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실패 절대 반복 안해"···의대정원 증원 위해 '빌드업' 전략 푸는 복지부(박홍용의 토킹보건)
의대정원 발표 후 곧바로 장차관 방송출연 '의대증원 필요성' 설파
전공의 집단행동이 최대 변수···12일 온라인 총회가 분수령
“역대 정부에서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증원을 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정치적 고려 때문이었습니다.”(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의대정원 증원을 추진 중인 보건복지부의 결기가 남다릅니다. 복지부는 지난 6일 2025학년도 의대정원을 2000명 늘리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복지부의 주요 카운터파트인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서 이필수 회장이 책임을 통감한다며 의협 회장에서 물러나고 전공의(레지던트)들을 중심으로 집단행동 등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정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빛의 속도로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 움직임에 복지부는 일찌감치 '법에 따른 엄정 대응'이라는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고, 실무적인 준비까지 마쳤습니다. 관계부처에 따르면 복지부는 증원 규모를 발표하기 전 이미 파업 돌입 즉시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징계하겠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실무적으로 업무개시(복귀) 명령을 전공의 개개인에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전공의들의 번호도 상당부분 파악했습니다.
앞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1일 한 방송에 출연해 "정부는 비상진료 대책과 불법 행동에 대한 단호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1년 넘게 끌어온 정부와 의협 간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정원 증원에 대해 결론을 낼 수 없고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던 만큼 일찌감치 엄정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복지부는 6일 의대 증원 규모 발표 후 의협이 집단행동 방침을 밝히자 곧바로 보건의료 위기 단계를 '경계'로 상향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한 뒤 의협 집행부에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를 내렸습니다.
이튿날인 7일에는 전공의를 교육하는 수련병원에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도 명령했습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기 전 집단으로 사직서를 낼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못 하도록 신속하게 대응한 것이다.
복지부가 발표한 2가지 명령은 '의료법 59조'에 근거한 것입니다다. 이 규정은 복지부 장관과 시도지사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하거나 폐업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업무개시'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복지부는 언론대응을 통한 여론전도 오래 전부터 빌드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의대정원 증원을 발표한 다음날인 7일 아침 조규홍 장관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와의 전화연결을 통해 의대정원 증원의 필요성을 설파했고, 같은 시간 박민수 2차관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의료계의 파업에 대비해 만반의 대비를 마쳤다”고 의대정원 증원에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앞서 정부는 2020년 집단 휴진 당시에는 업무개시 명령을 어긴 전공의 등 10명을 고발했다가 취하한 바가 있습니다. 복지부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국가적 의료 위기가 고발 취하에 영향을 미쳤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설명입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실무적으로도 충분히 준비했고, 불법 행위가 있을 경우 법대로 하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집단행동을 강행하고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의사면허가 박탈되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복지부의 강경책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냐에 달릴 전망입니다. 이미 집단행동을 주장하고 있는 의협은 지난 9일 오후 긴급 온라인 회의를 열고 김태우 강원도의사회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선출했습니다.
의협은 설 연휴 전인 지난 7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비대위 전환 방침을 정하면서 "정부가 싫증 난 개 주인처럼 목줄을 내던지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격한 표현으로 투쟁 의지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의협은 조만간 집단행동의 방식과 시점을 결정할 예정입니다.
큰 혼란이 우려되는 것은 대형 의료기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입니다.
전공의 집단행동은 2020년 의대 증원 추진을 무산시켰을 정도로 파괴력이 큽니다. 당시 의협의 집단휴진 참여율은 10%가 채 되지 않았지만, 전공의들은 80% 이상이 의료현장을 이탈해 '의료 공백'이 컸습니다.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그동안 입장 표명에 소극적이었지만, 정부가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를 내놓은 뒤에는 "해도 너무 지나친 숫자다. 할 수 있는 모든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7일 박단 회장 SNS)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대전협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 오후 9시 온라인 임시총회를 열고 집단행동 여부를 포함한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이미 '빅5'(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상급종합병원 전공의들은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 집단행동에 참여하겠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복지부 입장에서는 2000년 이후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의료계와의 싸움을 다시 시작한 셈입니다. 복지부는 19년 간 빌드업을 해왔습니다. 양측은 4년 전에도 맞붙었지만 의료계의 승리로 종료된 바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현장에서 진료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고 생명과 건강에 위협을 받는 국민들이 없어야 한다는 대명제일 겁니다. 설 연휴 이후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국면이 조기에 진정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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