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안전한 수돗물 만들기 위해 조사하고 대책 세워야 할 시기에 대구시와 환경부가 한 일은?
대구의 가정집 수돗물 필터에서 남세균이 검출됐다는 대구문화방송의 보도가 객관적 사실이라고 한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구시와 환경부가 남세균이 검출된 사실을 숨긴 채 무조건 안전하다고만 하면서 수돗물 안전에 소홀히 한데다 진실을 알리려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남세균 검출 보도를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이는 사이, 수돗물에서 녹조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이 기준치를 넘게 나오는 검사 결과가 나오는 등 수돗물 안전성 우려는 더욱 커졌습니다.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제공한 주요 정수장 3곳 시료 분석해 봤더니···'녹조 독소' 마이크로시스틴 농도, 우리나라 기준치보다는 낮지만 미국 일부 주 기준보다는 높아
낙동강의 녹조 현상이 극심했던 2022년 여름.
대구MBC는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제공한 주요 정수장 3곳의 시료에 대해 녹조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의 총합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이 분야 연구 권위자인 부경대 이승준 교수의 검사 결과 정수한 물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0.226 ~ 0.281ppb 농도로 검출됐습니다.
매곡정수장 0.281ppb, 문산정수장 0.268ppb, 고산정수장 0.226ppb가 나온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준치인 1ppb보다 낮지만 미국 환경보호국의 아동 기준치인 0.3ppb에 근접한 수준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이 정도 수치는 미국 오하이오주 환경 당국의 최소 보고 기준치인 0.24ppb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오하이오주는 2014년 수돗물에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돼 단수 사태까지 발생한 톨레도시가 있는 곳입니다.
미국 뉴저지주는 더 엄격히 적용해 0.15ppb를 최소 보고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는 아예 수돗물의 마이크로시스틴 권고 기준을 0.1ppb로 정했고 캘리포니아주는 0.03ppb로 훨씬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돗물에는 마이크로시스틴이 나오지 않았다는 환경부와 대구시의 발표와 다른 결과였습니다.
마이크로시스틴은 어떤 물질?···간 독성·생식 기능에 악영향
마이크로시스틴은 발암 물질로 간 독성이 있고 생식 기능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1996년 2월 브라질 카루아루(Caruaru)지방의 혈액투석 센터에서 마이크로시스틴에 오염된 물을 사용해 49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병원 수돗물의 원수는 인근 저수지에서 퍼 올린 물인데 당시 이 저수지에는 남세균이 급증한 상태였습니다.
조사 결과 정수시설의 필터는 물론 환자의 혈청, 간세포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습니다.
1991년 일본의 한 연구팀은 마이크로시스틴이 사람에게 간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하기도 하는 등 특히 간에 해롭습니다.
우리나라의 먹는 물에 대한 허용 기준치는 마이크로시스틴 LR 기준으로 1ppb이지만 이 수치보다 낮더라도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간 질환을 앓는 사람이나 미취학 아동 등 마이크로시스틴에 취약한 경우 영향을 더 많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등 외국 선진국들이 마이크로시스틴 허용 기준치를 나이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다르게 규정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집 수돗물 필터가 녹색으로 변했어요"···검사해 봤더니 마이크로시스틴 만드는 남세균으로 확인
대구MBC의 관련 보도가 나간 뒤 달성군 지역에서 수돗물 필터에서 녹색 물질이 낀다는 제보가 잇따랐습니다.
취재진이 2022년 9월 달성 현풍의 한 가정집의 수돗물 필터를 부경대에 맡겨 검사한 결과 마이크로시스틴을 만드는 남세균으로 확인되었습니다.
2022년 10월에는 현풍의 또 다른 가정집 수돗물 필터를 대구시와 공동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남세균 DNA가 검출되면서 남세균의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공동 조사에 참여했던 신재호 경북대 교수는 " 공기에서 나왔을 수도 있고 물에서 왔을 수도 있고 필터에 원래 잔존하고 있던 게 왔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역학 조사를 좀 더 정밀하게 봐야 알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구시·환경부, 역학 조사도 없이 "수돗물 필터에 낀 물질은 인체에 무해한 코코믹사, 대구MBC 보도는 허위"··· 정정보도 청구 소송
하지만 대구시와 환경부는 당연히 해야 할 역학 조사도 하지 않고, 오히려 수돗물 필터에 낀 녹색 물질은 인체에 무해한 녹조류인 코코믹사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했습니다.
남세균이 검출되었다는 대구MBC 보도가 허위라며 정정보도 청구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법원, 10개월 재판 끝에 정정보도 청구 소송 기각···"대구MBC 보도, 객관적 사실에 맞다, 남세균 DNA 유입 경로 확인해야"
10개월에 걸친 재판 끝에 법원은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대구MBC 보도가 객관적 사실에 맞고 국립환경과학원이 정수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 남세균 DNA의 유입 경로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그야말로 4대강 신화에 매몰돼서 과학적인 그런 팩트마저 부정하는 아주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라며 국립환경과학원과 대구시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수돗물 안전성 우려 점점 확산···경북 고령군 수돗물에서도 국내 기준치 2배가량의 마이크로시스틴 검출
남세균 보도를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이는 사이 수돗물 안전성 우려는 점점 확산했습니다.
2023년 9월, 환경단체가 경북 고령군 수돗물을 검사한 결과 마이크로시스틴이 국내 기준치의 2배가량인 1.9ppb가 검출됐습니다.
검사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효소면역측정법(ELISA)과 환경부가 사용하고 있는 액체 크로마토그래피-질량 분석법(LC/MSMS)을 모두 사용했습니다.
검사를 맡았던 이승준 부경대 교수는 "정수 공정에서 완벽하게 (독소 물질을) 제거하지 못한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이기 때문에 정수 공정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또 우리가 마시는 기본적인 원수가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환경단체들은 환경부와 대구시의 관계 공무원들을 직무 유기 혐의로 고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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