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동물원서 죽어간 생명…‘재산’으로 움켜잡힌 채
‘바람이’ 떠난 부경동물원서 동물 잇따라 사망
30여마리 대구동물원으로 옮겼지만 환경 열악
“이대로 두면 남겨진 동물들 떼죽음 당할 수도”
“이대로 뒀다간, 멸종위기종부터 그곳에 있는 동물들 모두 떼죽음 당할지도 모릅니다.”(이형주 어웨어 대표)
사자 ‘바람이’가 떠나온 곳, 경남 김해시 부경동물원에서 최근 동물 두 마리가 잇따라 사망하자 남아있는 동물들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동물원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 논란이 됐던 사자 바람이가 지난해 6월 공영동물원으로 구조되며 열악한 상황이 알려졌다. 현재 폐업 상태인 이곳에는 사자, 호랑이, 라쿤, 타조 등 14마리 동물이 지내고 있다.
동물 270여 마리 ‘위기의 동물원’에
동물보호단체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부경동물원의 근황을 전했다. 단체는 “안 좋은 소식을 연이어 전하게 되어 마음이 아프고 죄송하다. 지난달(2023년 12월) 백호가 사망한 데 이어, 흑표범도 죽었다는 소식을 동물원 대표를 통해 전달받았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단체는 지난해부터 부경동물원의 열악한 상황을 공론화하고, 김해시에 관리·감독을 촉구해왔다. 동물원 쪽이 재정적 어려움을 토로하자, 지난해 8월부터 시민모금을 통해 동물원 동물들에게 먹이를 지원하고 있다.
백호와 흑표범의 사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동물원 대표는 동물들이 모두 10살 이상으로 노령으로 죽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김애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는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있는 ‘바람이 딸’ 사자는 건강하다. 다만 동물원 대표가 파산 상태라 동물들에게 최소한의 먹이도 지급하기 어려운 상태고, 최근 부경동물원에 있던 동물 30여 마리도 대표가 운영 중인 대구의 실내 테마파크 동물원으로 이동한 상태”라고 말했다.
문제는 부경동물원뿐 아니라 대구의 실내 동물원도 폐업 직전의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단체에 따르면, 종합 쇼핑몰 지하에 입점해 있는 이 동물원은 현재 임대료와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 공과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못하고 최소한의 전력만 공급받고 있는 상태다.
지난 1월 중순 대구시 점검 당시 이 동물원에 남아있는 동물은 백사자를 포함해 총 58종 270여 마리였다. 대구시 기후환경정책과 담당자는 “동물을 굶기거나 동물학대 정황이 없는지 수시로 현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들은 대표의 사유재산에 해당해 처분을 강제하는 등의 일방적 조치는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대구시와 대구 수성경찰서는 이곳에서 사육장에 기니피그 사체가 방치되는 등 동물학대 정황을 발견해 동물원을 고발 조처했다.
‘사유재산’이라 조처 어렵다는 당국
동물원에서 사육 중인 동물이 ‘사유재산’에 해당해 적극적인 조처가 어렵다는 답변은 김해시도 마찬가지였다. 김해시 환경정책과 담당자는 “동물원 대표에게 동물들의 분양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나, 운영이 중단된 지난 8월부터 실제 분양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관련 법에 강제 분양이나 몰수를 할 수 있는 규정 또한 없어 별다른 조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시는 매달 1회 수의사 검진을 진행하며 영양제, 진단약 등을 처방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단체는 부경동물원처럼 운영 능력을 상실한 사업자의 동물은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현행 동물원수족관법은 시설·환경 조건을 갖추지 못한 동물원의 허가 취소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가 이미 동물원 허가제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동물원에 대해서는 영업을 중단하고 동물을 몰수할 수 있는 규정 또한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외에서는 실제로 문제적 동물원을 문 닫을 때,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 동물들부터 생크추어리나 보호시설로 옮겨 동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2021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타이거 킹’의 주인공 ‘조 이그조틱’이 운영하던 동물원에서 총 146마리의 동물을 몰수하고, 동물원 운영자에게 동물전시업을 금지했다. 캐나다 또한 동물학대가 발생한 퀘벡주의 한 ‘도로변 동물원’(Roadside Zoo) 운영자에게서 동물 200여 마리를 몰수하고, 평생 동물을 양육하거나 전시하는 것을 금지했다. 운영 능력을 상실한 소유자들에게서 동물을 압수해 보호시설로 보낸 것이다.
죽을 때까지 손 놓고 있을 건가
미국과 캐나다처럼 국내서도 동물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없을까.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현행법에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학대 동물을 몰수할 수 있는 규정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제도적 한계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동물원 대표에게 무상 기증을 설득하고 있다. 운영자가 소유권만 포기한다면 전국 공영동물원과 멸종위기종 보호시설 등에서 보호는 가능하다”고 답했다.
동물단체들은 대구 실내 동물원에 사육 동물들이 늘어난 만큼 빠른 조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형주 대표는 “동물들 입장에서는 열악한 곳에서 더 안 좋은 곳으로 이사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구 실내 동물원은 전시장 전체가 지하에 있고, 야외 방사장은 한 뼘도 없는 곳이다. 안 그래도 밀집 사육 중인데, 이동한 동물들까지 더해졌으니 조건이 더 악화된 것이다. 이대로 뒀다가는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많은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김애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도 “동물들이 모두 안전히 분양될 때까지 지자체의 적극적인 행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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