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선하면 대만 다음 한국? 세계는 반도체 전쟁 중!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 중이다.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 산업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미국은 수출통제와 투자심사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막대한 재원을 동원한 산업정책으로 응수하고 있다. 이 전쟁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승전국이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컴퓨팅, 자율주행, 5G 등 4차 산업혁명에서 압도적 우위를 확보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반도체 전쟁의 여파는 미국과 중국에 한정되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 대만, 일본, 네덜란드 등도 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갔다. 미국과 중국은 이 국가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협박과 회유를 동시에 구사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 일본, 대만이 참여하는 칩(Chip)4 동맹을 구성해 중국을 고립시키는 동시에 프렌드쇼어링을 통해 우리나라와 대만 기업의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수입국인 중국은 대중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과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로비를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군사적 위협을 서츰치 않고 있다. 인민해방군은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직후 및 2023년 4월 차이잉원 총통의 미국 방문 직후 대규모 군사훈련을 대만 주변에서 실시한 바 있다.
현재 반도체 전쟁에 가장 취약한 국가는 우리나라와 대만이다. 두 국가 다 안보와 기술은 미국, 수출은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반도체 산업의 경제안보가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쳐 있다. 미국이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가 첨단 시스템 반도체에 집중되어 있어, 첨단 시스템반도체를 90% 이상 생산하는 대만이 메모리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한 압력을 받고 있다. 지난 1월에 치러졌던 대만의 대선·총선이 미중 전략경쟁의 대리전으로 간주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만의 위상과 비중은 압도적이다. 2022년 대만 파운드리, 후공정(패키징・테스트) 분야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각각 77.6%, 53.9%로 세계 1위, 팹리스는 20.8%로 세계 2위였다. 대만의 GDP에서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21.3%까지 증가하였다. 2022년 반도체(HS 코드 8542) 수출은 대만 전체 수출에서 38.41%. 반도체 산업 의존도(반도체 생산액÷ 명목GDP)는 21.3%였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직면하게 되었다. 2019년부터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가 강화되면서 대만은 첨단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기 점점 어려워졌다. 미국이 Chip4 동맹에 포함한 이후 대만의 대중 반도체 수출은 감소하는 추세로 전환되었다. 최대 수출품으로서 반도체는 무역흑자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는 점에서, 반도체 수출통제는 대만의 무역흑자 감소로 이어졌다.
반도체 산업의 안보화는 대만의 경제안보에 상반되는 영향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에서 반도체 산업은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 硅盾) 또는 호국신기(護國神器), TSMC는 호국신산(護國神山)로 간주되고 있다. 최첨단 반도체의 약 90% 이상을 생산하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어느 국가도 대만을 대체할 수 없다. 반도체 수요가 많은 중국도 막대한 충격을 피할 수 없으므로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하지 못할 것이다. 올해 1월 블룸버그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전 세계의 국내총생산은 10조 달러, 대만의 GDP는 40.6%, 한국의 GDP는 23.3%, 중국의 GDP는 16.7% 각각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다른 한편에서 반도체 산업은 미중 전략경쟁의 볼모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국이 선제적으로 최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을 파괴하고 엔지니어를 미국으로 이전시키겠다는 깨진 둥지(broken nest; 破巢) 전략을 고려하고 있다. 즉 중국이 첨단 반도체 파운드리를 장악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미국은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해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을 방문한 미국 정치인과 고위관료에게 민주주의 반도체(democracy chips; 民主 晶片)를 강조하였다. 대만과 미국이 참여하는 민주주의 동맹이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에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의 동반자로 민주주의 국가를 선택한 것은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미국의 프렌트쇼어링에 대한 협조에도 불구하고, 대만은 미국 내 여론의 추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3년 7월 폭스 뉴스와 인터뷰에서 "그들[대만]이 우리 사업을 탈취해갔다. 우리는 그들을 멈췄어야만 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조세를 부과했어야 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관세를 부과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24년 1월 폭스 뉴스와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예전에 우리가 사용하는 반도체 전부를 만들었으나 현재는 90%를 대만에서 만들고 있다. 대만이 영리하고 멋지게 우리 산업을 탈취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대만에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만 정책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은 대만과 경제협력 강화를 위한 12개 의제로 구성된 '21세기 무역 이니셔티브' 1차 협상으 2023년 6월에 타결하였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라이 총통 당선 직후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발언하였다. 미국의 대만 전문가들 역시 민진당이 중국을 자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미국이 동유럽과 중동 이외 지역에 개입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대만은 반도체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한국, 중국 등의 반도체 산업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차이 정부는 2023년 8월 '대만형 칩스법'을 공표하였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주요 반도체 기업의 R&D 및 첨단공정용 설비 투자에 대한 법인세가 2029년 말까지 최대 50%까지 감면된다. 2024년부터 2033년까지 3,000억 대만달러를 투입하는 '칩(chip) 구동(驅動) 대만산업혁신계획'도 추진될 예정이다. 이 정책의 초점은 대만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팹리스(반도체 칩 설계)에 집중될 예정이다. 4대 핵심전략 ― ① 생성형 인공지능과 반도체 칩의 결합을 통한 산업혁신 촉진, ② 국내 인재육성 환경 개선과 글로벌 R&D 인재 유치, ③ 이종 집적화(Heterogeneous Integration) 및 첨단기술 발전 가속화, ④ 반도체 경쟁우위 기반 글로벌 반도체 스타트업과 외국자본 투자 유치 ―을 통해 대만은 향후 10년간 팹리스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20%대에서 40%대로 올리려고 한다. 오는 5월에 취임하는 민진당의 라이칭더 당선자는 차이잉원 총통의 반도체 산업정책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라이 당선자의 공약인 5대 신뢰산업 (五大信賴展業)에 반도체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산업·무역구조를 가진 대만의 경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미중 전략경쟁이 강화될수록 반도체 산업은 안보화될 것이다. 따라서 대만의 반도체 방패와 민주주의 반도체와 같이 반도체 산업에 결부된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대외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반도체 산업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산업정책이 정교화되어야 한다. 대만이 팹리스에 투자를 증대하듯이, 우리나라도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와 팹리스를 발전시킬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리전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 미중 관계 변화에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그다음 차례가 우리나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트럼프 충격에 대한 다양한 대책이 시급하게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쓴 이왕휘(런던정경대(LSE) 국제정치학 박사)는 2006년부터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국제정치경제를 가르쳐 왔으며, 올해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공공선 거버넌스(원장 강치원)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편집자)
[이왕휘 아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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