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종교·젠더 이슈 얘기했다간 "당신도 나락 갈 수 있다"

CBS 오뜨밀 2024. 2. 1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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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종교, 젠더 이슈는 '나락 가는' 주제?
정치혐오의 시대, 대화의 공통기반 사라져
'바이든 vs 날리면'처럼 의견이 사실 압도
권력자 아닌 소수자도 패러디? 적절할까
나락쇼, 여성 출연 없는 이유 생각해봐야
'캔슬 컬처' 셀럽에 대한 비판과 비난 사이
점점 심해지는 갈등의 상업화, 적정 수준은?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 채선아>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문화평론가와 정치철학자의 시각으로 풀어보는 시간입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두 분 나오셨어요.

◆ 손희정, 김만권> 안녕하세요.  

◇ 채선아> 오늘 주제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대한 얘기인데요. 대답 한 번 잘못했다가 소위 나락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주제로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나락이 불교 용어라고 하더라고요. 지옥이라는 뜻인데 인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나락퀴즈쇼'에 방송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제가 한번 설명해드릴게요.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누구 잘못인가요?"라고 MC가 물어요. 그러면 1번 부산시, 2번 정부, 3번 SK, 4번 현대, 5번 삼성. 이런 식이예요.


◆ 손희정> 저는 원래 피식쇼를 종종 봐서 나락퀴즈쇼 같은 경우는 짧은 영상으로 많이 봤어요. 이번에 몇 편을 쭉 다 봤는데 저는 갈등 회피형이라 손에 땀이 나고요. 특히나 충주시 공무원이 게스트로 나왔는데 저런 식의 정치적 질문을 공무원한테 하는 거예요.

◇ 채선아> 그 때 충주 시장님이 같이 오셔서 이 방송을 지켜보고 계셨던 게 큰 포인트였던 거죠.

◆ 김만권> 사실 저는 이 쇼를 오늘 방송 이전까지 몰랐어요. 이 쇼 자체에 대해서 평가할 만한 정보가 완전히 없어서 숏폼을 보고 느낀 건 그 콘텐츠만큼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게 타인의 고통을 가지고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타인의 고통을 너무 희화화하고 그걸 통해서 타인의 고통을 상업화하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타인의 고통을 상업화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다면 적어도 제가 본 숏폼에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손희정> 저는 좀 궁금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이게 다 짜고 하는 걸까? 아니면 실제로 약간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던지는 걸까? 이런 고민이 들었는데요. 거기에 등장하는 분들이 일반적으로 레거시 미디어 셀러브리티라기보다는 유튜브 셀러브리티들이더라고요. 뉴미디어의 유명인들, 관심을 끌면 끌수록 무플보다는 악플이 나은 시대를 살아남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어쩌면 이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셀링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김만권 선생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이것이 우리 시대의 비극이 아닌가. 나의 평판까지 다 깎아내려가면서 나의 자원을 쌓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악플과 악명을 안고 살아야 하는 어떤 숙명 같은 게 이 시대에 있다는 게 힘들더라고요.

◇ 채선아> 진짜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셀럽 공인들은 안 나오네요.

◆ 손희정> 그게 재미있는 게 피식쇼와 나락퀴스쇼가 같이 있는 거잖아요. 피식쇼에는 그런 셀러브리티들이 나오죠. 자신의 영어 능력을 자랑하고 자기가 얼마나 쿨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면서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로서의 명성을 만들어가는 분위기라고 한다면 나락퀴즈쇼는 좋은 크리에이터들이지만 사실은 더 이상 깎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게 비교 포인트인 것 같더라고요.

◇ 채선아> 거기서 건네는 질문들에서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정치거든요. 예를 들어 잼버리 사태가 났을 때 누구 책임인지가 질문으로 나왔어요. 1번 현 정부, 2번 전 정부, 3번 여성가족부, 4번 전북도청. 또 이런 질문도 있었어요. 가장 정치를 잘한 대통령 3명을 꼽아라. 그런데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 자체가 나락 간다는 상황이라는 거죠.


◆ 김만권> 기본적으로 정치 혐오가 깔려 있는 거죠. 그리고 정치 혐오가 단순히 정치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답하면서 나락으로 갈 수 있다는 걸 표현한 거잖아요. 그건 뭐냐면 이미 우리 안에 정치의 적대성이 들어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서로 편을 가르고 다른 편이 되었을 때 반대편에 의해서 아주 나쁜 평판을 안게 되고 제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기본적으로 이 정치 혐오라는 게 깊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바이든-날리면 현상' 같은 게 일어나요. 그러니까 그냥 듣는데 입장에 따라 다르게 듣잖아요. 정치가 적대성이 강해지면 사실의 영역이 돼야 되는데 사실이 의견의 영역이 돼버려요. 그때부터는 정치로 대화를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공통의 기반이 있어야 되거든요. 대화를 할 수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 사실이 의견의 영역이 돼버리면 그때부터는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거리가 없는 거예요.

◆ 손희정> 의견과 믿음의 영역이 되어버리는 것 같거든요. 피식쇼의 나락퀴즈쇼랑 비슷한 콘텐츠 중에 방송 중에는 'RPG'에 대해서 말하면 안 된다고 금지 시켰는데 시청자들이 RPG 관련된 영상을 띄운다든지, 댓글을 달아서 계속 이 유튜버를 암살하려고 하는 게 콘텐츠인 유튜버가 있어요. 그런데 그때 RPG가 뭐냐면 종교(religion), 정치(politics), 성별(gender)거든요. 종교, 정치, 성별에 대해선 말하지 말라는 건데 이걸 보면 어떻게 성별이 정치의 문제가 됐고 정치는 종교처럼 여겨지는지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 김만권 선생님이 말한 나락퀴즈쇼라든지 암살 콘텐츠라든지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되고 있다는 거죠. 결국 정치 혐오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다양한 의견에 대한 혐오 자체 혹은 낯선 타자에 대한 혐오 같은 것들이 이 나라에 깔려 있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채선아> 그러네요. 충주맨이 공무원이잖아요. 나와서 자꾸 물으니까 이렇게 말을 해요. "정치는 모릅니다." 이게 참 인상적인 답변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냥 의견 자체를 개진하는 게 부담스러운 상황이 된 거예요.

◆ 손희정> 그러니까 한국에는 굉장히 이상한 방식으로 중립을 요구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폴리테이너'라고 해서 '폴리틱스'와 '엔터테이너'를 합친 거죠. 정치 활동을 하는 연예인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나락퀴즈쇼 콘텐츠가 미국의 셀러브리티 문화 안에서는 좀 다른 결로 작동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현실 정치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거죠. 오히려 소수자 혐오라든지 인종 문제라든지 미국에서는 나락으로 갈 수도 있지만 한국하고는 다른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 김만권> 기본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대해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되거든요. 그리고 어떤 가치의 문제나 인간의 존중의 문제가 달려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함부로 말하는 것들을 제한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도덕적으로 삼가는 거죠. 그런데 정치적 문제는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다른 입장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조율 과정이 나이스할 수만은 없어요.

그러니까 내 것을 내미는 순간이 있어야 되거든요. 누군가가 자기 입장을 내밀었을 때 '이게 저 사람 입장이구나' 그러면 내가 좀 더 설득력 있게 입장을 내밀어야 되는데 못 내미는 경우가 되면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상대방을 희화화하고 상대방을 부도덕한 존재로 만들어서 깎아내리는 현상들이 나타나거든요. 정치가 망가지는 순간이고 제도권 정치가 의미 없어지는 순간이고 정치 혐오가 만들어지는 순간이고 사람들이 정치 효능감을 잃어가는 순간이에요.


◇ 채선아> 그렇죠. 그래서 명절에 모이면 정치 얘기를 못 하잖아요.

◆ 김만권> 저희 아버지랑 저랑 정치 입장이 완전히 달랐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랑 좋았던 기억이 뭐냐면 다른 입장 가지고 계속 싸웠던 기억이에요. 아버지는 제가 잘못했다고 그러고 저는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그러면서 계속 싸웠던 기억이 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건 또 그 순간이에요. 결국은 그 입장을 통해서 저도 다른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고 아버지도 결국은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느 순간인가 뭔가 또 바뀌는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결국은 우리가 입장이 많이 다르더라도 적대시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하는 게 상당히 중요한데 적대시가 시작되면 이야기가 단절이 돼요.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이야기를 안 하는 게 미덕이 되고 아예 다툼을 일으키지 않는 게 미덕이 되는데요. 정치 이야기로 갈등이 빚어지면 그것을 조정하는 능력 자체가 상실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성적으로 대화하면서 서로 옳은 입장을 지지해 나가면서 자기 입장을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건데 정치 혐오나 적대가 깊어지면 그런 일들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거죠. 너무 깊어진 나머지 대답 한마디를 잘못하면 나락 가버리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거죠.

◆ 손희정> 나락퀴즈쇼를 보고 있으면 이런 분위기 자체를 약간 패러디하고 풍자하려는 의도 같은 게 있었던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런데 조금씩 그 질문을 어떻게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선을 넘기 시작하면 염려해야 하는 상황도 있는 거죠.

◇ 채선아> 지금 논란이 불거진 게 있었어요. 다음 중 가장 싫어하는 운동을 고르시오 라는 질문이었는데요. 1번 3.1 운동, 2번 흑인 인권 운동, 3번 노동자 인권 운동, 4번 여성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출연자가 4번 여성 운동을 고르기도 했지만 보기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견들이 상당히 많으면서 어떻게 여성 운동을 농담 따먹기 하냐, 이런 반발도 불러왔단 말이에요. 어떻게 보셨나요?


◆ 손희정> 현실 정치를 가지고 풍자를 하는 것까지는 긴장이 되면서도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현실 정치를 넘어서서 소수자 운동을 가지고 오는 순간 의도 자체가 조금 달라진다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 김만권> 기본적으로 이 보기들 전부 다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 운동이잖아요. 약자의 입장에서 나의 권리를 찾아가는 어떤 이야기들인데 거기서 그걸 굳이 고르라고 한다는 게 특히 싫어하는 운동을 고르라고 한다는 게 정말 어떤 의미와 어떤 풍자가 있을까. 이게 정말 풍자의 역할은 할 수 있는 건가. 패러디의 역할은 할 수 있는 건가. 저는 약간 의문이 들었어요. 어쨌든 제가 이것 하나를 가지고 전체의 쇼를 비난할 수는 없고 그냥 이 질문 자체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채선아> 이 질문에서 불거졌던 논란이 젠더 문제 갈라치기를 했다는 거였거든요.

◆ 손희정> 젠더 갈라치기를 했다는 비판 때문에 구독자들이 취소하기도 했어요. 여성 유저들 같은 경우에는 "이건 볼 수 없다." 그런데 피식 대학이 정말로 그런 선들을 잘 타면서 굉장히 스마트하게 만들어 온 쇼였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이 질문에서 약간 실망스러운 부분이 분명히 있었던 거죠. 그런데 나락퀴즈쇼라고 하는 것의 컨셉 자체를 보면 문제가 생겼을 때 캔슬 해버리는 캔슬 문화에 대한 비평을 담고 있는 쇼예요. 그래서 나락퀴즈쇼가 말하는 나락이 캔슬 문화의 희생양이 된 예능인들, 셀러브리티들을 의미하거든요.

풍자를 넘어서서 소수자를 혐오하는 흐름에 올라타는 작은 순간 하나 때문에 나락퀴즈쇼도 캔슬 문화 안에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런데 저는 캔슬 컬처의 속도에는 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거든요. 어떤 식의 이야기가 터져 나왔을 때 너무 빠르게 판단하고 너무 빠르게 캔슬을 하고 그래서 너무 빠르게 어떤 장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의 어떤 힘 같은 건 좀 염려하지만 캔슬 문화가 등장했던 맥락은 세심하게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소비자로서 캔슬할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 어떤 소수자들이 흑인일 수도 지금 3.1운동 나왔으니까 압제 하에 있는 시민들일 수도 있고 여성들일 수도 있을 텐데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 캔슬이었을 때 그럼 우리는 이걸 어떻게 고민해야 되는가. 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잘 풀어낼 수 있는 정치적 장을 함께 마련하면서 캔슬 문화의 성급함 같은 것들을 비판할 수 있어야지. 그런 건 없이 "그냥 너네들은 시끄러워" 해버리는 방식이라면 실망스러운 수준의 인식이죠.

◇ 채선아> 캔슬 컬쳐라는 게, 누군가가 뭔가 논란이 되는 발언을 하면 바로 출연을 거부한다든지 구독 취소해버린다든지 이런 거고 그동안 이런 움직임이 계속 생겨왔는데 너무 성급한 것도 우려가 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 손희정> 한편으로는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까지 나락퀴즈쇼에 출연한 출연진들이 대부분 남성들이더라고요. "여성은 왜 출연할 수 없을까?"라고 질문해 본다면 나락퀴즈쇼가 유머로 끝날 수 있는 건 남성 출연자들까지 아닐까 그래서 어떤 남성이 독립 운동가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냥 웃고 넘어가는 일이 된다면 어떤 여성 출연자는 그거 하나 때문에 엄청난 캔슬 문화에 시달려야 되기도 했거든요. 성별의 문제를 개입해서 비평을 해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단 조금 더 나락퀴즈쇼를 지켜봐야 되긴 하겠죠.

◇ 채선아>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조회 수는 계속 올라가고 있는 상황은 맞거든요. 이 인기의 비결도 우리가 분석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김만권> 서로가 갈등하는 시대에서는 갈등을 만들고 거기서 논란을 만들수록 조회 수가 높아지는 성향들이 있거든요. 갈등과 논란의 상업화죠. 그 측면이 여기에 내재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은 드는데 손희정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이 쇼가 그 선을 잘 지켜왔다고 말씀하시잖아요. 과거에 이 쇼가 해왔던 행적을 우리가 같이 고려하면서 그러면 왜 이때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을까를 우리가 같이 생각해 보고 그걸 토론하고 논의하는 장으로 삼아야지, 그래서 잘못됐다. 다 끝내버리자 이런 식으로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게 오늘 저희들이 전달하고 싶은 중요한 메시지인 것 같아요.

◇ 채선아> 오늘 여기까지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 철학자와 함께했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 손희정, 김만권>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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