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같은 회화: 선의 자유 [아트총각의 신세계]
디지털화 속 아날로그 감성
낙서 같은 회화를 만나다
최근 건물과 거리의 벽면이 디스플레이로 채워지고 있다. LED 디스플레이와 같은 전자장비의 보급이 확산하면서다. 공학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동적인 영상을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거다.
이런 기술적 트렌드는 디지털 예술의 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는데, 국내도 마찬가지다. 강남역 혹은 청담동의 거리를 걷다보면, 세상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급격한 디지털화 속에서 '아날로그적인' 감성도 강해지고 있다는 거다. X2갤러리(엑스투갤러리)에서 2월 27일까지 개최하는 권오봉 작가와 유주희 작가의 전시회 'Resonance(공명)'는 이런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이 전시는 두명의 작가가 선보인 회화 작품 속 선(Line)과 리듬을 조명한다. 공간적 배경인 '회화'에 시간예술적 속성을 부여했지만, 중심은 동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아날로그적인 '선(Line)'이다.
권오봉 작가의 작품은 '선'의 자유에서 탄생한다. 어떠한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선'은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선율'로 바뀌면서 회화를 채운다. 그는 종종 자신의 작업을 '낙서 회화'라고 칭하지만 이를 '대충 그린 그림'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선 곤란하다.
그의 예술 세계는 낙서와 회화를 동일한 맥락으로 인식한다. 아마도 예술적 본능이 깊이 파고들어있는 삶(낙서)과 그 본능을 표출한 일(회화)의 경계가 허물어진 형태를 뜻하는 듯하다.
권 작가의 작품이 자유로운 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유주희 작가의 회화는 강인한 생명력에 근거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0(죽음)과 1(삶)의 사잇값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죽음의 언저리에서 시작되는 회화 언어는 풍성해진 리듬을 따라 삶을 향해 질주한다.
유 작가의 붓질은 바람과 물결처럼 흘러간다. 마치 음악의 선율이 갖는 흐름을 붓을 통해 회화로 만들어내는 듯하다. 어떤 측면에선 캔버스에 회화적인 요소를 지휘해나간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더이상의 성취와 성과를 만들지 못한 채 고인물처럼 맴돌기만 한다고 자책하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 이들에게 이 전시회를 추천한다. 삶은 선율처럼 멈춤 없이 이어지는 것이란 진리를 다시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선곤 더스쿠프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