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키운 두 회사, 국세청 통장 1조원 유출 일으켰다… 무슨 일?
프리랜서, 개인·법인 사업자에 3년여간 1.1조원 돌려줘
“경찰 보다 국세청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범죄엔 공소시효가 있지만 세금은 죽을 때까지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국세청이 거둬들인 세금이 최근 수년새 1조원 넘게 ‘합법적’으로 빠져나갔다. 국가의 지원을 받고 큰 스타트업이 ‘착오로 더 낸 세금을 되돌려받는 서비스’를 성공시키면서 벌어진 일이다. 국세청 입장에선 정부가 호랑이를 키운 된 셈이 됐다.
8일 조선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자비스앤빌런즈’가 운영하는 개인의 세금 환급을 도와주는 서비스 ‘삼쩜삼’은 지난해 기준 누적 가입자수 1900만명을 돌파했다. 2020년 5월부터 이제까지 삼쩜삼이 이들을 대신해 국세청으로부터 돌려 받은 환급액 총액은 벌써 9400억원을 넘겼다.
삼쩜삼 주고객층은 아르바이트나 프리랜서 등 단기 계약을 맺고 일회성으로 일하는 연소득 3000만원 이하 긱 워커(Gig Worker)다. 이들의 평균 환급액은 10만원대. 세무사를 통하면 환급 신청에 최소 20만원을 내야 하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환급을 신청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자비스앤빌런즈는 이런 긱 워커의 고충을 파고 들었다.
삼쩜삼이 긱 워커의 동반자라면 개인사업자와 법인사업자에겐 ‘지엔터프라이즈’가 운영하는 ‘비즈넵’이 있다. 비즈넵은 사업자가 주고객층이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환급액을 자동 계산해 보여주고, 신청하면 환급까지 도와준다.
8일 기준, 비즈넵에서 환급금을 조회한 개인사업자 중 34%, 법인사업자 중 50%는 돌려받을 세금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개인사업자는 평균 240만원, 법인사업자는 평균 750만원 환급금이 쌓여 있다. 2022년 9월 출시된 비즈넵은 누적 가입자수는 100만명, 지난달 기준 누적 환급액은 2000억원을 돌파했다.
쉽게 말해 이들이 하는 일은 개인과 소기업이 더 낸 세금 1조1400억원을 국세청으로부터 돌려 받아다 주는 것이다. 자체 기술로 쉽게 세금을 돌려받게 해주는 이들은, 고객들이 돌려 받은 환급액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업 구조다. 지난해 자비스앤빌런즈는 500억원, 지엔터프라이즈는 17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양사가 창출한 고용은 벌써 200명을 넘어섰다.
◇정부 대상 과오납 세금 환급 서비스 청년 기업... “정부가 호랑이를 키웠네”
이들 스타트업은 이제껏 환급 신청을 자주 않던 개인과 소기업 위주로 환급을 돕고 있다. 국세청 입장에선 이제껏 안 내주던 1조1400억원이 빼져나간 셈이 되니, 배가 아플 법도 하지만 표정 관리가 마냥 쉽진 않다. 두 업체가 정부 지원으로 성장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자비스앤빌런즈는 중기부가 출자하는 ‘모태펀드’의 도움으로 성장했고, 중기부 산하 공공기관 2곳으로부터 5억원 넘는 지원도 받았다. 지난해 6월엔 중기부로부터 ‘예비유니콘’으로 선정됐다. 예비유니콘 기업은 최대 200억원의 기술보증기금 특별보증과 기술특례상장 자문 등을 지원 받을 수 있다.
지엔터프라이즈의 주요 투자자는 사기업이지만, 금융위 산하기관 덕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산하기관은 금융기업과 엔젤투자자 등과 함께 지엔터프라이즈 사업 초창기에 16억원을 투자했고, 최대 30억원 규모의 사전 여신 한도를 부여하는 ‘퍼스트펭귄형 창업기업’으로 지엔터프라이즈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들을 바라보는 국세청은 어떤 기분일까. 국세청 입장에서 이들은 적극 행정 파트너다. 국세청이 적극행정의 일환으로 배달 라이더, 학원강사 등 인적용역 소득자에게 ‘소득세 환급금 찾아주기’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선닷컴 질문에 크게 웃으면서 “환급금을 찾아가는 건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세청이 이 업체들에게 덕담 같은 걸 하는 건 좀 뭐 한 것 같아서 답변 드리기 곤란하다”고 했다.
세금은 국세청이 관리하지만, 국세청 상위기관이자 정부 곳간을 최종 관리하는 건 기재부. 기재부 관계자는 “국세청 입장도 납득이 간다”며 “이제껏 혜택 받지 못한 소상공인과 긱 워커에게 더 나은 세금 환급 접근성을 제공한다는 건 국민들 입장에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 스타트업을 지원해온 정부기관의 반응은 어떨까. 이들에게 투자했던 금융위 산하기관은 굉장히 예민해 했다. 이 관계자는 “잘 성장한 건 보기 좋은 일이지만, 저희도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보니 국세청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어서 이렇다 저렇다 답변 드리기가 좀 민망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기관명을 익명 처리해 달라고 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이 상황을 전해 듣고 웃으며 말했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위법한 일이거나 비윤리적인 것이었으면 저희 쪽에서 투자를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 서비스로 많은 국민이 혜택을 본다면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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