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도리 없는 시간 [1인칭 책읽기: 범도]
방현석 작가의 「범도」
거창한 이유가 없었던 삶
시대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
어머니는 돌발성 난청이라고 했다. 지난주 아침밥을 같이 먹다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젓가락으로 메추리알을 잡으려고 노력하다 잠시 멈추고 어머니를 바라봤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난 젓가락질을 멈췄다. 최근 몇주간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이 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숙연해졌다. 난청이란 건 조용한 공간에 홀로 있어도 귓속에 소리가 맴도는 것이라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려워진다고 했다. 아침을 먹지 못했다.
'돌발성'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돌발성 난청은 어떤 큰 이유가 있어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완치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기에 우리의 아침은 조금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것 빼고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실 '어쩔 도리가 없음'은 어머니의 난청뿐만이 아니었다. 코로나19의 시기는 내 의지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광장시장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계셨고, 영업중지 기간 대출을 받아 월세를 냈다. 그것은 코로나19가 끝난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최근 원금상환일이 도래했다. 나는 이것에서 발생한 스트레스가 어머니의 병의 원인이 아닐까 예상했지만 그렇다고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역시 어쩔 도리가 없었다.
2023년 7월 방현석 작가와 인터뷰를 위해 만났다. 방 작가는 출판사 문학동네를 통해 「범도」를 펴냈다. 책 「범도」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독립군을 이끈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다.
홍범도 장군을 다룬 책은 이미 많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에서 펴낸 평론집부터 일대기 소설들까지…. 하지만 방현석 소설가의 범도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홍범도 장군을 일반인과 다른 위대한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 속 홍범도는 굶지 않기 위해 군영에 들어간다. 개인적인 이유로 동료를 위해 일본군에 복수를 감행한다. 책 「범도」는 그를 그저 그 시대를 살아왔고, 밥을 먹고 생존하기 위해 뛰어 다닌 사람으로 그린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 하다 '어쩔 도리' 없이 시대에 휘말리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독립운동의 한복판에 선 후에도 스스로 대의를 가졌다기보단 수많은 인물 군상을 만나며 성장해 나간다. 우리 주변에 있을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범도」의 이야기다. 방현석 작가는 「범도」가 2024년을 사는 지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이 소설에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다양한 인물을 그려낸다.
난 이 소설을 읽고 내가 살았던 시대를 떠올렸다. 1990년부터 2024년까지, 시절이 만들어낸 사람들은 누구일까. 어머니는 토요일에도 일찍 카페에 나가신다. 카페가 있는 광장시장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전을 부치고 육회를 써는 이들이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이 상가에서 사라졌다.
이번 주에는 어머니와 같은 건물에서 수년 간 함께했던 한복집이 문을 닫았다. 누군가는 독감과 코로나19로 인해 사라지고, 누군가는 원금상환을 견디지 못하고 이곳을 떠난다.
그럼에도 광장시장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작금의 시대를 관통하는 이들은 2024년의 범도다. 어머니는 식탁 위에 조린 메추리알을 잔뜩 해놓고 나가셨다. 어쩔 도리 없이 햇반을 돌려 메추리알과 밥을 먹고 일을 나왔다. 평범한 삶은 어쩔 도리가 없는 시간의 연속이다. 그래서 평범한 삶은 쉽지 않다. 그래서 얻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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