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기 "자본 들어오면 방송 사유화…공익적 민영방송 필요"

장슬기 기자 2024. 2. 1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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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 이훈기 전 OBS경인TV 기자, 더불어민주당 13호 영입인재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2007년 12월28일, 이훈기 당시 전국언론노조 OBS희망조합지부장은 노보 창간호에 실은 '위원장 글'에서 “희망조합원들은 무려 3년간 풍찬노숙을 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텨냈고 드디어 시청자와 약속을 지켰다. 감히 언론운동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고 자부한다. 새 방송을 만들어 조합원들의 완전 고용을 이룬 것도 노동운동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고 썼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OBS희망조합지부 2007년 12월28일자 창간호 노보 갈무리

-가장 뜨거웠던 순간이었을 것 같다.

“OBS 만들고 나서 우리 할 만큼 했으니 다 빠지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회사를 믿고서 이제 우린 방송 현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잘한 일인가 싶다. 초반에 더 잘했으면 '공익적 민영방송'을 만들었을 텐데, 싶은 생각도 든다. 순박했다. 물론 좌고우면하고 이것저것 계산했다면 그 모든 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변에서도 말리지는 않았지만 (새 방송이) 다들 안될 거라 생각했다. 언론인으로서 순수하게 방송만 생각했다. 나보고 정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할 수도 있는데, 노조하면서 싸움도 많이 했지만 극한 상황에서 새 방송 만들기까지 네트워크를 맺고 목표를 향해가며 때로 뭘 양보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다.”

▲ 2020년 OBS를 떠날 당시 이훈기 전 OBS 기자. 사진=이훈기 제공

경인지역방송 OBS의 상징이었던 전직 노조위원장 이훈기는 지난 2020년 9월 방송사를 떠났다. 그는 당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OBS를 “'공익적 민영방송'이라는 포부를 갖고 내 청춘과 인생을 다 바친 회사”라고 표현했다. 2019년 방송정책국장을 맡으며 IPTV 3사와 재송신료 협상에서 성과를 거뒀지만 2020년초 의정부총국으로 발령났다. 네번째 의정부 발령이다. OBS 구성원들은 그가 “어르신(대주주)께서 선배(이훈기)를 많이 괴롭혔다”고 전했다.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대외협력담당관으로 일했다. 그는 “2기 진실화해위 주요한 사건 중에 형제복지원·선감학원·서산개척단 등 3대 집단수용시설 사건을 열심히 홍보를 했다”며 말했다.

-진실화해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선감학원 유해발굴을 꼭 하고 싶었는데 마지막에 50여기 봉분에서 발굴해 공개했다. 진실화해위 그만두기 직전에 선감학원 피해자 대책위 분들이 감사패를 주신 일도 참 고맙다. 열심히 설득해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선감학원 피해자들 대상으로 조례도 만들고 도지사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 진실화해위 사건 중에 책임자가 이렇게 사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기도가 조례 만들고 나서 부산시장이 올해부터 형제복지원 피해자 지원을 시작했고 서산개척단 사건 피해자에 대해 충남도에서도 조례를 제정했다. 충남도와 도의원들 설득하면서 보람이 있었고 많이 배웠다.”

▲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위원회 회장(왼쪽)이 준 감사패를 들고 있는 이훈기 당시 진실화해위 대외협력담당관. 사진=이훈기 배우자 페이스북

-형제복지원 사건은 2기 진실화해위가 만들어지는데 상징적 사건이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사건이기도 하다.

“진상조사 결과 발표(2022년 8월)를 국민의 40%가 알도록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이분들이 국가배상 소송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주요 뉴스 시청률 등을 보면 목표를 추가 달성했다. 법원에선 지난 연말 1심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국회에 가면 뭘 하고 싶나?

“공익적 민영방송이 필요하다. 방송에 자본이 들어오면 사유화될 수밖에 없다. 지상파 개념이 희미해졌지만 공공자산인 전파를 사용하면 다른 소유구조의 틀이 있어야 한다. 방송법상 1대주주 지분제한이 40%인데 이정도로는 절대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40%가 맞는 건지, 어떠한 방송으로 분산시켜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전직 OBS 기자 이훈기를 13호 인재로 영입했다. 사진=민주당

-방문진처럼 공익적 대주주를 만들고 다양한 주체를 참여시키면 대주주가 견제될 거 같다. 다만 대주주 투자 유인이 줄어들지 않을까?

“그런 부분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공익적 민영방송'을 주장했던 사람으로서 입법에 관심을 가지려 한다.”

-지역방송 지원도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여러 지자체에 지역방송 지원조례가 있는데 강제조항이더라도 지자체장은 '왜 우리가 방송을 지원해야 하나'라는 마인드니까 실질적으로 가동하기 어렵다. 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또한 지역방송이 광고결합판매로 생존하고 있는데 (2020년 4월 관련 법안에 대해 헌법소원이 청구돼) 헌법재판소에 가 있다. 위헌으로 나오면 지역방송이 사실상 다 사라지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한다.”

-인천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는데, 지역신문·지역방송 비슷하게 어려운 처지인 걸 느끼지 않았나?

“지역신문 경영이 워낙 어렵다보니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모를 만큼 이상한 곳도 많다. 생존을 위해 본연의 역할을 잊어가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 피부로 느꼈기 때문에 다른 언론인 출신 정치인과 다를 것이다. 입법은 다른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읍소하지 않으면 어렵다. 전문성도 필요하지만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미디어오늘이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 7일, KBS가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 대신 진행한 녹화대담을 방영했다. 이날 대담에 대해 이훈기는 “김건희 여사 명품백에 대한 사과는커녕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 대통령을 보면서 과연 어떤 국민이 이해를 하겠나”라며 “분노만 자아냈던 최악의 대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7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가 YTN 최대주주를 유진이엔티(유진그룹)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그는 “뉴스전문채널은 공적인 성격의 채널인데 완전히 사적인 자본이 들어오면 사유화되는 건 뻔하게 눈에 보인다”며 “OBS보다 크고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데 제대로 견제하지 않으면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에선 윤석열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일단 법조차 지키지 않는다. (방통위는) 전원합의하는 것을 2명이 하는 등 맹점이 있는데 법이나 시행령에서 이런 사태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 보완입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방송법을 고민하겠다. 방통심의위는 지금 모든 리포트를 검열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는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아동학대 등 인권 문제에 대한 규제를 중심으로 하는 방향으로 고민해보려 한다. 언론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이들을 빨리 모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할 분담을 하고 현업 언론인들은 뭘 하고, 국회에선 뭘 해야 하는지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 뭐가 문제인지는 다 알지만 느슨해져있다. 아버지(이벽)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해직돼 물리적으로 힘들었지만 지금 언론인들이 소송당하고 정신적·경제적으로 피폐해지는 게 더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지사적 언론인의 시대도 아니지 않나. 현직 언론인들에게 비빌 언덕이 돼주고 싶다.”

-어디에 어떻게 출마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물론 당에서 결정하겠지만 비례대표로 나가는지, 지역구로 출마하는지? 벌써 인천 남동을에 출마할 거란 언론보도도 있다.

“영입될 때 지역구 출마를 전제로 했다. 당헌·당규에 따라 공천을 진행하고 영입인사들은 당에서 전략적 판단을 하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다. 현재 사는 곳이자 배우자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지역이기 때문에 인천 남동을 출마설이 나오는 것 같다.”

-영입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나?

“영입된 다른 분들과 함께 전국투어 토크콘서트를 다니고 있다. 4일 대전, 5일 광주에 다녀왔다. 2월29일까지 전국을 함께 다니면서 당원·지지자들에게 인사한다.”

-3대가 지역언론인 집안에서 부당한 권력이나 대주주·사주 언론탄압에 맞서왔다. 언론독립성 운동의 진정성으로 얻은 성과도 있다. 다만 유능했던 언론인, 유능한 노조위원장이 반드시 좋은 정치인을 보장하진 않는다.

“설득해서 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해서 실천으로 보여주겠다. 결과를 내고 보여줘야지 지금 잘하겠다고 말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 1947년 인천기자연맹 결성식 맨뒷줄 왼쪽에서 11번째 검은옷이 이훈기의 부친 이벽. 사진=이훈기 페이스북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냐는 질문에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1945년 대중일보에 실린 인천기자단 선언문으로 갈음했다.

“신문은 흔히 불편부당을 말하나 이것은 흑백을 흑백으로 가리어 추호도 왜곡치 않는 것만이 불편부당인 것을 확신한다. 엄정중립이라는 기회주의적 이념이 적어도 이러한 전민족적 격동기에 있어서 존재할 수 없음을 확신한다.”

그는 “지금은 엄정중립은 고사하고 양비·양시도 힘든 세상인데 80년 전에 이미 엄정중립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 기회주의라고 비판했다”며 “리영희 선생의 진실 추구와 맞닿아 지금 새겨볼 만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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