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질문지'도 비공개? 법원 "국민이 알 필요 커" [법원 앞 카페]

우종환 2024. 2. 1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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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어느 정도로 심도 있게 일본의 오염수 처리 계획을 검토하였는지 국민이 알아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지난 6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선고를 하며 재판부가 한 언급입니다.

이날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11부(강우찬 부장판사)는 송기호 변호사가 원안위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송 변호사 청구 대부분을 받아들였습니다.

‘외교관계’를 고려한 비밀 유지 필요성보다 ‘국민의 알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이유입니다.

방류 계획 발표에 질의 보냈지만

방류 당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1년 4월 13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 탱크에 보관하고 있던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는 계획 ‘처리수 처분에 관한 기본 방침’을 각료 회의에서 결정했습니다. 오염수 방출 계획을 공표한 거죠.

발표가 나오자 한국 정부는 곧바로 반발했습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국제해양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원자력 주무 부처인 원안위도 대응에 나섰습니다. 일본 정부 발표로부터 엿새 뒤인 19일 원안위는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NRA를 상대로 첫 질의를 보냈습니다.

이를 포함해 원안위는 일본이 오염수 방류를 시작하는 지난해 8월보다 3개월 앞선 지난해 5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오염수 방류 계획과 관련한 질의문을 보냈고 이 중 4번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원안위 홈페이지를 비롯해 어디에도 일본 측에 보낸 질의 내용과 답변은 볼 수 없습니다. 원안위가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질문지’도 공개 못 한다는 원안위

송기호 변호사 (가운데) (사진=연합뉴스)

이번 재판의 원고인 송 변호사는 지난해 7월 원안위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공개를 요구한 대상은 원안위가 일본 측에 보낸 ‘질문지’였습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에 맞춰 어느 정도 수준으로 자료와 정보를 요구했는지 국민이 알 필요가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원안위는 ‘비공개’ 처분을 내렸습니다. 외교관계 때문에 공개하면 국익을 해칠 수 있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 조항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정보공개법 9조

공공기관이 보유ㆍ관리하는 정보는 공개 대상이 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 국가안전보장ㆍ국방ㆍ통일ㆍ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송 변호사는 반발했습니다. 일본 측의 답변을 공개하라고 것도 아니고 무슨 ‘질문’을 했는지 요구했는데 어떻게 국익을 해치는 정보냐는 것이었죠. 이에 송 변호사는 지난해 8월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질문’ 공개한다고 국익 해치지 않아

약 5개월 만에 나온 선고 결과 법원은 송 변호사의 손을 대부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일단 후쿠시마 오염수와 관련한 정보 자체는 국익을 위해 비밀을 지켜야 할 사안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오염수를 어떻게 처리할 건지 한국 정부가 한 ‘질문’은 공개해도 국익을 해칠 우려가 없다며 송 변호사의 주장을 인정했습니다. 또 국민 건강과 관련한 중대한 공적 사안인 만큼 공개 필요성도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은 일본에 인접하고 있는 대한민국 해역 오염 및 그로 인한 국민의 건강상 위해에 우려나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는 문제로 대한민국 내에서 매우 중대한 공적 사안이다. 따라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어느 정도 심도 있게 일본의 오염수 처리 계획을 검토하였는지 여부 등 그 진행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국민들이 알아야 할 필요성이나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 지난 6일 서울행정법원

재판 과정에서 원안위 측은 “일본과 외교적으로 소통한 내역을 제한 없이 모두 공개하면 양국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외교관계 긴장이 초래될 수 있다”며 공개하지 않아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안위가 정보공개법의 취지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정보공개법 9조는 ‘공공기관이 보유하는 정보는 공개대상’이라고 명시한 뒤 비공개 조건을 ‘예외적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공개가 기본 원칙이되 조건부 비공개라는 예외를 둔 건데 원안위가 ‘무조건 비공개’를 주장한다고 본 겁니다.

재판부는 “국민의 알 권리와 정보공개법 취지가 몰각되는 위헌적 결과에 이를 수 있다”며 원안위 주장을 비판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질문’만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일본의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훼손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국회의원에게도 ‘비공개’ 당부

원자력안전위원회 (사진=연합뉴스)

사실 법원이 공개하라고 한 정보 중 일부는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바 있습니다. 지난해 5월 국회의원이 원안위로부터 NRA와의 질의-답변 내용을 입수했고 그 내용 일부가 보도됐기 때문입니다.

기자도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당시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를 확보해 내용을 확인해봤습니다. 당시 원안위는 ‘해양방출이 최선의 방안인지, 아니면 장기보관이나 땅에 주입하는 방법을 검토하는지’ 등 일본 측 결정에 대한 여러 질의를 남겼습니다. 일본 NRA는 답변서 서두에 "도쿄전력이 방류하는 건 오염수가 아니다, 오염수는 잘못된 표현"이라고 항의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22년 9월 원안위가 ‘알프스 오염처리수’(ALPS-treated contaminated water)라고 표현한 질의에 대해서도 NRA는 “잘못된 단어 사용이다, ‘알프스 처리수’(ALPS treated water)가 맞다”고 재차 항의하는 답변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질의와 답변을 의원실에 제공한 원안위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첨부했습니다.

‘세부 질의답변 내용이 언론 등 공개될 경우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모호한 답변을 하거나, 답변을 지연하는 등의 우려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오니, 이러한 점을 고려하시어 내부 참고로만 활용하여 주시길 요청드립니다‘

송 변호사에게 비공개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회의원에게도 공개는 하지 말고 ’내부 참고‘로만 써달라고 요청한 거죠. 법원의 판단과는 사뭇 다릅니다.

방류 시작한 지도 반 년…끝나지 않은 재판

송 변호사는 이번 선고를 두고 “일본 오염수 방출의 방사능 위험성 평가를 국가가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법원 판결이 났음에도 현재 기자를 포함한 일반 국민은 정보공개를 요청하더라도 원안위가 일본 측에 보낸 질문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아직 정보공개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원안위 측이 항소하면 2심에서 다시 다퉈야 하고 대법원까지 재판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미 지난해 8월 일본 측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시작해 6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국민은 ’방류 전 준비 과정에서 일본 측에 한 질문‘도 볼 수 없습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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