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리조트 업계 이단아 아난티…신라호텔을 뛰어 넘었다고?[안재광의 대기만성's]
아난티가 신라호텔을 매출로 제쳤습니다.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아난티가 거둔 매출은 8000억원을 넘고요. 지난해 연간으론 9000억원을 넘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요. 신라호텔의 작년 연간 매출이 6150억원가량 했으니까 매출만 보면 사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난티가 많아요. 아, 물론 신라호텔과 아난티를 비교하는 건 안 맞죠. 신라호텔은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는 퍼블릭 호텔이고, 아난티는 객실 대부분이 회원만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호텔 업계에서 롯데호텔 다음가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매출을 내는 신라호텔을 넘어선 것은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어요.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잘하면 롯데도 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난티가 한국 브랜드인 것도 모르시는 분들도 많은데 한국 회사이고요. 더구나 삼성, 롯데 같은 대기업이 하는 곳도 아닙니다. 아난티는 어쩌다 한국 최고의 호텔, 리조트 기업을 눈앞에 둔 것일까요.
◆한국에 없는 럭셔리 콘도
아난티는 원래 골프장 사업을 했던 이중명 회장이란 분이 세운 에머슨퍼시픽이 복합 리조트 사업을 하면서 이름을 바꾼 회사죠. 이중명 회장의 장남인 이만규 대표가 10년 전부터 경영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아난티는 2006년 남해에 첫 번째 회원 전용 리조트를 세웠고요. 이후에 경기도 가평, 부산 기장, 서울 강남에 속속 회원제 리조트와 호텔을 열었죠. 아난티의 모든 리조트와 호텔이 멋진데, 아난티가 확 뜬 것은 부산 기장에 2017년 문을 연 아난티 코브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산은 원래 해운대와 광안리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호텔과 리조트가 몰려 있죠. 그런데 아난티는 대형 호텔 체인이 눈여겨보지 않았던 기장을 골랐어요. 기장은 부산 북쪽 외곽에 있어서 가기도 힘들고, 해운대처럼 모래 해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해수욕도 못 하거든요. 아난티 코브는 이런 생뚱맞은 곳에 대규모 호텔과 리조트를 갖춥니다.
우선 모든 객실이 엄청 크면서 시설까지 좋아요. 사실 크기와 시설, 두 개를 다 갖추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객실이 크면 시설이 좀 떨어지고, 시설이 정말 좋으면 객실이 작을 때가 많아요. 물론 리츠칼튼 같은 해외 럭셔리 호텔 체인은 크기도 크고 시설도 엄청 좋은데요. 이쪽은 또 다른 세상이라요. 뭔가 대중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가격에 시설은 리츠칼튼까진 아니라도 꽤 그럴듯한 럭셔리 느낌을 충족시키는 게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는데요. 아난티가 이걸 해치웁니다. 어떻게? 회원권 분양을 통해서였죠.
◆럭셔리 시장 공략
아난티는 롯데, 신라처럼 돈 많은 대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돈으로 호텔, 리조트를 계속 짓는 건 어려워요. 그래서 만만한 회원권 분양을 해야 했죠. 회원권 분양을 하면 자기 돈 대신에 다른 사람 돈을 끌어들일 수 있거든요.
근데 콘도 회원권 사업이란 게 한국에서 한물간 비즈니스거든요. 회원권을 큰돈 주고 사봐야 별것 없더라, 리조트 가보면 관리도 잘 안 되고, 주말에 예약 잡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사람들 눈높이가 높아져서 과거에 지은 리조트에 가면 만족이 안 되죠. 요즘 집도 많이들 인테리어 해서 잘 꾸며 놓잖아요. 근데 콘도 가면 집만도 못하니까 잘 안 가집니다.
아닌티는 앞에서 말했듯이 그런 수준이 아니에요. 리츠칼튼엔 못 미치지만 제법 그럴듯하거든요. 웬만한 5성급 호텔 뺨을 칩니다. 대신 회원권 가격도 높아요. 과거에 1000만원, 2000만원 하던 게 아니에요. 가격을 10배로 높입니다. 1억원, 2억원 수준으로요. 아니, 이 돈 주고 콘도 회원권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의문이 드는데요. 근데 이거 사려고 줄을 섰습니다. 지금 아난티 회원권 사려면 바로 못 사고요, 번호표 끊고 기다리셔야 해요. 한국에 그동안 없었던 엄청 좋은 객실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겁니다.
아난티가 회원권을 단순히 비싸게만 판 게 아니라 다르게 팔았다는 것도 포인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콘도 회원권이라 하면 대부분 멤버십을 얘기해요. 전세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편합니다. 회원권이 1억원이다, 그럼 이 1억원을 회사가 잘 맡아 놨다가 10년, 20년 뒤에 고스란히 돌려줘야 해요. 이자를 안 받는 대신에 콘도를 싸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죠.
근데 아난티는 등기제 회원권을 팔았어요. 집을 사고팔듯이 콘도 객실을 분양했는데 이걸 5개, 10개로 쪼개서 판 것이죠. 한번 사고 나면 나중에 팔 때 회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팔아야 해요. 집 사고파는 것이랑 똑같아요.
회원 입장에선 멤버십에 비해 장점이 별로 없어요.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은 충만하게 받겠지만 소유하는 순간 재산세 같은 온갖 세금을 내야 하고요. 나중에 팔 때도 회사가 같은 가격에 되사주지 않으니까 가격 하락 위험까지 져야 하죠. 근데 아난티는 이 부담스러운 회원권을 대량으로 파는 데 성공해요.
왜냐하면 회원권 가격이 계속 높아지고 있거든요. 아난티 회원권 법인, 개인, 기명, 무기명에 따라 달라지긴 하는데 비싸면 2억원을 넘고 저렴하게 사도 1억원대 중반 수준입니다. 이게 최초 분양할 때와 비교해서 50% 이상 비싼 겁니다. 내가 1억원에 샀다, 그럼 1억5000만원에 팔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굳이 회사에서 되사줄 필요가 없어진 것이에요.
가격이 계속 오른 건 아난티가 계속 리조트, 호텔을 짓고 있기 때문인데요. 회원권 팔아먹은 돈으로 제주도에도 짓고, 경기도 청평에도 추가로 짓고 해서 회원권 산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리조트, 호텔을 계속 늘리고 있어요.
등기 회원권이 아난티 입장에선 좋은게요. 재무제표가 예뻐져요. 멤버십 회원권의 경우에 10년, 20년 뒤 회원들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니까 회계상 부채로 잡혀요. 근데 등기 회원권을 팔면 달라요. 회원권 판 게 매출이 됩니다. 안 갚아도 되는 돈이니까 고스란히 매출이 되는 것이죠.
매출로 잡으면 재무제표가 어떻게 바뀌냐 하면요, 1000억원어치 회원권을 팔았을 때 이게 고스란히 매출이 됩니다. 회원권 분양을 하면 1000억원이 매출이 된다는 얘기예요. 아난티가 작년에 매출 9000억원가량 한 것도 대부분이 회원권 판 돈이에요.
◆회원들 불만도 상당해
아난티가 잘한 것 위주로 말씀을 드렸는데요.
약점도 분명합니다. 우선, 비싸게 회원권을 팔았으니까 매출이 많이지는 건 좋은데요. 회원권을 산 사람 입장에선 그만큼 기대하는 게 많아요. 근데 요즘 아난티 회원권을 산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리곤 합니다.
우선, 회원권을 많이 팔아서 예약이 쉽지 않아요. 회원들이 많아지니까 주말이나 성수기 때 예약이 어려워진 것이죠. 1000만원짜리 회원권은 그렇다 치고 1억원, 2억원짜리 회원권을 좀 달라야 하는데요. 예약이 잘 안 되니까 회원들 불만이 많죠.
또 아난티가 전국에 계속 늘어나서 좋긴 한데, 이게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아난티 부산 기장이나 서울 강남이나 비슷비슷하거든요. 회원들이 처음엔 새롭다고 좋아했는데, 여러 군데 가보니까 새롭지가 않은 것이죠. 금방 식상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돈이면 차라리 해외 간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서비스도 유명 호텔 체인에 비해 떨어져요. 아난티 코브의 경우 호텔은 과거 힐튼 브랜드를 썼는데, 지금은 자체 브랜드로 대체했죠. 메리어트, 힐튼 같은 유명한 해외 호텔 체인은 객실이나 레스토랑 같은 하드웨어도 좋지만 직원 응대가 남다르잖아요. 근데 아난티는 겉모양은 굉장히 좋긴 한데 소프트웨어가 약하다는 평가를 들어요. 2억원짜리 회원권 살 정도로 여유가 있는 분들이잖아요. 이분들이 기대하는 서비스 수준은 굉장히 높거든요. 근데 아난티는 서비스 노하우가 없다 보니 직원들의 응대하는 수준이 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요. 이건 사실 오랜 기간 호텔, 리조트 사업을 하면서 쌓아야 하는 노하우인데 아난티처럼 급격하게 성장한 회사 입장에선 잘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해요.
아난티의 단점을 늘어 놓긴 했지만 사실 단점은 누구나 다 있는 것이고요. 한국형 럭셔리 리조트, 호텔의 성공 사례를 보여준 건 분명한 것 같죠.
아난티는 호텔, 리조트 업계의 쿠팡 같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완전히 판을 흔들어 놓았잖아요. 롯데, 신라가 아난티에 자극을 받아서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도 궁금해집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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