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아버지, 강남아파트 기부라니…" 상속분쟁의 결말은[별★판결]

박가영 기자 2024. 2.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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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판결, 화제가 된 판결을 전해드립니다.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다. 잘 죽어야 잘 사는 시대다. '유언장'은 웰다잉(Well-dying)의 필수 요소로 하나로 꼽힌다. 사후에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가족들에게 유산을 남기는 중요한 문서이기 때문이다.

유언장이 상속 분쟁의 '불씨'가 되는 경우도 있다. 나눠가져야 할 재산이 많은 재벌가라면 더 그렇다. 모 그룹 상속 분쟁에서도 선대 회장의 유언장이 핵심 쟁점이 됐다. 실제로 상속된대로 유언장을 남겼는지를 두고 가족들이 법정에 섰다.

상속 분쟁이 재벌가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에만 5만1626건의 상속 관련 사건이 접수됐다. 10년 전보다 두배 가까이 늘었다. 가족 간 상속 분쟁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상속 분쟁 중 흔히 볼 수 있는 사례가 치매 환자의 유언장 효력을 둘러싼 다툼이다. 상속에 불만을 가진 상속인들이 치매 환자의 유언장이 무효라며 법적 대응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치매父, 서울대 재산 기부 유언은 무효"…장남 소송 냈지만
법원은 치매 환자가 유언장 작성 당시 '의사능력'이 있었는지 여부를 주요 기준으로 판결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의사능력이란 자신의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나 지능을 뜻한다.

재력가 A씨는 2014년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와 경기도 남양주·용인 일대 땅을 서울대에 기부하고, 재산 처분은 차남이 맡는다는 내용으로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장을 작성했다. 2020년 A씨가 사망하자 차남이 유언 집행에 나서 사전에 약정된 부동산의 소유권을 서울대로 이전했다.

그러자 이듬해 장남이 유언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A씨가 2009년 치매 진단을 받아 유언장 작성 당시 의사결정 능력이 없었으므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말소해달라고 청구했다. 동생이 자신에게 유리한 판단을 받기 위해 대학병원에 10억원을 건네 부친을 이용했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 허명산)는 2009년 치매 진단을 이유로 유언 작성 당시 A씨의 의사능력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난해 3월 판단했다. 장남은 2010년 동생의 재산 처분을 막기 위해 처분을 일시 금지하는 사전처분을 신청했는데, A씨가 심문기일에 참석해 한 진술이 판단의 근거가 됐다. 당시 A씨는 "아들이 두 명 있는데 장남은 의대 교수로 있으나 불효자로 내게 대들어 고통스럽다. 아들에게 준 재산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사회에 환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2010년 사전처분 신청 심문기일의 망인(A씨)의 진술이 대체로 사실에 부합하고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며 유언 능력을 인정했다. 사무 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섬망 등 특정 상황에서만 의사능력이 제한됐던 것으로 본 것이다. 장남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 법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치매를 이유로 임시후견인을 둔 사람이라해도 일정한 의사능력이 있다면 유언장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도 있다.

B씨의 고모할머니는 생전 중증도 치매를 앓았다. 고모할머니의 조카 C씨(B씨의 작은아버지) 가족은 2016년 고모할머니의 재산관리 등을 도울 성년후견인 지정을 청구했다. 법원은 정식 판단에 앞서 변호사를 임시후견인으로 선정했다.

고모할머니는 2017년 본인 명의 예금을 B씨에게 전액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자필로 작성했고 2020년 사망했다. C씨 가족은 임시후견인 동의 없이 유언장이 작성돼 무효라고 주장했다. B씨는 유언 효력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임시후견인의 동의 없이 유언장을 작성했으므로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2심 재판부는 유언장 효력이 있다는 B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고모할머니가 유언장을 작성할 쯤 병원에서 중등도 치매 진단을 받기는 했지만 의사 무능력 상태였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 유언장의 의미나 결과를 판별하지 못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사건 본인(고모할머니)이 의사 능력이 있는 한 임시후견인의 동의가 없이도 유언을 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의사능력에 갈린 판결…'치매 유언장' 효력 다툼 줄이려면
대한민국 법원/사진=머니투데이DB
치매로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운 경우에 유언장이 무효라는 판결도 있다.

D씨는 2012년 병원에 입원한 양어머니와 연락이 두절되자 경찰에 실종 신고했다. 양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양어머니가 그의 동생이자 D씨의 외삼촌인 E씨 집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D씨는 E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양어머니와 통화할 수 없었다.

누나를 집에 데려온 E씨는 두 달 뒤, '모든 재산 관리와 처분 행위를 동생들에게 맡기고 사후 모든 재산을 동생들에게 준다. 양자 D씨는 아무 재산도 상속할 수 없다'는 내용의 약정서와 유언장을 받아내고 공증까지 받았다. 이에 D씨는 양어머니를 금치산자로 선고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했다. 법원이 '후견인 동의 없이 재산 처분을 금지한다'고 결정했지만 E씨는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마쳤다.

D씨 측은 양어머니의 재산을 원상복구하라며 소송을 냈고, 서울중앙지법 민사26부(부장판사 윤강열)는 "양어머니가 약정서와 유언장을 쓸 때 이미 치매 증상이 상당히 진행돼 그 법률적 의미와 효과를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대법원은 2016년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전문가들은 치매 환자에 적합한 유언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김현정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민법에서 정한 유언 방식에는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다섯 가지가 있다. 나중에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의사능력이 있는 상태로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말하고 공증인이 이를 필기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하는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을 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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