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김대리가 알아서 해주겠지"… 홍콩 ELS, 투자자 책임 어디까지?
[편집자주]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3년 만에 수조원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사태가 터졌다. 금소법의 형식과 절차만 강조하다 보니 금융회사는 소비자 권익증진이란 근본정신을 잊었다. 금융상품을 올바르게 선택해야 하는 '자기책임 원칙'을 인식 못한 소비자도 '비싼 수업료'를 내야 할 처지가 됐다. '껍데기'만 지켜진 금소법으로 ELS 사태를 바라봤다.
11일 금융업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금감원)은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홍콩 ELS) 불완전판매의 유형별 사례를 정리하고 배상 기준을 고심 중이다. 핵심은 투자자 책임이 어디까지 인정하느냐다. 2019년 대규모 손실을 불러온 DLF 사태에선 투자자 최소 책임 비율이 20%였다.
2019년 당시 금융당국은 불완전판매 DLF 상품의 손실액 기본 배상 비율을 55%로 설정했다. 투자자 성향을 조사해 그에 맞는 상품을 권유하는 '적합성 원칙' 위반 시 30%, 은행 내부 통제가 부실했다면 20%, 초고위험 상품 특성을 고려해 다시 5%가 붙으면서 55%라는 기본 배상 비율이 정해졌다.여기에 개인별 가감 요인을 계산한다.
치매를 앓는 80세 노인에게 DLF 상품을 판매한 사례에는 최대 배상 비율인 80%가 적용됐다. 금융당국은 전액 배상은 허용하지 않았다. '투자자는 선택에 따라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최소 20%는 고객 책임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홍콩 ELS 손실 배상도 기준을 정한 뒤 유형별로 비율을 가감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 최소 책임 비율은 20%보다 높아질 전망이다. DLF 사태 이후 금소법이 제정·시행되면서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이 강화됐다. 동시에 금소법은 제8조에서 투자자 스스로의 책임과 노력을 강조했다. 특히 제8조 2항은 "금융소비자는 스스로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투자자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문구가 법에 기재된 것은 금소법이 유일하다.
이번 홍콩 ELS 사태가 금융소비자의 자기책임 원칙이 세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소법이 제정된 이후 금융회사는 형식과 절차를 준수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 왔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안전하니 투자하라"는 은행 창구 직원 말만 믿고 스스로 필요한 지식과 정보 습득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자기책임 원칙하에 투자한 사람들과 그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적합성, 설명의무 위반은 각각의 쟁점으로 따로 봐야한다. 일방 하나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ELS는) 예적금이 아니고 금융투자상품이기에 당연히 투자자 책임이 있고 과거 파생결합증권(DLF), 사모펀드 사태 등 상품 자체가 사기인 경우와 같이 볼 건 아니다"고 밝혔다. 2019년 DLF 사태때도 전체 가입 사례의 절반가량만 불완전판매로 분류됐다.
이정환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금소법 도입 이후 소비자 책임 부분도 강화됐기에 금융기관의 배상 책임은 조금 덜할 것"이라며 "강화된 법률 아래서 은행이 위험성을 고지하고, 고객의 사인을 받는 등 책임을 다하려고 했기에 배상 비율의 평균이나 하단은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우선 불완전판매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불완전판매가 없었다는 전제하에선 과거 20%보단 투자자 책임 비율이 높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권화순 기자 fireso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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