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85% 퇴진 희망’ 사면초가 네타냐후···이번엔 버틸 수 있을까
“희생자들의 피가 네타냐후의 손에 묻어 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각계 인사 40여명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퇴진을 촉구하는 서한에 이 같이 썼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신베트의 전직 국장 4명과 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2명, 노벨상 수상자 3명 등 43명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막지 못한 안보 실패 책임을 지고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직 이스라엘 국방관리 170명도 최근 네타냐후의 퇴진과 조기 선거를 촉구하는 서한에 서명했다.
지난해 10월 하마스 공격 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4개월 넘게 전쟁을 벌여온 네타냐후 총리가 사면초가 상황에 놓였다. 최근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5%가 전쟁이 끝난 뒤 네타냐후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다.
이번 전쟁 발발 이전에도 네타냐후는 이미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었다. 지난해 추진한 ‘사법부 무력화 입법’으로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 시위가 수개월간 이어졌고, 각종 부패 혐의로 여러 건의 재판 역시 받고 있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 공격과 전시 상황을 지렛대 삼아 내부 결집을 도모하며 위기 돌파에 나섰다. 하마스 공격으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최첨단 국경 방어막이 뚫리고 첩보기관의 정보 실패도 드러났지만, 그는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안에선 ‘분열’, 밖에선 ‘왕따’…위기에 더 극단적 ‘마이웨이’
전쟁이 장기화되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전쟁 초기 단결했던 여론이 전쟁 방식과 인질 석방 협상, 전후 구상 등의 문제를 놓고 점차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인질들의 조속한 귀환과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도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외부 상황도 녹록지 않다.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전후 구상과 휴전 문제 등을 놓고 미국과 마찰을 빚어 왔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석에서 그를 “나쁜 XX”라고 불렀다는 미 언론 보도도 나왔다. 백악관은 해당 보도를 부인했지만, 양국 간 갈등은 갈수록 고조되는 양상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이란 ‘뒷배’를 제외하고는 국제사회에서도 점차 고립되어가는 실정이다.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면서 국제사회의 여론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최대 지원국’ 미국의 요구에도 반기를 들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의 ‘마이웨이 식’ 행보는 점차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 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두 국가 해법’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것은 물론, 미국 등 중재국들이 요구한 휴전 협상에도 시간을 끌며 오히려 가자지구 공격을 강화했다.
더 나아가 그는 가자지구에서 완전한 승리를 달성할 때까지 전력을 다하겠다며 2025년까지 전쟁을 지속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민간인 희생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피란민 100만명 이상이 몰린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 공격도 강행했다.
‘사분오열’ 이스라엘 연정, 붕괴할까…“네타냐후 퇴진, 쉽지 않아”
네타냐후 총리의 이런 강경 행보는 국내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많다. 네타냐후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이번 전쟁을 무리하게 확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악화된 여론에도 쉽게 그를 총리직에서 끌어내릴 수 없는 국내 정치적 여건도 그의 ‘버티기’에 일조하고 있다.
우선 일각에서 요구하는 ‘조기 선거’는 현재로선 불투명한 실정이다. 의회 해산 등의 변수가 없는 한 다음 선거는 2026년 10월 열린다.
물론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 이미 사분오열하고 있는 연립정부가 붕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네타냐후의 연립정부는 120석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에서 64석을 차지하고 있다. 5명만 이탈해도 연립정부가 무너지고 3개월 이내 선거를 치러야 한다.
2022년 11월 총선에서 32석을 얻은 집권 리쿠드당은 극우 정당 2개 등 5개 군소정당과 손 잡고 정부를 출범시켰다. 특히 13석을 확보하고 있는 극우 정당들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가자지구 재점령’을 대놓고 주장하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등 극우 인사들은 정부가 인질 교환 협상에 나설 경우 연정에서 탈퇴할 수 있다며 총리를 거듭 압박하고 있다. 다만 이들이 이를 실제 실행에 옮길지는 미지수다.
https://www.khan.co.kr/world/mideast-africa/article/202402051831001
집권당 내 네타냐후 반대파들이 해임안을 통해 총리를 축출하고 후임자를 세워 연정을 계속 유지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이스라엘의 복잡한 정치지형상 이 역시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네타냐후 총리보다 지지율이 높은 야당 정치인 베니 간츠 전 국방장관 등 현재 ‘전시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야권 인사들이 내각에서 사임해 조기 총선 논의를 주도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야권 인사들이 연정 자체를 붕괴시킬 수는 없을 뿐더러 전시에 통합 정부에서 이탈하는 데 따른 부담도 있다.
미 뉴욕타임스는 야권 인사들이 전시 내각에서 나오고 현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확산되는 것이 네타냐후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라고 최근 보도했다. 지난해 전쟁 발발 전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부 무력화 입법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9개월 넘게 이스라엘 전역에서 이어지기도 했다.
나탄 삭스 미 브루킹스연구소 중동정책센터 소장은 “인질 안전에 대한 우려와 지난해 10월7일의 실패에 대한 시위가 확산된다면 올해 조기 선거를 하는 데 실질적인 압력이 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치적 위기 상황을 맞을 때마다 이를 돌파해온 네타냐후의 정치 생명이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란 회의론도 나온다. 이스라엘 언론 예디오트 아흐로노트의 칼럼니스트 나훔 바르네아는 “이스라엘인의 80%가 네타냐후의 퇴진을 원하고 있지만 현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는 메커니즘이 사실상 부재하고, 네타냐후는 여전히 자신이 (하마스 공격과 전쟁에) 책임이 없다고 믿는다”면서 “나는 그가 결국 승리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바이든을 상대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의 분석가인 안실 페퍼도 “모두가 ‘네타냐후 이후’를 바라지만 그의 사임을 강요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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