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22도 숲속서 구조된 中유학생, 美서 유행하는 ‘이 사기’ 피해자였다
지난해 12월 31일 미국 서부 유타주의 한 산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던 중국인 유학생 장카이(17)가 현지 경찰에 구조됐다. 영하 22도의 극한 추위 속 그는 캠핑용 텐트와 침낭, 담요를 제외하곤 아무런 보온 장비도 없었다. 약 일주일 전 어떠한 물리적 강압도 없이 제발로 산속에 향했다고 한다. 열일곱 유학생은 어쩌다 자발적으로 극한의 상황에 몰리게 됐을까.
미국 CNN·NBC·VOA(미국의 소리) 등은 최근 어린 중국인 유학생들이 ‘사이버 납치(Cyber Kidnapping)’ 범죄의 주 타겟이 되어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장카이를 구조한 유타주 경찰과 외신들이 파악한 사이버 납치의 수법은 납치보단 ‘공갈’에 가깝다.
범죄자들은 피해자에게 주미 중국 대사관 혹은 중국 관계자를 사칭한 전화를 건 뒤, “(중국에 있는) 가족이 부패 혐의에 연루됐다”며 협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피해자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면, “최근 가족에게 이체받은 돈이 있느냐, 범죄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추궁했다. 이따금 통화에선 가족으로 추정되는 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도 들렸다고 한다. 판단력이 흐트러진 피해자에게 범죄자는 본인과 가족의 결백을 위해선 ‘수사’에 협력해야 한다고 유도한다. 가스라이팅 같은 수법에 사회 경험이 적은 유학생들은 허무맹랑한 지시라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외신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장카이는 “가족 등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혼자 머물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하라”는 지시에 스스로 산속으로 향했다. 이내 “본인이 감금된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말도 따랐다. 범죄자는 이 사진을 그의 가족들에게 보내며 몸값을 요구했다. 경찰이 장씨를 구조한 건 이미 범죄자에게 8만달러(약 1억원)가 송금된 이후였다고 한다. 장씨는 뒤늦게 수상함을 느낀 부모가 그가 다니는 학교에 이러한 사실을 알리면서 구출될 수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장씨 가족이 몸값을 보낸 계좌는 중국 은행 계좌였다. 현지 경찰은 중국 대사관 및 중국 정부와의 협력으로 범인을 수색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이러한 사이버 납치 수법이 10년 전쯤부터 멕시코 등 북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해 왔다고 전했다. 각국 경찰·언론이 비슷한 범죄 사례를 알리며 주의를 환기해 왔지만, 최근 들어 유독 중국인 유학생이 겨냥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BBC는 “AI(인공지능)를 통한 목소리 조작이 쓰이는 등 범죄자들의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며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 가족 관계 등 개인정보를 공개해놓은 이들이 타겟이 되기 쉽다”고 보도했다.
중국인 유학생이 타겟이 된 원인 분석은 다양하다. 우선 대부분 학생들로 연령이 낮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홀로 타지로 떠난 이들은 갑작스러운 중국 정부 관계자를 자칭하는 전화에 심리적 공포를 느끼기 쉽다. 게다가 미국으로 향하는 중국인 유학생 수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2022년 미국 이민국 통계에 따르면, 미 고등학교에 유학한 중국인 수는 2010년 대비 98.6배나 급증했다. 머릿수가 늘어난 만큼 범죄자들의 ‘블루 오션’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중국에서 해외로 유학하는 학생들이 대개 부유한 집안의 자제라는 데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이들은 자신의 유학이 부모 재력으로 가능했음을 인지하는 한편, 부모가 어떻게 재산을 쌓아왔는진 잘 알지 못한다. 중국에서 부패는 사형에까지 이를 수 있는 중범죄로, 이러한 막연함 속 학생들은 두려움을 떨 수밖에 없다.
당국 수사를 받는 가족이 전화 너머에서 비명을 지르는 등, 평범한 민주주의 국가였다면 믿기 어려운 사기 수법에도 중국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살아온 학생들은 이를 수상하게 여기기보다 되려 공포를 느끼기 쉽다고 VOA는 전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미국 경찰을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들에 대한 불신을 가진 중국인들이 대부분 신고를 꺼린다고도 한다.
VOA는 지난 1년간 미국뿐 아닌 호주·영국·일본 등에 유학 중인 중국인들을 상대로도 비슷한 사기가 빈번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2월 캐나다에서 중국 정부 관리를 사칭한 사기꾼이 수십만 달러를 갈취했다. 지난해 여름 일본에서도 최소 6명의 중국인 유학생 피해자가 발생했다. 각국 주재 중국 대사관들은 이러한 수법에 대한 경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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