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천년의 생명력이 가득 담긴 경기도 [경기도 가볼만한 곳]

최현호 기자 2024. 2. 12.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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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역사를 견딘 나무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디며 그 자리를 지켜온 오래된 나무는 그 존재만으로 성스럽고 귀하다. 천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전설 같은 생명력으로 우리를 지켜 준 경기도의 나무들을 소개한다.

공원, 마을, 절, 릉 등 고목이 뿌리내린 곳은 그 장소도 다양하다. ‘살아있는 화석’과도 같은 천년 고목이 선물하는 감동과 위로, 그리고 굳건한 세월의 찬가.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경기관광공사 제공

◆ 천년이 넘는 세월을 지킨 용문사의 명물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용문산관광단지는 197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됐으며, 관광지 내의 볼거리로는 용문사,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 정지국사 부도 및 비(보물 제531호), 용문산지구전적비 등이 있다. 또한 넓은 잔디광장과 캠핌장, 분수대, 야외공연장 등을 갖추고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특히 은행나무는 이곳에 온 사람들이 꼭 찾는 명물이다. 높이 60m, 둘레 12m가 넘고, 나이는 약 1100년에서 1300년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됐다.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인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돼 있다. 양평군 주민들은 봄, 가을이면 이곳에서 은행나무를 위해 큰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양평군 주민들이 이 은행나무에 대해 얼마나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나무인 만큼 수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을 때 톱 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일어나 중지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으며, 고종황제가 승하할 때도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졌다고 한다. 또한 나라의 큰 변란이 있을 때나 경사가 있을 때마다 은행나무는 ‘윙’ 소리 내 울며 길흉을 예고해 줬는데, 8·15 해방과 6·25 전쟁 때도 인근 주민들이 그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 530년 역사를 품은 도시의 보호수 ‘영통 느티나무’

수원 영통 느티나무. 경기관광공사 제공

수원특례시 영통 신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느티나무사거리에는 현실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었다. 단오어린이공원의 터줏대감으로 남녀노소 주민들의 사랑을 받던 주인공은 5년 전 비바람에 부러진 영통 느티나무 보호수다. 5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농경 마을의 수호신이자 사람들의 벗이었고,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자리를 지키며 신도시 주민들의 자부심이 됐던 나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크기를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원래 이 나무는 23m의 높이를 자랑했다. 20여그루에 달하는 수원의 보호수 중에서도 가장 높은 높이다. 흉고(가슴 높이 약 1.2m) 둘레는 8.2m에 달했다. 밑동 둘레를 한 바퀴 돌면 스물다섯 걸음을 걸어야 하는 거대한 크기였다. 수형도 아름다웠다. 4m 높이에서 여러 가지가 펼쳐지며 커다랗고 누구나 생각하는 동그란 나무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한 모습이었다. 지난 2017년 산림청이 선정한 으뜸 보호수 100주에 선정된 것은 물론 보호수의 이야기를 엮어 만든 책 ‘이야기가 있는 보호수’의 표지에 실렸을 정도로 수려한 모습을 자랑했다.

그러나 초여름 장마철인 2018년 6월26일 오후 3시쯤 속살을 드러낸 영통 느티나무에 변고가 생겼다. 53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끝내 부러져버린 것. 이후 수원특례시는 전문가는 물론 시민과 함께한 대책 회의를 거쳐 보호수 복원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와 함께 복원을 추진, 조직배양을 통해 후계목 20주를 증식하는 데 성공했다. 3m가량 남은 밑동은 지속적으로 방수 및 방부 처리를 하며 보존했다.

지금도 영통 느티나무는 그 자리에서 사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후계목을 육성하고 나무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한 수원시의 노력과 나무를 기억하려는 시민의 애정이 담긴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다시 수원 시민의 곁에 돌아올 것이다.

◆ 아름다운 조선 왕릉 속 천연기념물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 경기관광공사 제공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아름다운 조선 왕릉인 화성 융건릉.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함께 묻힌 융릉, 그의 아들인 조선 제22대 왕 정조와 효의 왕후가 함께 묻힌 건릉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어린이와 가족, 연인들의 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높다.

융릉 재실 내에 있는 개비자나무는 2009년 9월16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504호로 지정됐다. 개비자나무는 늘 푸른 바늘잎 작은키나무로 보통 높이 3m 이내로 자란다. 그런데 융릉 개비자나무는 높이가 4m에 이르고 줄기 둘레도 80㎝에 이르는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또한 보존 상태도 우수해 우리나라 개비자나무를 대표하는 가치가 있으며, 융릉 재실과 관련된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크다.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 재실에 개비자나무가 있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500년 전 화성에 융릉이 조영되며 함께 심은 것으로 추측한다. 개비자나무는 융릉의 주인인 사도세자와 닮았다. 한 많은 생으로 ‘생각할수록 슬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도, 그리고 다양한 쓸모가 있지만 좋지 않은 어감을 지닌 개비자나무는 이름에 서러움이 담겨 있는 공통점이 있다.

융건릉에서는 매년 4월 둘째 주에는 융릉 제향, 5월에는 건릉 제향이 있으니 이때 방문하면 더 볼거리가 풍부하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운영하는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하면 재미를 더해 주는 다양한 일화와 친절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 백송의 기품이 남다른 희귀 소나무 ‘고양 송포백송’

고양 송포백송. 경기관광공사 제공

백송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침엽 교목으로,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떨어져 전체가 흰빛을 는 특징이 있어 예로부터 백송(白松) 또는 백골송(白骨松으)로 불렸다.

고양특례시 일산서구 덕이동에 있는 고양 송포 백송의 가장 유력한 유래는 조선 세종(1418~1450년) 때 김종서가 개척한 육진에서 복무하던 최수원이 고향에 돌아오는 길에 가져다 심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이 나무를 중국에서 온 나무라고 해 ‘당송(唐松)’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송포 백송의 크기는 높이 11.5m, 둘레 2.39m다.

백송은 대체로 수령이 오래되고 햇빛을 많이 받을수록 줄기의 흰빛이 뚜렷해진다. 송포 백송은 다른 백송보다는 덜 흰빛을 띠지만, 가지가 무성하고 울창해서 기세가 상당하다. 측면에서 살펴보면 가지가 마치 부챗살처럼 퍼져 있어 형태가 역삼각형으로 보인다. 그 기품도 남달라 한눈에 보아도 수령이 오래된 것을 알 수 있다. 수령은 약 250살 정도로 추정된다.

이 나무의 또 다른 유래는 조선 선조 때 유하겸이 중국 사절에게 받은 백송 두 그루 중 하나를 마을의 최상규씨(송포 백송의 소유자)의 조상에게 줬고, 그것을 묘지 주변에 심었는데 지금껏 크게 자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유래야 어찌 됐든 한반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수종인 동시에 중국과의 문화교류사를 알려주는 나무로, 역사적, 경관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아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화합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 사시사철 푸르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 역사적 가치가 큰 재실 내 가장 큰 회양목 ‘여주 효종대왕릉 회양목’

여주 효종대왕릉 회양목. 경기관광공사 제공

여주시 효종대왕릉은 인조의 둘째 아들이자 조선 제17대 왕인 효종(재위1649∼1659년)과 왕비 인선 왕후 장씨가 모셔진 쌍릉이다. 이곳은 능역과 푸른 소나무들이 주변에 울창해 그윽함을 풍기지만 세종릉과 바로 붙어 있는 관계로, 상대적으로 찾는 이가 적어 사방이 조용하고 호젓하다.

영릉 재실에 있는 효종대왕릉 회양목은 2005년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459호로 지정돼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수령은 약 30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4.4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는 동쪽이 29㎝, 서쪽이 43㎝이다. 수관 폭은 동서 방향이 4.4m, 남북 방향이 6.5m이다.

효종대왕릉 회양목은 재실 내에 크게 자란 나무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생물학적인 가치가 큰 노거수일 뿐만 아니라 1673년 조성한 효종대왕 영릉 재실과 오래도록 함께한 역사성이 큰 나무다. 특히 영릉 재실은 현존하는 조선왕릉 재실 중에서 건물의 공간 구성과 배치가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듯 재실 공간 내에 회양목과 향나무, 그리고 재실 건축 연대보다 더 오래된 500년 이상의 느티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재실의 역사성을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효종대왕릉 회양목은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회양목 가운데 가장 큰 나무로 추정된다.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 않아도 한자리를 지키며 300년 세월을 견뎌낸 효종대왕릉 회양목. 오늘도 은은한 아름다움과 우아한 풍채로 매력을 떨치며 그 자리에 서 있다.

◆ 부부가 찾아와 소원을 빌면 이뤄지는 나무 ‘포천 직두리 부부송’

포천 직두리 부부송. 경기관광공사 제공

포천시 군내면 직두리에 서식하는 부부송(夫婦松)은 가지의 끝부분이 아래로 처지는 특징을 가진 소나무다. 이 두 그루의 처진 소나무는 나지막한 동산을 뒤로하고 나란히 서서 서로를 안고 있는 듯한 다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멀리서 보면 마치 한 그루처럼 보인다. 북쪽이나 남쪽에서 바라보는 수형은 수관 전체가 산의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린 듯한 매우 아름다운 형상을 하고 있다.

두 나무 중 큰 나무는 수령이 300년으로 추정되며, 포천시를 상징하는 시목(市木)으로 지정돼 있다. 나무의 키는 두 그루 모두 높이가 6.9m이고, 너비는 큰 나무가 23.7m, 작은 나무가 11.7m이다. 2005년 6월13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460호로 지정됐다.

이 나무는 원래 ‘처진 소나무’로 명명하기로 했으나, 관리처인 포천시가 천연기념물 지정을 기념하고 지역 주민들의 보호 의식을 높이고자 이름을 공모해 의견을 수렴한 결과, 나무가 부부와 같은 정겨운 형상으로 서 있기 때문에 부부송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현재 이름을 갖게 됐다. 소나무류는 원래 암꽃과 수꽃이 한 그루에 피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는 소나무 한 그루를 암수로 구분할 수 없다. 따라서 포천 직두리 부부송이란 이름은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나온 것이 아닌, 형태적인 해석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부송에는 예부터 부부가 찾아와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많은 사람이 찾았는데, 지금도 나무의 영험함을 믿는 사람들의 기도처로 이용하기도 한다.

최현호 기자 wti@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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