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 사' 되고 '월 정사' 안되고…'코레일 유해단어'의 세계(영상)
유해단어 자체 지정해 검색결과 차단
띄어쓰기 기준…합리적 해결방안 필요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서울역에서 진부(오대산)역 가는 KTX.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우등석과 일반석 가격 차이는 4000원 정도다. 좀 더 넓은 의자, 무료함을 달랠 수 있도록 영상 플랫폼과 4개 포털 웹 검색 서비스가 제공되는 모니터, 비교적 사람이 적어 누릴 수 있는 쾌적함의 대가로 지불하기 아깝지 않은 가격이다.
오대산에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 월정사가 있다. KTX 진부(오대산)역에선 12km정도 거리로 이 지역 대표 관광명소다. 월정사를 품은 오대산 전체가 불교성지인데, 산 전체가 불교성지인 곳은 남한에선 오대산이 유일하단다. 월정사 가려던 길, 모니터로 월정사를 한번 검색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유해단어가 포함된 검색어입니다."
황당했다. 월정사 가는 기차 안에서 월정사에 유해단어가 포함됐다는 말을 맞닥뜨리다니. 추측컨데 유해단어는 바로 '정사'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정사는 무려 25가지 뜻이 있다. 아마 '유해단어'는 19번째 ①남녀 사이의 사랑에 관한 일. ②남녀 사이에 벌이는 육체적인 사랑의 행위로 추정된다. 나머지 '정사'는 포기한다 쳐도 '월정사'가 검색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나.
한 국회의원실을 통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월정사가 검색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 △유해 금지 단어 목록 두 가지를 요청했다.
"'월정사'의 '정사'라는 단어가 유해 금지 단어에 포함되어 있고, 연관된 단어로 검색이 차단되어 있습니다. 타 유해단어도 기타문구를 붙여 같이 검색할 경우 검색이 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KTX-이음 VOD에 있는 포털사이트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유해 금지 단어를 설정해 놓은 상태이고, 연관된 단어 또한 금지 단어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예상과 다르지 않은 답변이었다. 코레일 측이 별첨한 유해단어 목록엔 총 1879개에 단어가 있다. 대부분 비속어, 성행위, 성적 부위, 성인 사이트 이름, 성인영화 배우 이름 등이었다. 간혹 왜 이게 왜 포함됐는지 의아한 것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설마 이걸 공공장소에서 검색할까' 싶은 단어들이었다.
월정사 가는 KTX 모니터를 이용해 사찰 '월정사'에 대해 알아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방법은 띄어쓰기다. '붙여 같이 검색할 경우 검색이 되지 않도록' 되어 있으니 '월정 사', '월 정 사'를 검색하면 된다. '월 정사'로 검색하면 여지없이 '유해단어가 포함된 검색어'란 창이 뜬다. 다만 '띄어쓰기 매직'을 활용해 '정 사'를 검색하면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제외한, '정사'에 해당하는 결과를 볼 수 있다.
다른 단어도 마찬가지다. 지성인은 '성인', 공적개발원조(ODA)는 '원조',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이 지은 시 정야사(靜夜思)는 '야사' 때문에 차단된다.
개인 휴대기기를 이용하면 되겠지만…
결국 코레일에서 특정 단어들을 유해단어로 지정해 발생한 일이다. 그리고 유해단어건 아니건 어차피 한 칸 띄워 쓰면 보이게 된다. 그러니 '월정사'를 '정사' 때문에 차단하지 말고 청소년에게 노출하기 부적합한 검색결과를 제외해 보여주는, 포털 자체기준을 따르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을 전달해봤다.
코레일은 "평시 또는 성인 인증 후에도 유해물이 표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포털 자체적인 유해차단 기능 외에도 추가적인 유해검색어를 설정헤 운영 중"이라며 현재 포털에서 성인 인증 없이도 유사 성인물이 표출되는 사례를 제시했다. "이는 성별과 연령 구분 없이 승차 가능한 열차라는 개방된 공공장소에서의 부득이한 조치"란 얘기다.
공적이건 은밀하건 뭘 검색하고자 한다면 개인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쓰는 게 훨씬 편하긴 할 테다. 그래도 금지 단어 지정 때문에 지성인, 공적개발원조 등이 유해단어화 되는 문제를 '부득이하다'고 넘길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월정사 가는 기차에서 월정사가 유해단어라 나오고, 월정사를 '월정 사' 또는 '월 정 사'로 검색해야 하는 건 상식적인가. 많은 이들이 고속철도로 고향을 오갈 설 연휴기간. 코레일 측의 합리적 해결방안을 기대해본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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