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전 일시정지 의무에도 '쾅'…운전자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우회전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사진제공=뉴스1

"보행자가 안 보였어요."

최근 자동차 우회전 사고를 낸 운전자들이 경찰 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밝힌 진술이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을 지켰다면 사고를 피했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우회전 신호등 같은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4일 오전 9시 서울 광진구에서 40대 여성 A씨가 우회전하는 마을버스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는 사고 직후 바퀴에 다리가 잠시 끼어 있었다. 경찰과 소방이 여성을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길을 건너던 당시 횡단보도 신호등은 파란불이었지만 버스 기사는 "사각지대라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10월30일 오후 8시20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판교 테크노 중앙사거리에선 우회전하던 전세버스에 60대 여성 B씨가 치였다. B씨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버스 기사는 "왼쪽의 차를 보느라 사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고들은 모두 지난해 1월22일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개정되고 나서 벌어졌다. 개정 후 적응을 위한 3개월간의 계도 기간도 있었다.

개정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우회전시 △전방 차량신호가 적색일 때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 후 다시 출발할 때 보행자 유무에 따라 판단 △우회전 중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거나 건너려는 보행자가 확인되면 반드시 일시정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다 건넌 것을 확인하면 서행하라고 명시한다.

/사진제공=AXA손해보험

지난해 이 규칙을 준수하는지 묻는 설문조사에서 5명 중 1명은 '지키지 않는다'고 답했다. 지난해 10월 AXA손해보험이 만 19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 1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운전자 교통 안전 의식 조사'에 따르면 최근 1~2년 사이 바뀐 도로교통법 개정에 대한 인지도 순위에서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화'가 93.1%로 1위를 기록했다.

'우회전 일시정지 시 통행차 및 보행자 없을 시 서행 가능'이 89%로 2위를 기록했다. 응답자 상당수가 개정 규칙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77.7%만이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화를 준수한다'고 답했다.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를 운전자 개인에게만 맡겨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우회전 전용 신호등을 널리 보급해 운전자가 좀 더 현행법을 잘 준수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전국에 설치된 우회전 신호등은 205개다. 지난 1일 기준 서울에 위치한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가 6909개인 걸 고려하면 매우 적은 수치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운전자들이 개정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다면 우회전 전용 신호등 설치도 괜찮은 방법"이라며 "교통 체증을 유발할 수 있기에 우회전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곳이나 속도가 빠른 길목을 선정해 적재적소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교통 경찰관도 "우회전 신호등이 교통사고 예방, 보행자 보호 차원에서는 상당히 효과가 좋다"며 "작은 교차로는 몰라도 큰 교차로 쪽엔 무조건 있는 게 좋다고 본다"고 밝혔다.

오석진 기자 5stone@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