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도 포탄도 부족…우크라 새 총사령관 앞에 놓인 난제들
'소련군 출신 장성' 약점탓 정치권에 목소리 낼 수 있을지 주목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2년전 우크라이나 전역을 휩쓴 러시아군을 상대로 기적적 반격을 성공시킨 전쟁영웅인 올렉산드르 시르스키(58) 신임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앞에는 난제가 산적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야심 차게 준비했던 대반격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는 예전만 못한 실정이다.
무려 1천㎞에 걸쳐있는 방대한 전선에서 소모전이 장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은 포탄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드론(무인기) 전술 등을 빠르게 모방하면서 기술적·전술적 우위도 약화하는 추세다.
미국 CNN 방송은 "특히 도네츠크와 하르키우 전선의 우크라이나군은 포탄과 탄약, 숙련병 부족이 심각한 실정"이라고 10일(현지시간) 짚었다.
미 의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공화당 강경파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법안 처리를 가로막은 상황이 장기화한 것이 물자 부족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155㎜ 포탄 100만발을 지원하겠다던 유럽연합(EU)의 약속도 기한내에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등이 유럽내 생산을 고집했지만 정작 생산역량이 부족해 충분한 양을 만들어내지 못한 탓이다.
반면, 전시경제로 전환한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를 우회해 벌어들인 외화로 여전히 막대한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러시아군 인명피해가 훨씬 크다고 알려졌음에도 병력 격차가 좁혀질 기미도 없다.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 국장은 우크라이나 주변에만 "51만명의 (러시아군) 병력이 모여 있다"고 말했다.
개전초 우크라이나군은 상대적으로 높은 숙련병 비율을 앞세워 러시아군을 농락했지만 2년간의 전쟁으로 이중 상당수가 전사하거나 부상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CNN은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군 인명피해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지난 2년간 최소 7만명이 숨지고 10만명이 넘는 장병이 부상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작년 12월 우크라이나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33%가 '상황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개전후 3개월 차인 2022년 5월 여론조사에서 나온 같은 응답(16%)보다 갑절로 늘어난 것이다.
그만큼 총사령관 교체만으로 불리한 전황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미국 뉴헤이븐 대학의 매슈 슈미트 국제문제 프로그램 국장은 CNN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시르스키 총사령관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임무로 '전선 안정화'를 꼽았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소모된 탱크와 장갑차 등 기갑장비를 재수급하는 것과 서방 군수물자를 원활히 지원받아 전선의 포탄 부족 문제를 해소하는 것, 장거리 공격이 가능한 무인기 등으로 러시아 본토의 보급시설 등을 공격해 러시아군의 공세의 맥을 끊는 것 등이 주요 과제로 거론됐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전달할 F-16 전투기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술을 개발하고, 부족한 병력을 수급하는 한편 드론 등 무인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데도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과제 중 상당수는 시르스키 총사령관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측면을 지니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히는 포탄 및 탄약 부족은 미국과 유럽의 정치 상황과 연계돼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병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동원 확대도 도시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정치권이 주저하면서 지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선 도시 출신 젊은이들은 각종 군면제 제도와 뇌물로 병역을 기피하거나 후방에서 복무하고, 시골 출신의 중장년이 최전선에 투입되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돼 왔는데 이를 해결하려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시르스키 총사령관에게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필두로 한 정치권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도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블라디미르주 태생인 그는 소련군 출신의 유일한 우크라이나군 고위급 장성이란 약점 때문에 줄곧 견제를 받아왔다. 한때 시르스키의 부하였던 발레리 잘루즈니가 2021년 그를 제치고 총사령관직에 오른 것도 출신이 발목을 잡은 결과란 후문이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던 전임자 잘루즈니를 해임한 젤렌스키 대통령을 상대로 시르스키 총사령관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적 인기를 끌던 잘루즈니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쫓겨나고 시르스키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 때문에 우크라이나군 내부에서 계파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시르스키는 잘루즈니의 해임이 확정되기 전 젤렌스키 대통령이 총사령관직을 제안했을 당시에는 이를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10일 군 고위급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무인체계·드론개발 담당 부참모장에는 바딤 수카레우스키 대령이, 군·전투체계 혁신 담당 부참모장에는 안드리 레베덴코 대령이 임명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에 더해 장성급 인사 3명을 시르스키 총사령관과 함께 우크라이나군을 이끌 부사령관으로 임명했다면서 "관리 팀 재편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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