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오피스 시장 ‘날개 없는 추락’... 베이징 공실률 14년만 최고
경기 부진에 기업들 ‘몸집 줄이기’
수요 적은데 공급은 여전히 증가세
소호차이나 등 개발 기업 재정난
지난 7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의 랜드마크인 상업용 건물 ‘왕징 소호’. 6개 동 중 타워2로 들어서니 쥐 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가 덮쳐왔다. 한때 국숫집, 가정식집, 갈비덮밥집 등 여러 식당부터 미용실, 헬스장까지 다양한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던 2층은 대부분 문을 닫아 복도마저 캄캄했다. 각 매장 안 미처 치우지 못한 집기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육중한 자물쇠가 채워진 문에는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지나가던 관리 직원은 “이렇게 텅 빈 지 최소 1년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중국 베이징의 오피스 공실률이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중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들이 사업 확대를 꺼리고 있는 데다, 호황 때 짓기 시작했던 오피스들이 이제야 완공되면서 공급이 넘쳐나는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일부 오피스 관리·개발 기업은 전 직원 급여를 삭감하는 등 ‘위기 경영’에 돌입했다.
12일 부동산 컨설팅 기업 CBRE에 따르면, 중국 전역 오피스 공실률은 지난해 말 기준 24.5%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22.9%)보다 1.6%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CBRE는 “매 분기 주요 18개 도시의 오피스 공실률을 측정하는데, 이 중에서 12개 도시의 공실률이 전년 대비 상승했다”고 전했다. 1선 도시만 보면, 베이징은 21.7%로 2009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상하이는 19.8%로 20%에 근접했다. 광저우, 선전 역시 각각 18.2%, 20.9%를 기록했다.
각 도시의 오피스 순흡수면적도 감소세다. 순흡수면적은 신규 임차 면적에서 신규 공실을 뺀 것으로, 값이 낮아질수록 세입자가 신규 계약한 면적보다 계약 해지된 면적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는 상하이 오피스의 지난해 순흡수면적이 39만㎡로, 2021년 142만㎡, 2022년 63만㎡ 등 매년 급감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컨설팅 기업 세빌스에 따르면 선전 역시 순흡수면적이 22만㎡까지 감소해 지난 10년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오피스 시장의 약세는 최근 중국 경제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다. 고속 성장 시절 중국 토종 기업은 물론 외자 기업까지 앞다퉈 중국 사업을 확대했고, 이에 맞춰 상업용 건물 수요도 빠르게 늘어났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중국 경제가 고꾸라지면서 오피스 시장에 비상등이 켜졌다. 지난해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도 중국 경기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자 기업들은 보수적 경영에 나섰고, 사무 공간을 줄이거나 아예 임대 계약을 해지하고 있다. 상하이의 한 오피스 투자 모집 담당자는 “지난해 매일 고객 방문이 주요 업무였는데, 이는 신규 고객 발굴이 아닌 기존 고객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문제는 오피스 공급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중국 전역에 공급된 오피스는 총 605만㎡로, 전년(503만㎡) 대비 20% 증가했다. 선전과 상하이에서115만6000㎡, 110만ㅁ6000㎡씩 늘어났고, 베이징(73만5000㎡), 광저우(70만7000㎡)에서도 대규모의 오피스가 공급됐다. 올해 역시 주요 도시 내 오피스 시장엔 추가 물량이 예고돼 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는 올해 1선 도시에서 적게는 50만㎡, 많게는 122만㎡ 오피스가 공급될 것으로 봤다. 특히 베이징의 경우 66만㎡의 오피스가 들어설 예정이라 연간 공실률이 또 다시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오피스 임대료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 존스랑라살(JLL) 차이나에 따르면, 베이징의 A급 오피스 임대료는 지난해 8% 하락했다. 1㎡당 300위안 선으로, 10년 만에 최저치다. 중국 오피스 임대 전문 기업 스화자룬(CCRA)의 왕강 총재는 “올해 말까지 베이징의 평균 오피스 임대료는 최소 5% 하락, 1㎡당 월 285위안까지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적어도 2025년 중반까지는 중국 오피스 임대료가 하락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피스를 공급하는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들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최대 상업용 부동산 기업 소호차이나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주주에게 귀속되는 순이익이 1361만3000위안을 기록했는데, 이는 1년 전보다 92.86% 감소한 것이다. 왕징 소호를 비롯한 베이징 내 3개 오피스 단지의 입주율이 65%에 그치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한 것이다. 이에 소호차이나는 지난해 전 직원의 급여를 삭감하는 등 극한의 비용 절감에 돌입한 상태다. 쉬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일 연례 회의에서 “매출 감소 등 엄청난 압박 속에서 지난해 접대비를 거의 ‘0원’ 수준까지 줄였다”고 했다.
오피스 개발 기업들까지 쓰러질 경우 중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더욱 심화할 수 있다. 이미 중국 부동산 시장은 헝다그룹 등 주택을 개발하는 대형 기업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반적으로 시장 전문가들은 주거용 부동산보다 산업 규모가 작은 오피스 시장에 대해 덜 걱정해 왔지만, 오피스 시장도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차지한다”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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