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없는 파업’ 여론 외면 속 설연휴 끝나면 '의료대란' 오나

천선휴 기자 2024. 2.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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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비대위원장 선출, 파업 수순… "밥그릇 챙기기" 여론 냉랭
빅5 중 4곳 대전협 결정 지지…내일 대전협 총회 주목
8일 서울 시내 한 대학교 의과대학. 2024.2.8/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총파업 수순을 밟고 있는 의료계 움직임에 속도가 붙고 있다. 정부의 의대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책임을 지고 집행부 전원이 사퇴하면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설연휴 첫날인 9일 비공개 긴급 온라인 회의를 열어 김택우 강원도의사회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의협 대의원회는 정부의 의대증원 발표 다음날인 지난 7일 임시 총회를 열고 비대위 설치를 의결하면서 비대위에 총파업 등 집단행동 결정 권한을 맡기기로 했었다.

박성민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10일 담화문을 내고 "비대위가 회원에게 큰 희생을 요구하거나 요청해도 끝까지 동참하자"며 "정부가 먼저 시작한 싸움에서 패할 경우 대한민국 의료와 의사의 미래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생즉사 사즉생으로 뭉치자"며 회원들의 결집을 당부했었다.

이같은 지지에 힘입어 김택우 비대위원장은 곧바로 비대위원 구성에 착수해 설 연휴 이후 구체적인 대정부 투쟁 계획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파업에 가장 큰 동력이 되는 전공의들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전국의 전공의 1만5000명이 가입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140여개 수련병원 1만여명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8.2%가 '의대 증원시 단체행동에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빅5' 병원에 근무하는 전공의들도 대전협 결정에 힘을 싣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전공의들은 이미 대전협 결정에 따르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고, 서울성모병원은 현재 의견을 취합하고 있지만 같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대전협은 12일 온라인으로 임시 대의원 총회를 열어 파업 여부를 논의한다. 의료 현장 일선에 있는 전공의들이 파업 결정을 내릴 경우 그 여파 또한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가 파악한 '빅5' 병원의 전공의 수는 23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이 파업으로 업무에서 빠질 경우 말 그대로 의료 대란을 불러올 만큼 파급효과가 크다.

의사들의 파업 움직임에 여론은 냉랭하다. "의사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국민들이 희생당하게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민여론조사에 따르면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국민이 89.3%를 차지했다. 이 조사에서 '의협이 진료 거부 또는 집단 휴업에 나서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도 85.6%에 달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도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의사들이 명분 없는 파업을 하려 한다는 비판에 동감한다"며 "오래전부터 이야기해왔지만 의협과 의사들은 정부가 어떤 안을 제시했더라도 파업을 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김 교수는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의사들의 주장도 지적했다. 그는 "의사들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에 비해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면 외국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고 하고, OECD 국가 의사들에 비해 외래환자를 많이 본다고 주장하면서 OECD 국가의 외래진료 시간이 우리나라에 비해 3배 더 길다는 점은 애써 외면한다"며 "한의사 수까지 포함해 OECD 국가와 비교해도 우리나라 의사 수는 3분의 2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실제로 복지부의 'OECD보건통계2023'에 따르면 국내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30개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두 번째로 적다. OECD 평균 의사 수는 1000명당 3.7명이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그 수는 더 적어진다. 한의사 수를 뺀 인구 1000명당 국내 임상의 수는 2.2명으로 OECD 국가들 중 의사 수가 가장 적다.

김 교수는 "2000년 의약분업 이후로 우리나라 의사들이 본인들에게 손해나는 일이 있으면 파업하겠다고 협박하고 파업해서 저지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그걸 못 넘으면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은 진짜 망한다"며 "이를 막지 못한다면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과 같은 일들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2024.2.6/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이에 정부도 의대 증원을 막기 위한 의사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강경 대응 방침을 이어가고 있다. 용산 대통령실도 의사 단체의 파업을 저지하려는 정부 압박에 힘을 보탰다.

복지부는 증원 발표 직후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꾸려 보건의료 위기 단계를 '경계'로 발령하고 비상진료대책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움직임이 보이자 수련병원들에 즉각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의사들이 실제로 파업을 할 경우 위기단계를 '심각'으로 올려 보다 더 강화된 조치를 시행하겠다면서도 "의사들이 요구하는 필수의료 기피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 증원과 함께 4대 정책 패키지를 내놓았고, 이를 속도감 있게 구체화해 후속 대책을 신속히 만들어 제시하겠다"며 "의료인들께서는 집단행동이 아닌 정부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6일 의대 증원 계획을 발표하기 5일 전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가 담긴 4대 정책 패키지를 내놓은 바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2028년까지 10조원+α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박 차관은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지역인재 전형 확대, 지역혁신기금, 지역 의료기관을 집중 투자하기 위한 500억원 규모의 시범사업 시행,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 여러 가지 조치들을 제시했다"며 "특히 의료현장에서 제기해온 필수의료 법적 리스크 완화도 신속하게 이행하기 위해 중과실 없는 의료사고에 대해 형 감면을 적극 적용하는 등 의료 개혁을 빠르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난 2020년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의사 가운을 벗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모습. 2020.8.23/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으로는 의대 증원에 저항하는 의사들을 달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지금의 필수의료 붕괴 상황이 오기까지 국가가 그동안 정책적으로 개입한 게 별로 없고 민간시장에 내팽개치듯 하다 갑자기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하는데 수십년간 쌓인 숙제를 한 번에 해결하려 하니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며 "이번에도 정부는 디테일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0년 의대 증원 반대 파업에 참여해 국가고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이 현재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파업 국면이 쉽게 끝나진 않을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이 교수는 "당시엔 500여 명을 늘리겠다는 것에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를 해 응시율이 14%에 불과했고 이 움직임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해 정부가 결국 증원 정책을 철회했다"며 "그 당시 의대생들이 현재 전공의로 일하고 있고, 이들이 이미 한 번 강력한 파업으로 주장을 관철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저항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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