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특별사면 논란···김기춘·조윤선의 엇갈린 운명
김기춘은 사면·조윤선은 제외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특별사면
역대정부마다 반복된 특사 논란
사면권 통제 목소리 지속적 제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서민생계형 형사범·경제인·전직 주요공직자·정치인 등 980명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번 사면을 앞두고 화두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사면 대상자에 이름을 올릴 것인지 여부였다. 사면의 경우 형을 확정받은 경우에만 가능한데 이들이 모두 최근 상고를 포기하고 형을 확정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리 사면을 약속 받은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마다 반복되는 ‘약속 사면’ 논란에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권’을 제한·통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사면에는 김 전 비서실장과 김관진 전 안보실장을 비롯해 고위공직자 24명이 포함됐다. 김 전 비서실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김 전 안보실장은 이명박 정부의 국방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국군사이버사령부를 이용해 댓글 공작을 하는 등 정치에 관여한 혐의로 실형이 선고됐다. 이들은 각각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최근 대법원 재상고를 포기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반면 김 전 비서실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후 비슷한 시기 재상고를 포기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번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세월호 유족을 사찰한 혐의 등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은 김대열·지영관 전 국군기무사령부 참모장도 지난달 31일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형을 확정 받았다. 이로써 이들은 유죄가 확정된 지 약 일주일 만에 사면됐다. 이들의 재상고 포기가 사면을 사전에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 같은 ‘사전 교감’ 논란에 법무부 관계자는 “사면을 약속하는 경우는 없다”며 “사면 대상자는 사면 심사일을 기준으로 형이 확정된 이들을 대상으로 다수의 외부 인사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심사한다”고 반박했다. ‘김기춘 전 실장과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윤선 전 수석은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인원에 대해선 그 이유를 설명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사면(赦免)에는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이 두가지 종류가 있다. 일반사면은 범죄의 종류를 지정하여 이에 해당하는 모든 범죄인에 대해서 공소권을 소멸시키거나 형의 집행을 면제하지만 특별사면은 특정인에 대한 사면 권한이다. 일반사면의 경우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만 특별사면의 경우 필요 없다. 특별사면은 삼권분립 위에 있는,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인 것이다.
특별사면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역대 정부마다 정치인에 대한 일방적인 사면 결정을 내리며 국민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마지막 특별사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름을 올리며 ‘5대 중대 부패범죄’(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스스로 어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최측근에 대한 사면을 단행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말 최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사면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촉발한 경제 사범들을 대거 사면하며 역풍을 맞았다. 특히 매 정부 특별사면마다 대상자가 사전에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약속 사면’ 논란 역시 반복돼 왔다.
특별사면은 법무부의 사면심사위원회를 거치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이 9명의 사면심사위원회를 구성할 뿐더러 9명 중 5명까지 공무원을 임명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나 기준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 사면에 대한 논란을 증폭시키는 이유다. 이번 사면을 둘러싼 여러 지적에 법무부 관계자는 “지난해 신년 사면 때도 과거의 잘못된 관행으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공직자를 사면했고, 그와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며 “관행적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번 사면을 두고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범죄를 단순히 잘못된 관행에 기한 행위로 치부하고 형사책임을 면하도록 하는 것은, 권력형 범죄에 엄중한 책임을 인정한 법원의 판단에 전면 배치되는 것으로서 형사사법권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고 논평했다.
정치권·학계에서는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을 제한하거나 통제해야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김재윤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7년 논문에서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원천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면심사위원회의 다양성을 제고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5년 발간한 연구 보고서는 “현재의 사면심사위는 위원장인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법무부 차관 및 실·국장, 판사, 변호사, 법학교수 등으로 법조계 인사가 다수라 사회 각계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해외의 경우 사면권이 엄격히 제한된다. 프랑스의 경우 사면을 결정한 회의 내용을 공개하고, 독일은 법률이나 수사에 오류가 있을 때만 사면할 수 있도록 한다. 미국은 연방 규정에 따르면 실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석방 후 5년, 실형이 아닌 유죄를 받으면 형 확정일로부터 5년이 지난 이후에만 사면 청원을 할 수 있도록 해 ‘약속 사면’ 이 불가능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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