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슈퍼팀, 경쟁의 규칙을 바꾸고 패배하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슈퍼팀’을 정의하는 공식 기준이랄 것은 없다. 영문 위키피디아에는 “올스타급 선수 최소 세 명을 보유해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 정도의 느슨한 관점이 통용된다고 쓰여 있다. 농구에서 세 명이란 곧 과반이다. 다섯 명 정원의 코트에서 과반을 슈퍼스타로 채울 수 있다면, 그 팀은 슈퍼팀이라는 것이다. 과연. 수긍이 가는 규정이지만, 지난 십수 년간 NBA를 보아온 이들로서는 ‘그게 다가 아닌데’라며 말꼬리를 늘어뜨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결정적 요소가 빠져 있다. 이를테면 ‘담합’. 슈퍼팀은 시장 질서와 싸우는 팀이기도 하다.
전성기에 진입한 대들보가 선택한 길
현대적 의미의 슈퍼팀이 결성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학 시절 스카우트의 이목을 사로잡은 전도유망한 루키(신인 선수)가 드래프트 상위 순번으로 리그에 입성한다. 아직은 팀 순위도 낮고 동료들 면면도 변변치 않지만, 구단의 전폭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우승도 헛된 꿈은 아닐 것이라 믿고 분전한다. 그의 성장 가도는 눈부신데, 어찌 된 일인지 대권 문턱은 아득하기만 하다. 거듭되는 패배 속에 희망은 서서히 좌초한다. 어느덧 8년차, 전성기에 진입한 팀의 대들보는 갈림길에 선다. 흔들리는 믿음을 채찍질하며 버틸 것인가, 한계를 인정하고 그럴싸한 가망을 찾아 떠날 것인가.
후자가 슈퍼팀의 길이다. 입단 초 팬들에게 약속했던 우승 다짐을 등지고, 사정이 비슷한 상대팀 에이스들과 이심전심해 한날한시에 한팀에서 규합, 챔피언 트로피라는 지상 목표 아래 새 둥지를 트는 일이다. 슈퍼스타들은 샐러리캡(팀 연봉 총액 상·하한 규제 제도)을 우회하기 위해 연봉을 깎고(페이컷), 그런데도 넘치는 금액에 물리는 벌칙금(사치세)은 새 팀의 부자 구단주가 기꺼이 감당한다. 이런 몇 가지 술수를 통해 원래라면 함께하기 힘들었을 거물들은 유력한 우승 후보팀을 뚝딱 만들어낸다. 친정 팬을 저버린 불편함도, 쓰라린 인고의 세월도 곧 우승 반지가 보상해주리라는 바람과 함께.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말까지는 슈퍼팀의 시대였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2007년 보스턴 셀틱스(케빈 가넷, 폴 피어스, 레이 앨런)와 2010년 마이애미 히트(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시)를 두고 다소 의견이 분분한데, 다수설은 제임스의 마이애미 쪽이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끝내 왕좌에 앉지 못한 제임스는 마이애미로 행선지를 틀면서 리그 생태계를 교란하는 수준의 슈퍼팀 결성을 주도했고, 이후 두 개의 우승 반지를 차지했다. 사람들은 NBA 시스템을 해킹한 작당모의라고도 손가락질했지만, 이 시절 마이애미는 시장에 새로운 혁신 모델로 받아들여졌다.
시스템을 해킹한 작당모의인가, 새로운 혁신 모델인가
그 영향력이 어찌나 대단했는지는 2017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골든스테이트는 애지중지 육성한 프랜차이즈 스타(스티븐 커리, 클레이 톰프슨, 드레이먼드 그린)를 앞세워 이미 40년 만에 우승 트로피(2015년)도 들었고,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보유했던 정규리그 최다승(72승) 기록을 경신(73승)하는 등(2016년) 역사적 전력을 보유했는데, 이마저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케빈 듀랜트를 영입하며 ‘슈퍼 슈퍼팀’을 구축했다. 지구에서 농구를 제일 잘한다는 듀랜트가 합류하자마자 골든스테이트는 리그 2연패를 이룩하며 시대를 평정했다.
슈퍼팀은 일종의 군비 경쟁이다. 제임스는 아마도 소싯적 샌안토니오 스퍼스(2007년 결승전)와 보스턴(2008년 플레이오프)에 연거푸 물먹으며 조바심 속에 마이애미 청사진을 그렸을 것이고, 부러울 것이 없었던 골든스테이트는 2016년 시즌 최다승을 거두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제임스의 두 번째 슈퍼팀 클리블랜드에 연전패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이 되먹임이 리그 전역에서 각개전투 중인 스타들의 욕망을 자극했고, 경쟁의 규칙을 뒤흔들었다. 수많은 스타와 구단이 마이애미, 클리블랜드, 골든스테이트를 꿈꾸며 슈퍼팀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거기까지였다. 골든스테이트의 2018년 우승 이후 성공한 슈퍼팀은 없다. 지난 다섯 시즌은 대부분 영리한 드래프트와 합리적인 트레이드로 인내심을 가지고 팀을 가꿔온 구단에 영광이 돌아갔다. 2022년 골든스테이트는 듀랜트 없이 프랜차이즈의 저력을 다시 입증했고, 2023년 챔피언인 덴버 너기츠는 ‘안티-슈퍼팀’의 전형이라 할 만한 팀이었다. 2021년 여덟 번 도전 끝에 밀워키 벅스 구단 최초의 우승을 일군 야니스 아데토쿤보는 “슈퍼팀에 가서 부분적인 역할만 수행하며 우승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우리는 힘든 길을 택했고, 해냈다 ”라고 말했다.
사무국도 슈퍼팀을 견제한다. 애덤 실버 NBA 총재는 2023년 결승전에서 “리그가 전반적으로 더 평등해졌고, 환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평등주의는 실버 총재와 NBA의 기치다. 샐러리캡으로 구단의 씀씀이를 옥죄고 드래프트로 하위 팀에 반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NBA는 여느 미국 프로스포츠 리그보다 양극화 예방에 공들이는 곳이다. 2024년부터는 지출 한도를 과다 초과한 구단에 대한 제재가 징벌적 수준으로 강화됐다. 혹자는 ‘사회주의적’이라고 평하지만, 그보다는 담합이 자유경쟁 질서를 해치지 못하게 막는 반독점 기조에 가깝다.
샐러리캡 씌우고 지출 과다 구단 ‘징벌’하는 NBA
다만 슈퍼팀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불법도 아니고, 팬·구단·선수 모두에게 언제나 매력적인 기획이다. 역사상 가장 무참하게 실패한 슈퍼팀 브루클린 네츠(2020~2023)의 잔해가 눈에 밟히지만 피닉스 선스,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등이 ‘우린 다르다’를 외치며 달리고 있다. “슈퍼팀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던 데이미언 릴러드(밀워키)도, “남의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이지만 역사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던 브래들리 빌(피닉스)도 고개를 숙이고 슈퍼팀에 합류했다. 리그가 그들을 규제하고 일부 팬이 고까운 시선을 보내지만, 사실 승리로 향하는 길에 정도는 없다. 모든 것은 코트 위에서 증명될 뿐이다.
박강수 <한겨레>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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