. 치매(인지장애)환자가 치매환자를 돌봐야 하고 혈액이 부족해 수술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뉴스를 장식한다. 화장시설과 납골시설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은 소멸 위기다. 10년 후에는 현재 주거지의 20%에 달하는 영토에 아무도 살지 않게 된다. 고령자 인구가 정점에 달하면 빈곤한 노인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재정은 무너지고, 국가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게 되고 마침내 빈 땅이 되어가는 영토는 외국인들이 차지하기 시작한다.”

일본의 인구·사회보장정책 전문가 가와이 마사시는 2017년에 쓴 저서 ‘미래 연표’에서 인구 감소 사회의 충격적 결말을 이같이 예고했다. 그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정확하고 체계적인 분석으로 지방 소멸에서 사회 파탄, 국가 소멸에 이르는 파국을 경고했다. 저출산·고령화가 총탄 한 발 없이 한 나라를 소멸시킬 수 있는 재난이라는 주장이다. 지나친 상상일까. 한국에서는 이미 현재 진행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소멸 가속화하는 한국

“인구 다 빠져 나가고 노인과 바다된 지 오래예요. 사하구에서는 지팡이 없으면 입장 불가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니까요.” 부산 토박이 동규(38) 씨는 최근 부산에 대형마트가 하나둘 사라지고, 초고층 주거만 우후죽순 생긴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나간 자리에 인프라는 사라지고, 아파트만 지어지는 게 못내 속상하다고 했다.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광역시의 상황이 심각하다. 한국고용정보원이 펴낸 ‘지방 소멸위험지역의 최근 현황과 특징’ 보고서를 보면 올해 2월 기준 부산의 16개 기초자치단체(군·구) 중 7곳(43%)이 ‘소멸위험’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중·서·동·영도구 등 4곳이 소멸위험지역이었지만 올해는 남·사하·금정구가 추가됐다. 부산 시민들조차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고 소개할 정도다.
 
10월 말 주민등록 인구 기준 330만 명도 붕괴했다. 2020년 340만 명 붕괴 이후 불과 3년 만이다. 특히 부산에서는 생산연령인구(15~64세) 감소 속도가 전체 인구보다 월등히 빠른 상황이다. 지역 소멸에 대한 위기 의식이 짙어지면서 부산 내에서 부·울·경 메가시티 주장이 나올 정도다. 

서울에 이은 제2의 도시 부산이 이럴진데, 다른 지자체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험지역은 118곳(52%)이나 된다. 이는 지난해 3월보다 5곳이 증가한 것으로 지방자치단체 2곳 가운데 1곳은 소멸위험에 직면했다는 얘기다.

소멸위험지역은 20∼39세 가임기 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인 소멸위험지수가 0.5 미만인 곳을 말한다.

전국 시군구의 52%. 가와이가 상상한 일본 지자체 절반이 소멸 위기에 처하는 시기가 2040년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한국의 지방소멸 시계는 상상을 압도한다. 심지어 올해 새로 포함된 5곳에는 경북 포항시, 대구 남구 등 인구 50만의 산업도시와 대도시 도심지역도 있다.

또 다른 광역시인 인천과 대구에서도 소멸위험지역이 늘었다. 인천은 강화군과 옹진군 등 도서 지역에 이어 동구가 새로 이름을 올렸다. 대구도 서구와 함께 남구가 추가됐다.

기존 소멸위험지역의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곳은 전남·경북·경남의 군 지역이다. 경북 군위군은 총인구 2만3277명 중 20~39세 여성 인구가 1050명에 그쳤다. 소멸위험지수가 0.1로 최하위다. 경북 의성·봉화군, 전남 고흥군, 경남 합천군도 상황은 비슷했다. 시 지역에선 경북 상주시가 유일하게 소멸 고위험지역에 이름을 올렸다.

자료 : 한국고용정보원


소멸위험 판정은 단순히 지표의 하락이 아니다. 이들 지역은 지역 내 유일한 버스터미널이 폐업하거나 병원이 사라지는 등 인프라가 붕괴하고 있다. 전국여객자동차터미널사업자협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폐업한 버스터미널은 전국적으로 22곳이나 된다. 

최근에는 ‘인구 50명’을 놓고 이웃사촌인 경북 봉화군과 영양군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29년 전 지어진 50명 수용 규모의 군(軍) 관사를 서로 유치하겠다며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일월산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붙어 있는 봉화군과 영양군이 공군 관사 유치에 필사적인 이유는 급격한 인구 감소 때문이다. 봉화군은 한때 인구 10만 명이 넘는 경북의 대표적 농업도시였으나 1980년대 이후 점차 줄어 지난 4월 기준 3만39명으로 급감했다. 영양군은 울릉도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기초자치단체다. 봉화군은 0.451, 영양군은 0.473으로 두 곳 다 0.5 미만인 소멸위험지역이다.  

  정주를 위한 생활인구 육성 전략

어느 정권에나 지방분권, 도시재생은 과업이자 숙원이었다. 수도권에 집중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산하기 위해 크게는 행정수도를 이전하거나 작게는 지역의 랜드마크를 짓고 도시 슬로건, 공공 디자인을 통한 하드웨어적 노력이 이뤄져 왔다.

이러한 노력은 대부분 행정가의 마스터플랜이나 부동산 개발업자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적용됐고, 도시는 숫자와 크기의 척도로 평가됐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소도시들은 외면받고 있다. 정주(定住)의 측면에서도, 관광의 측면에서도, 사업의 측면에서도 어느 하나 나아지지 않았다.

‘기업 본사 이전’,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큰 힘을 얻지 못한다. ‘기업의 남방한계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기업 본사는 경기도 화성시 아래로 내려가지 못한다. 인재들이 지방으로 오는 것을 꺼려 하기 때문이다.

인프라가 없는 소멸위험지역들이 선택한 해법은 관광객 유치였다. 송어 축제나 산천어 축제처럼 지역의 특색 있는 축제로 지방 소멸을 막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축제가 너무 많다 보니 오히려 경쟁력이 없다. 전국에서 2일 이상 열리는 문화축제는 연간 800여 개에 달한다. 당일치기까지 더하면 1만50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자체의 해법이 너도나도 동일하다 보니 생긴 문제다.

송어 축제나 산천어 축제가 열린다고 그곳에 살겠다는 사람은 없다. 도시의 매력은 사람이 일정한 곳에 자리 잡고 삶을 살 수 있는 도시의 ‘정주성(定住性)’에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주성 개선을 위해서는 작게는 ‘생활인구’를 늘리는 것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생활인구란 2023년 1월부터 시행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서 새롭게 도입된 개념으로 기존 주민등록인구 및 외국인 등록인구 외 지역 체류 인구까지 포함하는 용어다. 현재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등록한 외국인, 지역 소재 직장인, 지역학교 학생, 관광 휴양지 방문을 이유로 체류하는 경우를 생활인구로 정의한다.


150년 된 대갓집을 리모델링 해 만든 고스게촌 호텔./ 사진=김영은 기자


가파른 절벽에 위치한 목조주택을 호텔로 바꾼 모습./ 사진=김영은 기자

예컨대 일본 야마나시현 기타쓰루군 고스게촌은 생활인구를 늘려 마을을 살린 사례다. 도쿄 도심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700명의 작은 마을은 인구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했으나 지난 2019년 마을의 빈집스토리를 그대로 살려서 리모델링하고 마을 전체를 호텔로 탈바꿈시켰다. 마을을 떠난 젊은이,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휴양지 방문차 들를 수 있도록, 그렇게 다시 만난 고향에 정주할 수 있도록 한 촌장의 아이디어는 마을을 기사회생시켰다.

일본 중부지역에 자리한 도야마시는 2010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됐다.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30%에 육박한다. 도야마시는 철도와 노면 전차 등 공공교통망을 구축하고, 교통망 재편과 함께 저렴한 가격에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는 ‘돌봄 서비스’ 등을 통해 생활인구를 늘리는 데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호주도 한때 자동차 제조업의 몰락으로 4만 명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제조업 밀집 지역이 폐허 도시가 되는 ‘러스트벨트’ 위기에 직면해야 했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과 달리 호주에서는 제조업 몰락 후 인구 엑소더스 현상이 없었다. 호주 남부 해안에 자리한 애들레이드는 오히려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주정부 차원에서 인구 유입을 목적으로 다양한 비자 혜택을 부여하고, GM과 미쓰비시가 철수한 도시에는 첨단 제조업을 불어 넣었다. 외국인, 지역 소재 직장인, 지역학교 학생 등 생활인구를 늘려 러스트벨트 위기를 막아낸 사례다.

그간의 소도시 현실에 대한 취재는 우울한 리포트 속에서 관광 위주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정부에서는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투입하고, 지자체 차원에서도 연구용역 등을 통해 대책을 수립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관광이라는 요소는 도시가 가진 매력의 일부다. 임화진 도쿄도시대학 교수는 “일본의 지방 소멸 정책은 지자체의 특성을 100% 반영해 브랜딩한 것”이라며 “한국도 우리 도시에 어떤 사람들이 놀러 오고 어떤 사람들이 살기를 원하는지 명확한 페르소나를 설정하는 등 정책을 더 세분화해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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