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로 간 ‘배드파더스’ 신상공개···판사마다 다르게 본 ‘비방이냐, 공익이냐’

오동욱 기자 2024. 2. 11. 11:1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경향신문 DB

양육비 지급 의무를 다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자 구본창 대표가 지난 5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정보통신망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유·무죄를 가르는 기준인 ‘비방 목적’과 ‘공익 목적’이 불명확하다며 법률의 위헌성을 가려달라는 것이다.

정보통신망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정보통신망법 제70조 1항)를 처벌한다. 다만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형법 제310조)”는 처벌할 수 없다.

구 대표가 제출한 헌법소원 청구서에 따르면, 그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정보통신망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각급심이 사실적시의 ‘목적성’을 무엇으로 판단했는지에 따라 유·무죄가 갈렸다.

2020년 1월14일 오전 양육비를 주지 않는 코피노 아빠들의 실명과 얼굴 등을 공개해 양육비를 받아내는 ‘배드 파더스’ 관리자 구본창씨가 명예훼손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경기 수원지방법원 앞에 서있다. 권도현 기자.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의 공익 목적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수의 부모와 자녀가 양육비를 받지 못해 고통받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아가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는 것이다. 반면 2심과 3심은 비방 목적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베드파더스가 “사적 압박을 통해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며 “얼굴 사진과 세부 직장명 공개로 인격권 내지 명예가 과도하게 침해”했다는 것이다.

헌법소원 청구서에 따르면, 상하급심에 따라 사실적시의 목적성이 다르게 판단된 것은 구 대표만이 아니다. A씨는 2009년 동물병원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는 내용을 인터넷 카페에 올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기소됐다. A씨는 2010년 1심에서 비방 목적이 크다며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2년 뒤인 2012년 대법원에서는 ‘공익 목적’을 인정받았고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B씨는 2008년 네이버 지식인 게시판에 한 성형외과의 성형시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기소됐다. 그도 2008년 1심에서 ‘비방할 목적’이 크다며 유죄를 판결받았지만, 2009년 대법원은 ‘공익 목적’을 인정해 무죄로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법률로 규제하는 표현 개념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만 표현의 자유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23년 9월26일 헌법재판소는 정보통신망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위헌성 판단을 요구받기도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비방할 목적은 법관의 보충적 해석 작용 없이도 일반인들이 그 대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고 “비방할 목적과 공공의 이익에 대한 판단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며 비방 목적과 공익 목적이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마저 ‘비방 목적’과 ‘공익 목적’에 대한 판단을 두고 오락가락하고 있다. 국내 한 프랜차이즈 업체 직원이었던 C씨는 2017년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e메일을 전 직원에게 보냈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기소됐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왜 성희롱 당시엔 조치를 취하지 않았냐’며 공익 목적이 아니라고 보고 유죄로 판결했다. 2심도 유죄 인정을 유지했다. 그는 대법원에 가서야 “피고인은 성희롱 피해사례를 공유함으로써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피해구제에 도움을 주고자 e메일을 전송했다”는 공익 목적을 인정받았다.

대구 지역의 한 여성 단체는 ‘국립대 교수의 제자 여학생 성추행 사실’을 인터넷 홈페이지와 소식지에 게재했다가 정보통신망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범죄사실의 공표에 있어서 충분한 증거나 조사 없이 가해자의 실명을 공표하는 것은 공익 목적보다 비방 목적이 더 크다”며 유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5년 학내 성폭력 사건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처벌 및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한 공익 목적을 인정했다.

D씨도 인터넷 포털의 산모카페에 한 산후조리원을 비방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으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1심 법원은 해당 게시글이 산후조리원에 대한 정보 제공을 넘어 산후조리원을 인격적으로 비난하고 있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적시된 사실이 산후조리원 정보를 구하는 임산부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공익에 관한 것”이라며 “주요한 동기가 공익적이라면 부수적으로 사익적 목적이 있어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