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치매가 부끄러운가요? (마음의 흐림…치매 3) [창+]
(본 기사는 2월 13일(화) KBS1 밤 10시, <시사기획 창> '마음의 흐림과 마주하다...치매'편에서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그런데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이은주 씨는 작가입니다. '돌봄의 온도',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 등의 책으로 엄마의 엄마가 된 마음, 사람을 돌보는 일에 대한 마음에 대해 적어오고 있습니다.
이은주 씨는 평소 포털사이트의 '밴드'를 통해 어머니를 돌보는 일상을 전하며, 전국의 돌봄 가족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 온라인 공간에는 힘든 이들이 주고받는 위로가 가득합니다.
“(돌봄) 밴드 오픈을 하자마자 막 하루에 만 명씩 들어오는데, 그때 저한테 댓글 오고 열광은 무슨 스타한테 하는 것처럼 열렬하게 (가족들이) 당신 이야기를 하셨어요.”
치매 환자를 돌보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가슴 속에 아픔을 담고 있는 치매 환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이은주 씨께 밴드를 통해 모임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2월에 2차례 공지를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환자가족 모임을 예정했던 1월 어느 날. 장소에 나오신 분은 이은주 씨 본인을 포함해 단 2명뿐이었습니다.
“네... (응하지 않아서) 깜짝 놀랐어요. 제가 이야기한 사람이 대여섯은 되는데? 그분들이 그렇게 막 숨기려고 하는 거는 아니었는데도? 이런 게 좀... 쉽지 않나봐요.(김영미, 치매환자 가족)”
”저도 한두 분께 적극적인 동행을 원했는데? 한 분은 너무 지치셔서? 그 마음의 여유가 (모임) 여기까지는 신경을 못 쓰겠다. (다른)가족이... 또...(올 수 있게) 배려를 해야되는 부분도 있으시니까.(이은주, 치매환자 가족)“
사실 자치단체마다 있는 '치매 안심 센터'에서의 사업 중 하나가 바로 '환자가족 자조 모임' 즉 스스로 돕는 모임입니다. 서로 나와 이야기하며 힘을 얻자는 것인데, 어떤 센터든 이 사업이 잘 진행이 되지 않습니다.
전홍진 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말입니다.
"가족 모임이 거의 없습니다. 잘 없습니다. 그러니까 치매 안심센터에서 모여서 하기는 하는데, 병원에서도 하기는 하는데 큰 뭔가 가족 모임이나 이런 것들은 좀 어려워요. 우리나라를 보면 다른 병들은 꽤 있어요 그런 모임들이. 그런데 치매 관련 모임은 좀 어려운 거 같아요. 환자나 가족들이 꺼려하거나 그런 것도 있고 그런데 앞으로 그런 것들이 만들어져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필요성은 많이 느끼시나요? 교수님도)
그렇죠. 예를 들어서 동병상련이라고 이렇게 같은 어떤 증세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만나면 서로 도와주기도 하고. 또 먼저 경험하신 가족들이 서로 도와주기도 하고 이런 게 되는데 결국은 그런 게 앞으로 발전을 해야죠. 물론 병원하고도 같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되고요. 그런데 결국은 문제가 자기가 치매나 이런 거에 대해서 일단은 잘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이 굉장히 많고 그래서 겨우, 겨우 도움 받아들이고 치료를 받았는데 그거를 오픈한다는 거는 또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아직은 갈 길이 좀 먼 거 같습니다."
전 교수의 지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치매에 대한 개인의 받아들임에는 2개의 단계가 존재합니다. 우선 치매라는 것을 잘 인정하지 못합니다. 본인도 인정하지 못하고, 가족도 '내 엄마가 치매라고? 아닐 거야'라는 마음이 강합니다. 병에 대한 부정이 강한데, 남에게 공개하는 게 쉬울리 없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본인과 가족은 받아들였다 해도, '치매 환자는 아무 것도 못한다'는 편견이 너무 강해 주변에 공개할 수 없는 면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치매에 대해서 너무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치매에 대해서 굉장히 뭔가 배제하고 차별하고 우리하고 다른 어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떤 존재로서 계속 규정짓고 있어요. 그게 이제 우리가 이야기하는 낙인이죠. 사회적 낙인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치매 환자들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거예요. 내가 치매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김동선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대우교수)”
■ 한국과 다른 일본의 치매 환자들과 가족들
일본의 치매 환자는 70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고령화가 빨랐던 만큼 치매 환자의 수도 우리나라의 7배에 달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치매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사뭇 다릅니다.
도쿄에 스가모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하라주쿠라 불리는데, 그만큼 노인들이 모이는 쇼핑가를 이루고 있는 거리입니다.
“(치매를) 나쁘게 인식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런 스가모에 (치매 걸린) 사람들이 (쇼핑) 오기도 하고,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다들 (치매가) 창피하다고 해서 집 안에 있게 했는데, 지금은 다들 이웃에도 알리고 공개하고 있어요.”
당장 거리에서 만난 이들의 반응부터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려웠던 치매환자와 환자가족 모임에 대한 취재에서는 왜 이런 모임이 정말 필요한지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먼저 치매환자 모임. 1시간여 동안 9명의 환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연령대는 50대부터 90대까지 실로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치매에 대한 이야기는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두 본인의 일상과 과거 이야기를 서로 묻고 답하며 자연스런 대화가 진행됩니다.
치매 환자들의 대화에는 2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이야기가 반복되어도 누구도 이를 개의치 않아 합니다. 사실 치매 환자는 이야기를 저지당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다시 이를 정리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같은 처지니 했던 이야기를 반복해도 이를 지적하거나 끊지 않고 있는 그대로 또 반응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환경인 것이죠.
둘째, 자원봉사자들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억제합니다. 환자들끼리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도 생기고 각자의 롤 같은 것도 나눠지는 듯 해 보였습니다. 나름의 주체성이 이야기의 과정 속에서 발현되는 것도 큰 특징입니다.
그래서 대화 모임에 참석했던 환자들의 반응이 대단히 좋습니다.
"치매 환자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갈 때 대화를 하면서 걸어서 가는데요, 그 대화할 때에는 (어머니가) 여기에 왔던 걸 벌써 잊어버려요. 하지만 나중에 말을 하면 떠올리시고,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하는 이런 모임을 무척 좋아하세요. 비슷한 나이인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즐거우신지 활기가 넘쳐요. 기운이 달라요.(다케쓰스미 나오코 치매환자 가족)"
환자들의 모임이 있는 동안 옆 방에서는 환자가족의 모임이 열립니다. 환자와 같이 온 사람도 있지만, 가족만 따로 나와 모임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환자가족들은 정말 이구동성으로 모임을 갖기를 추천합니다.
“병원과 다른, 병원의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니라, 매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저는 무척 좋았고.”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이나 몸이 건강한 분들, (치매도) 다양한 상태인 분들이 계실 텐데요, 그런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기 때문에, 정말 추천합니다. 혼자서 떠안지 마시고요.”
일본도 이런 분위기가 쉽게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환자들 간의 교류, 사회적 활동. 환자가족간의 기댐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나 혼자서만 떠안는 게 아니라 연결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환자들이 초기 단계에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다양한 것을 스스로 시도해 보는 것으로 상황이 훨씬 안정되어 가요. 그게 중요하다는 것도 세상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그러면 치매에 걸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게 있지만 할 수 있는 것, 오히려 활기차게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부분이 남아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치매 환자 본인들의 발언이나 행동이 다양한 언론 등의 화면으로도 나오니까요.
그래서 ‘아, 그렇구나. 만약 내가 저렇게 된다 해도, 나 나름대로, 나다움을 잃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라는 생각이 상당히 많이 확산되었다고 생각해요.(오노 교코/ 치매가족모임 도쿄지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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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기자 (neo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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