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윤석열, 2024 한동훈이 선거 앞두고 외친 ‘이것’
“부산을 사랑한다. 국민의힘에서 케이디비(KDB)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대단히 높은 최우선 순위 과제고, 반드시 내려오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할 것이다.” (2024년 1월10일, 부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부산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다. 부산이 세계 최고의 해양도시·첨단도시로 발돋움하려면 금융 자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산은을 부산으로 이전시키겠다.” (2022년 1월15일, 부산,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2년 전 언급된 ‘산은 부산 이전’이 최근 다시 집권당의 사실상 당대표 역할을 하는 정치인의 입에 또 올랐습니다. 지난번에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고 이번에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번 다 ‘선거’(대선·총선)를 2~3개월 앞둔 시점에 나온 말입니다.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 부산 유세에서 단 3일 만에 입장 바꿔
‘산은 부산 이전’을 먼저 꺼낸 것은 윤 대통령입니다. 2022년 1월15일 당시 그는 대선 후보였는데요. 부산 유세에서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을 깜짝 발표한 겁니다. 당시 윤 후보는 “부산은 항상 힘이 넘치고 역동적인 곳이라 올 때마다 늘 기운을 받는다. 부산 시민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줘야 한다”고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산은 부산 이전’ 공약은 윤 대통령의 이전 입장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이었는데요. 공약을 내기 불과 3일 전까지만 해도 윤 대통령은 ‘국책은행 서울 유지’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2022년 1월12일 당시 윤 후보가 전국금융산업노조에 보낸 서면 답변서를 보면, 그는 ‘흔들림 없는 서울 국제금융허브 정책 추진’이라는 금융노조의 요구사항에 ‘동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국책은행을 서울에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2017년 전주로 이전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서울로 다시 이전’하는 내용에도 ‘동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당시 윤 후보는 “공기업 이전의 적절성을 종합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국책금융기관의 지방이전은 조직의 효율성 및 고유기능의 저하 등을 감안하여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가 되기 전부터 ‘정부가 일방적으로 기업을 지역으로 이전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2021년 7월 전 검찰총장 신분으로 대전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그는 “지역균형발전은 한국 사회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정부의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이 아니라 기업들 스스로 지역으로 내려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기업이 지방에 이전하면 교육 등의 문제로 가족들은 수도권에 있고 아버지만 지방에서 케이티엑스(KTX) 타고 왔다 갔다 한다”며 “지나치게 정부 주도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까 실질적으로 지역 주민들이 이익을 느끼지 못한다”라고도 주장했죠.
당시 윤 후보가 부산 유세에서 갑자기 ‘산은 부산 이전’ 공약을 발표한 것에 대해 부산 민심 잡기 ‘선거용’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전 검찰총장 때부터 꾸준히 공기업 지역 이전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윤 후보가 단 3일만에 입장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지방 이전 절차를 위해 필요한 ‘노사 협의’ 없이 진행
이동걸 당시 산은 회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는 2022년 5월2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윤 대통령 산은 부산 이전 공약에 대해 “(이전 논의가)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 절차 없이 이뤄지는 것에 대해서 심히 우려스럽다”며 “지역균형발전에 누가 동의하지 않겠나. 다만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하면 퍼주기가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7월 ‘12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며 ‘국토공간의 효율적 성장전략 지원’이라는 항목 아래 ‘산은 부산 이전 추진’을 명시했습니다. 이후 공약 추진을 위한 절차가 진행됐습니다. ‘절차적 정당성’을 지적한 이 전 회장의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지난해 3월7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산은·금융위원회·국토교통부 등을 대상으로 ‘산은의 지방이전 절차 안내’ 공문을 보냈습니다. 이 공문을 보면,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을 위해서는 △산은 회장이 ‘내부 노사협의’를 거쳐 이전안을 마련하고 △이전안을 금융위에 제출하고 △금융위는 이전안을 검토해 국토교통부에 이전기관 지정을 신청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산은 노조는 “강석훈 산은 회장이 내부 노사협의 없이 의견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산은 노조가 △타당성 검토 △임직원 의견 청취 △외부 전문가 및 여론 수렴 등을 제안했지만, 산은 쪽이 거절했다는 겁니다. 이후 산은 쪽은 회장·부행장만으로 구성된 협의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의견서를 의결하고 금융위에 제출했습니다. 균형위가 공문을 통해 ‘내부 노사협의’를 명시했음에도 산은 쪽은 노조와 상의하지 않고 20일 만에 부산 이전을 위한 첫 단계를 완료해 버린 겁니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윤 대통령의 ‘경제 교사’로 불립니다. 강 회장은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선대위·선대본부 후보 정무실장을 맡았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당선인 정책특보를 지내며 경제 정책을 담당한 바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부산 이전 1번으로 하게 산은 컨설팅에 지시”
윤 대통령이 산은 이전을 위한 컨설팅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산은은 지난해 2월7일 지방 이전의 효과를 분석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을 개시한 바 있습니다. 5개월 뒤(7월27일) 발표된 컨설팅(국정과제인 산은 지방이전 추진시 한국산업은행의 정책금융 역량 강화방안) 결과를 보면, 두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산은을 부산으로 100% 이전하는 ‘지역성장 중심형 이전 방안’과 서울에 일부 기능을 남겨두는 ‘금융수요 중심형 이전 방안’입니다. 금융위와 산은은 ‘산은 100% 이전’ 방안을 채택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난해 9월7일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사실 산은은 올해 초에 윤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가 있었다. 용역 결과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도 부산 이전을 무조건 1번 안으로 추진하라는 지시도 했다”고 발언했습니다. 산은 노조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컨설팅 결과가 나오기 전 ‘객관적·중립적으로 수행돼야 하지만, 부산 이전에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외부 압박이 심하다’는 내용으로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 김 대표의 말이 이를 증명했다는 겁니다.
산은노조는 지난해 9월1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8억원을 넘게 들인 외부 컨설팅 보고서는 여당의 당 대표가 스스로 인정하는 윤 대통령의 ‘주문 제작’ 보고서”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정부 컨설팅 “왜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이전해야 하는지, 산업은행이 부산에 가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산업은행 부산 이전으로 어떠한 경제적 효과가 있을지, 그 어떤 것도 검토되지 않은 ‘껍데기’ 보고서”라고 했습니다.
한동훈 위원장 “산은법 개정하려면 국민의힘 총선 승리해야”
국토부는 지난해 5월3일 산은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했습니다. 산은이 이전 규모·시기·비용 등 구체적인 지방 이전 계획을 수립해 금융위의 검토를 거쳐 국토부에 제출하면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심의·의결을 통해 최종 승인됩니다. 하지만 현재 산은의 위치는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한국산업은행법 제4조 1항은 “한국산업은행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정합니다. 이 때문에 산은 이전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산은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한 위원장은 부산을 방문해 이를 이유로 국민의힘에 표를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10일 부산에서 열린 당원 간담회에 참석해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 이걸 완성하기 위한 산은법 개정을 이번 국회에서 어떻게든 통과시켜 보겠다”며 “민주당은 아마 반대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총선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4월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제일 먼저 산은법을 통과시키겠다”라고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동북아 경제중심’ 위해 산은 잔류시켜…“타당성 검토 없이는 ‘총선용 공약’”
1954년 4월1일 설립된 산은은 자산규모 300조원에 이르는 국책은행입니다. 산업 개발 육성, 사회기반시설 확충, 지역 개발, 금융시장 안정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민간금융기관이 진출하기 어려운 대규모, 고위험 자금을 지원합니다. ‘토스’, ‘마켓컬리’ 등이 산은의 투자를 거쳐 성장한 곳입니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도 산은의 구조조정을 거쳤습니다.
산은 부산 이전 효과에 대한 의견은 갈립니다. 2022년 2월 부산시 발표를 보면, 산은 부산 이전시 부·울·경 생산 유발효과는 2조4076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1조 5118억원으로 분석된다고 합니다.
반면 한국재무학회가 산은 노조의 의뢰를 받아 발표한 ‘산업은행 부산 이전 시 재무적 파급효과 산출’ 보고서를 보면, 산은이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산은 기관 손실 7조39억원, 이로 인한 국가경제 파급효과 손실 15조4781억원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산은 거래 기업 본사의 약 70%가 수도권과 해외에 있어 고객 기업의 피해도 우려된다고 합니다. 금융위·금감원 등 수도권에 위치한 협업 기관과도 소통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도 반대 이유로 꼽힙니다. 노무현 정부는 1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면서도 산은을 포함해 중소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금융감독원, 한국수출보험공사 등은 수도권 안에 두도록 했습니다. 핵심 과제였던 ‘동북아 경제중심 조성’을 위해서입니다.
산은 노조 관계자는 “산은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 아니라 매년 수익 일부를 정부에 배당하는 기관이다. 산은이 이전해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면 국가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산은은 2022년 기준 정부에 8331억원을 배당했습니다.
산은 노조에서 가장 문제 삼는 부분은 이전 타당성을 공론화하는 과정이 없었다는 겁니다. 산은 노조는 지난해 3월20일 산은 쪽에 ‘노사 공동 이전 타당성 검토 티에프(TF)’를 설립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산은은 4일 뒤 “국가 정책에 대한 타당성 검토는 정책 대상 기관인 산은의 검토사항이 아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노사가 공동으로 검토하는 이전 계획이 마련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산은 부산 이전에 대해 노사가 소통하는 자리는 없었다고 합니다. 산은 노조 쪽은 “산은 부산 이전 공약이 총선용이 아니라면 타당성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산은 관계자는 “산은 이전으로 동남권을 국가 경제의 또 다른 축으로 성장시킨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현재 법 개정과 관련해 국회에서 논의가 진행 중인 상태”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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