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왜 삼성만 항소하면 안 되나

강청완 기자 2024. 2. 1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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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모든 형사, 민사 사건은 세 번까지 재판을 할 수 있다. 법으로 심급제도와 3심제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혹여나 재판으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해당된다. 누군가 빠져나갈 수 있는 법망의 빈틈을 제도로 메우겠다는 취지다. 재판 결과가 부당하다고 느끼면 항소하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상고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아볼 수 있게 하는 게 우리나라 법 제도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계열사 부당합병과 회계부정 등 19개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지 약 3년 5개월 만이다. 법원 판결은 판결대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2심 재판에서 한 번 더 따져봐야 한다. 법이 그렇기도 하고 어느 재판이든 완벽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기이한 건 1심 선고 이후 유독 이 사건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다. 일부 언론에선 "검찰이 항소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그것도 제법 비중 있게 하고 나섰다. 2심 가서 삼성과 이 회장 더 괴롭히지 말란 얘기다. 한 신문은 미국에선 1심 무죄가 난 사건은 항소할 수 없다며 그 나라 사례까지 상세하게 실었다. 정작 당사자인 삼성과 이 회장은 말이 없는데도 말이다. 지난해 형사재판 항소심 접수 건수가 7만 1,167건에 이르지만 다른 사건에서 이런 주장을 좀처럼 본 적이 없다. 삼성이 세긴 세다.

미국에서 1심 무죄 사건에 대해 검찰이 항소할 수 없는 이유는 미국 법이 그렇기 때문이다. 미국 수정헌법 5조는 "어느 누구도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생명이나 신체의 위험에 두 번 처해져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이중위험금지의 원칙이다. 우리 법은 다르다.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계 국가에선 검사에게 실체적 진실 발견의 의무가 있다고 본다. 항소 못 하게 하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법을 개정하자는 이야기까진 하지 않는다. 무리한 주장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1심 재판에서 무죄가 났지만 2심에서 유죄로 뒤집힌 사건도 부지기수다. 대표적으로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이 있다. 2010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혔고,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2018년 공직선거법 재판도 그랬다. 상고심에서 파기환송 되긴 했지만 1심은 무죄였고 2심에서 벌금형이 나왔다. 그때는 아무도 미국 사례 운운하며 검찰이 항소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 상대를 봐가며 항소를 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그건 나쁜 논리다.

물론 이재용 회장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삼성 회장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국내 1위 기업이자 세계적인 대기업이다.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 검찰 수사를 비판하거나 검찰이 항소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들도 주로 이런 이유에 근거한다. 사법 리스크가 삼성의 글로벌 경영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총수의 불법 행위로 인한 사법 리스크와 경영 성과가 연결된다는 근거는 빈약하다. 객관적 통계를 갖춘 반론도 얼마든지 있다. 이런 논리라면 우리나라에서 기업 수사하면 안 된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 아닌가.


오히려 삼성이기에 더 공정하게 재판할 필요도 있다. 삼성은 국내 1등 기업이다. 삼성이 가면 길이 된다. 적어도 재계에선 그렇다. 몇 년 전 한 언론이 어느 중견 기업의 경영권 불법 승계 과정을 추적했더니 놀랄 만큼 삼성의 그것과 똑같았다. 1등 보고 배웠다는 뜻이다. 삼성 수사와 재판에 모든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좋지 못한 선례라면 바로잡아야 한다. 불법이 아닌 것으로 재판을 통해 확정된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사법기관의 과도한 기업 수사는 잦아들 것이고 기업 활동은 그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은 항소했지만, 삼성이니까 항소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삼성에도 도움이 안 된다. 과정은 험난하겠지만 자신 있다면 최종 무죄를 확정 받는 편이 낫다. 이 회장 사법 리스크는 곧 10년을 넘긴다. 그동안 두 번 구속과 석방을 반복했다. 삼성이 우리 경제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이미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이 되고 말았다. 역사적 평가와 의미를 분명히 새기고 갈 필요가 있다. 그게 이 회장과 삼성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고, 성역은 있을 수 없다는 다소 진부하지만 진리에 가까운 클리셰는 덤이다.

강청완 기자 blu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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