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보이스피싱으로 어떻게 200억 원을 가로챘나?
보이스피싱. 이제 '국민범죄'라고 일컬어도 될 만큼 전 국민이 보이스피싱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보이스피싱 피해 실화 소재의 영화 '시민덕희'가 개봉해 깜짝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전경호)는 범죄단체를 조직해 보이스피싱을 저질러 200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명에게 총 37년의 징역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은 중국 항저우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해 2017년부터 2023년 사이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하는 방법으로 의사 등 피해자 150여 명으로부터 200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이다.
콜센터, 출집, 장집, 세탁집 체계 갖춘 보이스피싱 범죄조직
해당 범죄조직은 서울중앙지검 검사와 수사관, 금융감독원 및 금융위원회 직원을 사칭해 국내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으니 돈을 인출해 금감원 직원에게 전달하도록 하는 보이스피싱 '콜센터', 금감원 직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위조된 금융위원회 서류를 건네주고 금원을 받은 후 대포계좌에 입금하는 현금 수거책의 범행을 지시·관리하는 '출집',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칭 '대포계좌'를 공급하는 '장집', 장집으로부터 공급받은 대포계좌와 연결된 체크카드와 비빌번호 등을 국내 인출책에게 전달해 입금된 돈을 인출해 송금하도록 하는 '세탁집'의 체계를 갖췄다.
세탁집의 지시를 받고 대포계좌에 입금된 피해금원을 인출해 보이스피싱 조직에 송금하는 '인출책'과 현금 수거책을 모집해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돈을 대포계좌에 입금하도록 지시하는 '모집책'도 뒀다.
범행은 하부조직들이 맡은 역할에 따라 유기적으로 실행했다. 콜센터 사무실에서는 피해자들의 DB를 전달받아 검사와 수사관을 사칭하면서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해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으니 현금을 인츨해 금감원 직원에게 전달하거나 그들이 지정하는 대포계좌에 돈을 이체하도록 속였다. 출집 사무실에서는 피해자들이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해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현금 수거책에게 전달하면 현금 수거책으로 하여금 현금을 대포계좌로 무통장 입금하게 했다. 장집 사무실에서는 국내의 불특정 다수 사람들에게 연락해 거래실적을 쌓아 대출을 해 줄 테니 계좌와 연결된 체크카드 등을 보내달라고 거짓말을 해 체크카드와 해당 카드에 연결된 계좌번호 및 비밀번호를 취득해 대포계좌를 확보했다. 세탁집 사무실에서는 이를 국내 인출책에게 전달해 피해금이 입금된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송금하도록 했다.
"사기사건에 당신 계좌 연루" 피해자들 속출
판결문에 나타난 피해사례들을 보면 피해자 박모씨는 2019년 11월 29일경 서울중앙지검 검사 등을 사칭하면서 "거액 사기사건에 당신의 계좌가 연루되었는데 이 사건의 공범인지 확인해야 하고, 오늘 중으로 피해자 인증을 받아야 한다.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자금을 건네주고 검수를 마치면 돌려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전화한 사람은 검사가 아니었고 전화 발신지도 국내가 아닌 중국 항저우시였다. 피해자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된 사실도 없었다.
결국 보이스피싱에 노출된 피해자 박씨는 2019년 11월 29일 전주에서 현금 2억 5000만 원을 인출해 금감원 직원 행세를 하는 현금 수거책에게 전달했다. 2022년 7월 19일부터 피고인 A씨가 피해자 6명으로부터 교부해 편취한 피해금액만 113억여 원에 달했다.
또 다른 피해자 주모씨는 2017년 12월 4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팀 검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의 전화를 받았다. "거액 사기사건에 당신의 계좌가 연루되었는데 이 사건의 공범인지 확인해야 하고, 오늘 중으로 피해자 인증을 받아야 한다.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자금을 건네주고 검수를 마치면 돌려주겠다"고 말한 이는 사실 검사가 아닌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다. 피해자 주씨는 이들의 전화에 속아 2017년 12월 4일 서울에서 현금 1400만 원을 금융감독원 직원 행세를 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건넸다. 피고인 B씨가 2022년 10월 17일까지 피해자 127명으로부터 편취한 피해금액은 85억여 원으로 집계됐다.
재판부 "피해자들 이루말 할 수 없는 고통", 1심 판결 검찰 항소
보이스피싱 조직의 치밀한 범죄 행각은 경찰이 지난해 IP 추적과 전화 음성 목소리 분석 등을 통해 중국에 거점을 둔 범죄조직을 확인하고 조직원 40여 명을 검거하며 탄로 났다.
재판부는 지난 7일 판결에서 "피고인들은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해 조직이 마련한 사무실에서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면서 경찰, 검사와 같은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 직원 등을 사칭해 피해자들을 직접 속이는 역할을 담당했다"며 "이러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계획적·조직적으로 이뤄져 다수 피해자를 양산하고, 피해잗르에게 중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힘은 물론 사칭의 대상이 된 공공기관, 금융기관의 신용과 거래 안전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으로서 엄벌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으로 인한 피해자가 다수이고, 총 피해액도 수백 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라며 "이 사건으로 인해 인해 평생을 모아 온 재산의 대부분을 잃은 피해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 A(49)씨, B(33)씨, C(29)씨에게 각각 징역 13년, 11년,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 가담 정도와 피해자들이 엄벌을 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재판부의 1심 판결이 나온 이튿날인 8일 항소를 제기했다. 천안지청은 보이스피싱 범죄의 사회적 해약이 큰 점, 콜센터 조직원 역할을 하며 거액을 편취해 죄질이 불량한 점, 피해 회복이 이뤄질 가능성이 극히 낮은 점 등을 고려해 피고인들을 더욱 무겁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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