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새끼 70일을 껴안고 다닌 이유…그들의 특별한 애도방식이었다 [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4. 2. 1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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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21] 우리 인간은 사랑을 평생 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가족·연인과 웃음·행복을 공유하면서 삶을 이어갑니다. 사랑하는 이가 생을 마감했어도 그들과의 행복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눈을 감을 때에도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머금고 먼 길을 떠날 겁니다.

설날은 우리가 떠나간 이를 기억하는 매개 중 하나입니다. 자식의 주린 배를 채우려고 아등바등 살아간 어머니, 땀 흘려 가족을 부양하려 했던 아버지,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로 손주들의 재롱에 웃어 보이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명절이면 “우리 똥강아지” 외치면서 버선발로 맞아주던 할머니가 저는 떠오릅니다.

“설이다, 지화자 좋다‘ 신윤복의 ‘쌍검대무’. 1805년 작품.
세상을 떠난 이를 기억하고 되뇌는 일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엄마, 아빠, 친구를 기억하면서 그들만의 ‘장례’를 치르는 동물이 있어서입니다. 오늘은 동물들이 어떻게 떠난 이들을 기리는지 돌아봅니다. 설날은 무릇 그런 날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코끼리의 죽음...동료들이 그 곁을 지켰다
여기 코끼리 암컷 한 마리가 쓰러져 있습니다. 거친 자연환경에서 억척스럽게 가족을 지키다가 결국 생을 마감합니다. 사체 주변으로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와 하이에나가 즐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배를 채울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우정을 나눈 가족 친구들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어서입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하는 거야” 코를 맞대고 인사하는 코끼리들. [사진출처=jinterwas]
코끼리들은 죽은 친구의 냄새를 맡고 코로 여기저기 만져봅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주변을 지켜줍니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도 이내 다시 돌아오지요. 다시 올 때마다 그들의 코에는 나뭇가지나 흙이 한 줌 쥐어져 있습니다. 떠나간 친구의 몸에 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의 이런 행동은 며칠 동안이나 지속됩니다. 우리 인간이 죽은 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의식을 치렀듯 코끼리도 그들만의 장례절차가 있는 셈입니다.

“옆집 할머니 장례식은 빠지면 안 돼” 아프리카 코끼리 일가족.
누군가는 의구심을 드러냅니다. 코끼리가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호기심으로 사체를 만진 것이 아니냐고요. 학자들이 사체 주변에 모인 코끼리를 분석하자 그들의 측두샘에서 액체가 분비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나오는 액체였습니다. 그들이 ‘상실’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지요.
놀랄만큼 영리한 동물 코끼리
코끼리는 거대한 덩치와는 달리 영리한 지능으로 이름난 동물입니다. 힘이 없는 동료 코끼리를 보면 일으켜 세우며 돕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지요. 다친 인간을 자기 코로 쓰다듬은 사례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사회성이 뛰어나다는 증거입니다.
코끼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영리한 동물로 인식돼 왔다. 1354년 고대 인도에서 묘사된 코끼리 그림.
거울 속 자기 존재를 인식하는 것도 코끼리의 지능을 가늠하게 합니다. 그 옛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코끼리를 두고 “재치와 정신이 다른 모든 동물을 압도한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에버랜드에 사는 아시아코끼리 코식이도 말하는 코끼리로 해외 학술지에 등재되기도 했었지요. ‘좋아, 안돼, 누워, 아직, 발, 앉아, 예’ 등 그 단어도 다양합니다.
다른 동물도 ‘장례’를 치른다
말 또한 친구의 죽음에 애달파하는 종입니다. 그들은 친구의 죽음을 인지한 직후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입니다. 잘 먹지도 않고, 놀지도 않지요. 힘차게 대지를 가르는 모습은 어느샌가 사라져 버립니다. 아프리카 야생 속에서 얼룩말 무리는 동료의 시체 곁을 결코 떠나려 하지 않았지요.
“우리 우정은 영원한 거다” 얼룩말 무리. [사진출처=Diego Delso]
‘삼국지연의’에서 관우가 죽자 적토마가 물과 먹이를 먹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대목이 완전 허황한 말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말의 사회성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니까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의 감정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다른 영장류가 이를 증명합니다. 차크마개코 원숭이가 대표적입니다. 비극의 현장을 잠깐 보시지요.

차크마개코원숭이 무리 중 암컷 한 마리가 포식자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부지불식간 일어난 일에 모두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지요. 널브러진 사체를 보며 떠나지 못합니다.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합니다. 과학자들이 이들의 대변을 분석한 결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가 높게 나타났습니다. 가족의 죽음은 그들에게도 무척이나 힘에 부치는 일일 테지요.

“슬프지만 이겨내자고” 남아공의 차크마개코 원숭이. [사진출처=Harald Süpfle]
삶은 계속된다는 진리를 그들도 알고 있었나 봅니다. 가족을 잃은 원숭이들은 서로를 더욱 자주, 더 길게 보듬습니다. 그들의 사회적 활동인 ‘털 다듬기’를 더 많은 상대방과 하는 것이지요. 사랑의 상실을 다른 사랑으로 극복하는 모습은 어쩐지 우리 인간과 닮았습니다.
죽은 아기를 떠나지 못하는 어미들
우리 ‘사촌’인 침팬지도 죽음을 애도하는 대표 종으로 통합니다. 특히나 새끼를 잃은 어미의 모습은 비극의 절정입니다. 아프리카 기니에서의 일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미 침팬지는 이 고통을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습니다. 죽어버린 새끼를 계속해서 안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새끼의 털을 고르거나 입 속으로 먹이를 넣어보기도 하지요. 거의 미라상태가 되어서야 어미는 새끼를 고이 보내줍니다. 새끼가 세상을 떠난 지 70일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죽은 새끼를 안고 다닌 차크마개코 원숭이. [사진출처=알레시아 카터/UCL/Royal Society Open Science]
연구자들은 어미 침팬지가 새끼가 죽은 걸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죽은 새끼를 안고 다니는 모습이 살아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어미는 새끼의 죽음을 알면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별을 늦추는 중이었지요.

돌고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새끼 돌고래를 어미가 닷새 동안 등 지느러미에 지고 다닌 사례가 학계에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가까운 친구 돌고래들이 이 어미 돌고래를 주변에서 호위했습니다. 마치 장례식장의 운구 행렬을 보는 듯한 ‘의식’이었습니다.

“자식 사랑은 우리도 뒤지지 않아요” 돌고래는 사회성이 뛰어난 동물 중 하나다. 사진은 병코돌고래. [사진출처=Ste Elmore]
기린 역시 새끼가 죽어서도 맹수들이 사체를 물어뜯지 않게 사흘 밤낮을 지키고 서 있습니다. 어미가 새끼 옆을 지키면 동료들이 조용히 다가와 그 어미를 둘러싸지요. 다른 맹수들의 접근을 막고, 어미의 조용한 애도를 지켜주려고 하는 듯이요.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인가 봅니다.
사랑하는 이는 떠나도, 행복한 기억은 영원하다
누군가가 우리 곁을 떠날 때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옵니다. 그럼에도 단 하나의 희망이 우리 삶을 계속되게 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은 그곳이 어디든 결국 다시 만나게 된다는 ‘믿음’입니다. 기원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설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이기를, 먼저 떠나간 이들과의 행복했던 기억으로 충만하기를.
코끼리는 인간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지능적이고 감정적이다. 먹이를 먹고 있는 아시아 코끼리. [사진출처=Adbar]
<세줄 요약>

ㅇ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건 동물세계에서도 왕왕 일어난다. 코끼리의 경우 동료의 시체 옆을 지키고 때로 흙으로 덮어주기도 한다.

ㅇ침팬치, 돌고래는 죽은 새끼의 시체를 껴안으면서 조금씩 이별을 준비한다.

ㅇ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설 연휴 보내세요.

<참고문헌>

ㅇ케이틀린 오코넬,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현대지성,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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