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주류 트렌드]② 와인 안 마시는 프랑스인, 집에서 마시는 미국인… 글로벌 주류시장 대격변
‘취하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팬데믹 이후 우리나라에 ‘취하기보다 즐기는’ 주류(酒類)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반면 북미와 유럽에서는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문화가 점차 퍼지는 중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주요 주류 소비 국가의 젊은 소비자 사이에서 말끔한 정신에서 오는 행복, 건강한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자연히 술 소비가 꾸준히 줄었다.
일부 글로벌 주류기업들은 지난해 엔데믹(풍토병화) 이후 회복을 기대했다. 다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술을 마시기 시작하지 않겠냐고 짐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이제 주류 시장 미래 소비자에 해당하는 글로벌 2030세대는 술을 입에 대지 않거나, 마셔도 도수가 낮은 술을 선호한다. 일부는 무(無)알코올 주류로 눈을 돌렸다.
① 북미·유럽에서 빠르게 다가온 ‘술 없는 사회’
“갈수록 더 많은 소비자가
알코올 없는 음료를 마시면서 사회적 교류를 하길 원한다.”
“More and more customers want to be able to enjoy
the social aspect of having a drink without the alcohol.”
벤 콜 영국 테스코 주류 총괄, 2024
전통적으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새해를 맞아 한 달 동안 금주(禁酒)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다. 맑은 정신으로 새해를 시작하자는 ‘술 없는 1월(Dry January)’ 캠페인이다.
지난해 미국 성인 가운데 15%, 영국 성인 중 10%가 1월 금주에 도전했다. 미국 도전자 수만 3000만 명을 넘어선다. 적지 않은 수치다.
폭음에 관대했던 미국 대학가도 예전 같지 않다. 1월은 미국 대학 봄 학기가 시작하는 달이다. 이전 같으면 폭음(heavy drinking)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시기다. 올해는 예년보다 눈에 띄게 폭음자 비율이 줄었다. 미국중독센터(AAC)에 따르면 미국 대학가 과음자 비율은 2012년 40.1%에서 30% 미만으로 감소했다.
이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술을 참았다가, 이달 들어 금주 효과에 대한 간증에 나섰다. 현재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는 금주 이후 숙면, 체중 감량을 경험한 대학생들이 작성한 글이 넘친다.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조차 매일 와인을 마시는 18세 이상 성인이 10명 중 1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시장조사기관 입소스가 발표한 ‘프랑스 와인 소비 행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에서 와인을 일상적으로(매일 또는 거의 매일) 마신다는 응답은 전체 응답자의 11%로 집계, 직전 조사 당시인 2015년에 비해 5%포인트 줄었다. ‘와인을 아예 안 마신다’는 응답도 37%에 달했다.
영국에서는 무알코올·저도주를 의미하는 ‘놀로(NoLo·No and Low)’ 시장이 급성장했다. 영국 최대 슈퍼마켓 체인 테스코(Tesco)는 최근 자체 집계 결과 무알코올 증류주 매출이 올해 1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증가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무알코올 시장은 맥주 같은 저도수 주류가 주도한다. 반면 영국 소비자는 진(gin)과 같은 고도주, 12도 안팎 와인까지 무알코올 제품으로 소비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 무알코올 주류는 아직 술로 대접받지 못하지만,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어엿한 술 시장 주연 가운데 하나다.
세계적인 주류 시장 조사업체 드링크웨어(Drinkaware)가 발표한 2023 드링크웨어 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 주류 소비자 5명 가운데 1명(19%)이 무알코올 맥주나 무알코올 와인, 무알코올 증류주를 즐겨 마셨다고 답했다. ‘술을 이전보다 덜 마신다’고 답한 비중도 2019년 33%에서 지난해 39%로 6%포인트 증가했다.
② 마신다면 집에서, 가볍게
2년 넘게 이어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우리나라에 ‘혼술(혼자 마시는 술)’과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문화를 만들었다. 이후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이 문화는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세계 최대 주류 소비 시장 미국은 반대다. 엔데믹 이후 이제야 홈술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주류 플랫폼 드리즐리(Drizly) 연례 소비자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 열 명 가운데 세 명은 지난해 집에 홈바(home bar)를 새로 마련했다.
홈바는 집 안에 본인이 좋아하는 술과 그에 맞는 잔을 갖춰 놓은 공간을 말한다. 이전 수치까지 합치면 현재 미국 주류 소비자 가운데 63%는 집에 본인에 맞춘 바가 있다. 또 거의 4명 중 1명(22%)은 지난해 술집이나 레스토랑보다 집에서 술을 더 자주 마셨다고 답했다.
미국 주류 전문가들은 지나친 인플레이션이 홈술 열풍을 불러일으켰다고 진단했다.
뉴욕 같은 대도시 식당에서는 손님이 팁을 계산하기 편하게 영수증에 팁 비율을 제시한다. 팬데믹 이전 미국 식당에서는 암묵적으로 밥값 15% 정도를 종업원에게 팁으로 줬다. 이제 15%는 옛말이다. 팁 비율은 지난해 최소 18~20%, 보통 25~30% 수준에 이르렀다. 심지어 25·35·45%로 팁 비율을 제시하는 곳까지 생겼다.
미국 역시 우리나라처럼 술값이 전체 밥값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하다. 여기에 팁과 주세(state tax)까지 붙으면 피로감은 더 커진다.
리즈 패킷 드리즐리 소비자 총괄은 “비싼 술을 안 사 마신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음식점에 낼 돈으로 이전에 음식점에서 사 마시던 술보다 더 비싼 술을 사 마시는 손님 비중이 거의 절반(45%)에 달했다”고 평가했다.
③ ‘그래도 아는 사람이 만든 술이라면’... 별들이 빚은 酒 선호
그래도 오로지 한 분야, 스타가 만든 술은 나오기가 무섭게 팔렸다.
미국 같은 거대 주류 시장에서 유명인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 주류 사업은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연계해 한 사업 부문으로 입지를 굳혔다.
우리나라에서 주류 회사 설립부터 제품 기획·제조·마케팅에 이르는 전 과정을 스타가 직접 하는 사례는 2022년 원소주 이전까지 드물었다.
미국에서는 이보다 10여 년 앞서 2017년 유명 배우 조지 클루니가 테킬라 회사 카사미고스를 거액에 팔아 치운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관련 사업 규모가 커지고 있다.
클루니는 2017년 글로벌 주류회사 디아지오에 카사미고스를 10억달러, 당시 금액 기준 1조1200억원에 매각했다. 미국 테킬라 브랜드 역사상 최고액이었다.
이후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는 본인만의 술 브랜드 세우기 붐이 일었다. 영화 한 편당 가장 높은 개런티를 받는 액션 배우로 유명한 드웨인 존슨(더 락) ‘테레마나’, 현존하는 세계 최고 모델 켄달 제너 ‘818′, 세계적인 랩퍼이자 비욘세 남편 제이지 코냑 ‘위세(D’usse)’가 대표적인 예다.
올해 제이지는 이 브랜드를 바카디 그룹에 7억5000만달러(약 1조원)을 주고 팔았다. 미국프로농구(NBA) 최고 스타 스테판 커리 역시 지난해 본인 이름을 건 버번위스키 ‘젠틀맨스 컷’을 선보였다.
얼라이드마켓리서치는 올해 주류 시장 보고서에서 “팬데믹을 거치며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에 성인기를 맞은 젊은 소비자들은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면서도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며 “양면을 모두 갖춘 세계적인 스타에게 주류 산업은 의심할 여지 없이 수익성이 높은 산업”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주류 브랜드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투영하려고 하는 스타들이 점점 더 많이 본인 브랜드를 만들고,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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