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욕의 상징 ‘마천루’…용산국제업무지구 100층 계획 실현될까

윤지원 기자 2024. 2. 1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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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초고층 공사비 30층 이상부터 급등” 실현 가능성 갸웃
용산국제업무지구 조감도. 서울시 제공

1700%. 서울시가 지난 5일 10년만에 재개하겠다며 내놓은 용산국제업무지구 최대 용적률이다. 이 구상대로라면, 국내 가장 높은 빌딩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123층) 기록을 갈아치우는 초고층 빌딩이 용산에 탄생한다. 서울시는 내년 하반기 기반시설 착공, 2030년대 초 입주라는 구체적 일정까지 제시하며 초고층 랜드마크를 짓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초고층 건물은 국내 건축법 기준 높이 200m 이상(50층 이상)을 뜻한다. 이 건물을 실물로 보면 ‘하늘을 긁어낼 듯 높다’는 마천루 영어식 표현 스카이스크레이퍼(skyscraper) 뜻을 절감할 수 있다. 높이에서 오는 위계감은 국가나 개별 기업인의 과시욕을 드러내는 도구로도 쓰였다.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싶은 나라일수록 마천루 숫자가 많다는 사실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초고층 빌딩 집계 사이트 (skyscrapercenter.com)가 제시한 2024년 전세계 초고층 건물 순위를 보면 10위권 내 가장 많이 포진된 국가는 중국(5개)이다. 1,2위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부르즈 할리파·828m)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메르데카118·679m)가 나란히 들어갔고 한국은 월드타워가 높이 555m로 6위에 랭크됐다. 미국 뉴욕의 원월드타워(541m)는 잠실 월드타워 바로 뒤인 7위에 머물렀다. 유럽 국가는 10위권 내 한 곳도 포함되지 못했다.

초고층 건물은 제한된 대지에 층을 더 많이 올려 분양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치 사업성이 높을 것이란 오해를 받는다. 실제는 고층건물일수록 공사비가 급격하게 오른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30층 이상부터 공사비가 크게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자재를 30층 이상으로 올리는 데 동원되는 설비시설을 포함해 모든 게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사비 문제로 ‘초고층’에 대한 욕망을 접는 아파트 조합들도 많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는 최고 높이 35층, 49층을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총회를 거쳐 35층으로 결정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제시한 49층 공사비 증액분은 35층일때와 비교해 2200억원이나 늘었다고 한다. 공사기간도 35층일 때 44개월이었다면 49층은 51개월로 최소 7개월이 추가된다. 그만큼 이주비 금융비용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50층 이상이면, ‘초고층 및 지하 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대한 특별법’으로 따로 관리를 받는다. 허가 심의도 더 까다롭다. 지진과 해일 등에 관한 심의만 40여개가 넘는다. 30개층마다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피난안전구역 역시 비용으로 잡힌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은 앞다퉈 50층 대신 ‘49층 랜드마크’로 우회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주택이 아닌 상업시설에서도 100층 목표를 부르짖다가 슬그머니 계획을 접은 사업이 많다. 용적률 1500%였던 과거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을 비롯해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랜드마크(580m, 130층), 강남 삼성동 ‘현대글로벌비즈니스센터’ (560m, 105층), 인천 송도 인천타워(610m, 151층), 부산 WBC 솔로몬타워(448m, 108층) 등등이 모두 좌초됐다.

경제학 가설 ‘마천루의 저주’도 무시하지 못한다. 통상 경기 호황기, 통화정책이 완화됐을 때 많은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초고층 빌딩을 짓는 공사가 시작된다. 완공 시점이 되면 이미 부동산에 버블이 갈 데까지 간 상태로 불황이 이어지는 ‘저주’가 되풀이된다는 게 이 가설의 골자다.

“어떤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될 거라며 첫 삽을 뜨면 최대한 빨리 그 나라 주식시장에서 빠져나올 때가 된 것이다.”
- 미 사회경제학자 존 캐스티

초고층 건물을 많이 보유한 중국은 이미 마천루의 저주가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부동산 거품 붕괴 위기에 직면한 시진핑 정부는 최근 고층 빌딩에 대한 제재를 시작했다고 한다.

‘1700% 용적률’을 내 건 서울시는 초고층 빌딩에 따르는 현실적 제약을 의식하고 있다. 지난 5일 용산국제업무지구 보도자료에는 100층 랜드마크를 내세웠지만, 같은 날 기자들 질의에 이렇게 말했다. “100층 이상은 업무 수요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80층 내외, 60층 내외로 변경했다. 현재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랜드마크 건물의 경우 구상은 100층이지만, 바뀔 수 있다. 랜드마크(의 높이)는 정치적인 것이어서 협상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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