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밥상서 배운 '영업 노하우'…尹 선택받은 48년 구두 외길인생
배곯던 1970년대...7남매 사이 할머니가 남긴 밥 한숟갈 얻어먹으려 안간힘
자연스럽게 배운 영업 스킬...훗날 퇴출 위기 매장 살리는 밑거름으로
홀로 서울 상경해 배운 구두 기술...한때 사업 부진해 세상 등질 생각도
"죽더라도 일하다 죽자"...이후 이태리 구두社 인수에 尹 대통령 제품 구매까지
중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김원길 바이네르 대표(64)는 밥을 배부르게 먹은 기억이 없다. 1970년대에 칠남매의 셋째로 태어나 부모님도 양껏 먹지 못하는 밥을 더 달라 하기는 어려웠다. 조금이나마 밥을 더 먹는 방법은 당시 함께 살던 할머니의 눈에 드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눈에 든 손자, 손녀에게 밥이 한 숟가락 남은 그릇을 건네줬다. 이곳저곳 고춧가루와 된장이 묻어도 그 밥 한 숟가락이 그렇게 먹고 싶을 수가 없었다. 위로 형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김 대표는 형보다 밥을 더 많이 얻어먹었다. 김 대표는 "어떻게 예쁜 짓을 해 한 숟갈을 더 얻어먹을까 궁리했고, 할머니의 눈에 들었다"며 "할머니와의 밥상머리에서 배운 습관이, 세상에 뿌리내릴 수 있게 날 도와줬다"고 말했다.
이제 연 매출 500억원, 이탈리아 브랜드까지 인수한 제화회사 바이네르 김 대표는 '개천에서 난 구두왕, 영업왕'으로 평가받는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에 가지 못했고, 김 대표는 17세에 작은아버지가 서산시에서 운영하던 구둣방에 취업했다. 일년 남짓 구두 일을 배우니 "서울에서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연고 없는 영등포로 상경했다. 영등포에서 김 대표는 받는 월급 없이 자고, 먹을 수 있는 하숙비를 지원받는 댓가로 기술을 배웠다.
당시 구둣방에는 하·중·상 견습 제도가 있었다. 5년의 견습 생활을 견뎌야 정식 구두 기술자가 될 수 있었다. 하견습은 속된 말로 '시다바리'였다. 당시는 구두의 고무창을 가는 그라인더가 없어 하견습은 업계 용어로 '페이퍼', 사포를 손에 들고 고무를 갈았다. 퇴근하면 손과 팔이 쑤셨다. 하지만 김 대표도 남들처럼 견습 생활을 버티고 견뎌 정식 기술자가 됐다.
김 대표가 일했던 구둣방은 당시 업계에서 네번째로 규모가 큰 케리브룩에 납품을 했다. 김 대표는 케리브룩에 취직하고 싶었다. 케리브룩 구매 담당자가 구둣방을 찾으면 달려가 인사하고, 얼굴 도장을 찍었다. 어느 날 케리브룩 담당자는 "회사에 한번 놀러오라"고 했다. 김 대표는 케리브룩을 찾아가, 사장도 만나고 채용도 됐다.
이런 붙임성은 할머니와의 밥상머리, 그리고 설악산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얻었다. 매년 장마철이면 구둣방은 일이 끊겼다. 김 대표는 강원도 설악산에 가면 피서객이 많아 알바 자리가 있다는 얘기를 하숙집 룸메이트에게 들었다. 돌아올 차비 없이 향한 설악산에서 김 대표는 어느 숙소에서 알바를 구해 여행 온 신혼 부부들의 수발 드는 일을 했다. 당시 설악산은 경북 경주, 온양온천과 더불어 인기 신혼여행지였다. 신혼 부부들은 부르면 달려오는 김 대표가 어여뻐 500원, 1000원씩 팁을 줬다. 1978년 당시 짜장면 한그릇이 200원인 때였다. 한달 일한 팁으로 50만원을 번 김 대표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해주면 사랑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나중에 영업을 잘하게 된 비결을 얻었다"고 말했다.
케리브룩에서 일하다 관리자 직급에 오른 김 대표는, 경쟁사 매장이 한달에 5000만~6000만원 매출을 올리던 백화점에서 케이브룩 매장이 600만원밖에 못 벌고 퇴출될 위기에 처하자 매니저로 부임해 첫달에 매출을 1억1000만원 올리는 등 영업 성과를 냈다. 또 갈고 닦은 구두 제조 기술 덕에 1984년, 스물 넷 나이에 전국 기능대회에서 메달도 획득했다.
1993년 자신만의 구두를 만들고자 안토니오슈즈를 창업한 김 대표는 극심한 영업 경쟁에 밀려 한때 세상을 등질 생각도 했으나 "죽더라도, 미치도록 일하다 죽자"고 각오한 끝에 1997년 발이 편한 컴포트 슈즈 히트 상품을 개발해 기업을 정상궤도로 올렸다. 급기야 2011년에는 납품을 받던 이탈리아 바이네르를 인수해 이듬해 사명을 바이네르로 변경까지 했다.
바이네르는 어르신이 신어도 발이 편한 컴포트화로 유명한 브랜드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주말에 백화점 깜짝 쇼핑에서 19만원에 구매한 컴포트화가 바이네르 제품이다. 김 대표는 한국인의 발 모양을 연구하고, 발 크기를 데이터베이스화해 발바닥이 편하도록 제품을 개발해왔다. 국내 제화업체들 중 자신처럼 회사 대표가 제품을 하나씩 챙기는 곳은 드물다고 김 대표는 자부한다. 그는 "구두는 겉으로 보기 좋은 게 아니라 발이 좋아하는 것을 사야 한다"며 "발이 불편하면 뒷머리가 당기는데, 신발이 편해야 고객 컨디션이 좋아지고, 머리가 맑아져 삶이 풀린다는 생각으로 제품을 선별하고 개발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해 10억원 이상씩 사회공헌을 해왔다. 지난해도 튀르키예 지진 지역에 구두 1만켤레를 기부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에 3000만원을 기부했다. 고향 당진에 구두를 1000켤레 기부했고, 서울·광주·부산 등에서 매년 무료 효도잔치를 연다. 가난했던 자신을 살 수 있도록 도운 세상에 보답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이유에서다.
김 대표의 사업 목표는 △세상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자 △사람을 행복하게 하자 △내가 행복하자다. 김 대표는 지난 7일 설 명절을 앞두고 '기다리게 해놓고(1973년 방주연)'의 작곡가 장옥조씨가 작곡하고 자신이 작사하고 부른 '성공하세요', '건강이 최고야', '돈 속에서 만나요' 곡들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김 대표는 "세종대왕, 신사임당처럼 지폐 속에 얼굴을 남기는 꿈을 꾸고 산다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며 "구두로 사람들이 기쁘고, 꿈꾸는 삶을 이루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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