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식량부족? OECD 중 최하위권, 식량안보 지키려면?

김자영 원광대 HK+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연구교수 2024. 2. 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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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

인간안보의 주요 이슈 - 식량안보

<인간 개발 보고서>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매년 발표하는 보고서로 1994년 최초로 비전통적인 안보 개념인 '인간 안보(Human Security)' 개념을 명시했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정치, 군사적 안보를 넘어 인간 그 자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환경안보, 건강안보, 에너지안보, 경제안보, 식량안보 등이 포함되었다.

식량안보란 광의의 의미로는 자국민에게 충분한 양과 양질의 식량을 필요한 시기와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전쟁과 재난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도 일정량의 식량을 항상 확보·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식량 부족이란 먼 아프리카 같은 지역에서나 일어날 것 같은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사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 2022년 기준 32% 정도까지 떨어진 상태다. 곡물 자급률도 20.9%로 한국의 식량 안보 경쟁력은 세계적으로 꽤 낮은 순위를 기록한다.

'쌀이 남아돈다'는 이야기를 한번쯤은 들어본 한국인에게 있어 식량위기는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사실상 식량안보의 문제는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지 오래다.

기후변화에 따른 수확량 감소와 농지의 감소문제, 미-중 갈등과 대러 제재조치 등으로 인한 국제 공급망 위기 등 국제사회에서 식량문제는 국가적 안보의 문제까지 확장됐고, 나아가 '식량의 무기화'에 대한 우려까지 불러오고 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더욱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 별로 식량자급률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역량의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철저히 분업화된 현대 국제사회에서 식량수급의 문제는 진영 논리에 따른 국제정세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국제 농산물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국가들이다. 러시아는 전 세계 밀 수출 1위국이며 우크라이나 역시 유럽의 빵바구니라 불릴 정도로 주요 식량 생산국이다. 옥수수와 밀, 해바라기씨(유), 보리, 대두, 사탕무 등 양국은 세계의 주요 농산물 생산을 담당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특히 주요 비료 공급국으로써 세계 작물 수확량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2018년 미중갈등의 심화, 2021년 기후변화로 인한 수확량 감소와 같은 이유로 세계 농산물 시장의 가격변동의 폭이 커졌다.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국제 농산물 시장의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으며, 식량이 곧 정치적 무기로 활용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전술한 것처럼, 한국은 식량자급률이 상당히 떨어져 OECD 가입국 중 세계식량안보지수(GFSI)가 최하위권이다. 연간 1700만 톤의 곡물을 수입하는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며, 쌀을 제외하고는 밀, 옥수수, 콩, 사료용 곡물 등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으로, 국제 식량 가격이 요동치면 덩달아 휘청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러-우 사태와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조건 등으로 식량안보 문제가 초국가적 이슈로 떠오른 현재 한국의 장기적인 식량안보 대책이 절실하지만 현실적인 대책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문제의 심각성을 절실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 해외 식량수입이 어려워질 경우를 대비하여 국내 부존자원을 활용해 국민에게 어디까지 필수영양소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비상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의 경우 1990년대부터 차근차근 식량안보 전략을 수립하여 현재 러시아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세계와의 갈등 상황에 관계없이 비교적 안정적인 식량안보를 획득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중요한 것은 자국의 실리 - 중국, 러시아, 서구

세계 식량체계는 국제질서의 변화와 함께 지속적인 재편 과정을 겪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세계 농업시장은 미국 주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는데 이 와중에 러시아와 중국이 배제되었으며 그 밖의 나라들에도 농업시장의 자유화가 요구됐다.

국가 간 농업무역 자유화와 상호의존관계 구축이 가속화되고 많은 나라들이 미국을 위시한 선진 농업국가들의 농산물에 잠식됐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소수의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글로벌 가치사슬과 국제공급망의 변동성에 자국 식량 환경이 요동치는 현실을 보면서 중국은 일찌감치 식량안보 전략을 추진했다.

그리고 현재 기후변화와 농지의 급격한 감소, 러-우 사태, 미중 갈등 등 복잡한 정세 속에서 중국의 역할 변화가 두드러진다. 세계 식량의 무역구조와 가치사슬이 파편화 되는 과정 속에서 자본과 기술로 무장한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식량체계 내 권력구조의 재편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인구의 폭발과 더불어 식량 수요의 급증, 농경지 면적의 감소로 인한 식량위기에 대한 불안은 중국 역시 피해가지 못했다. 안정적인 식량안보의 보장은 중국 정부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 기존의 해외투자전략인 '저우추취(走出去‧해외진출)'를 농업까지 확대하여 국내 농업기업의 해외 진출 및 투자를 지원하고,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에서 토지를 매입 혹은 임대하여 식량기지를 건설하여 중국으로 식량을 반입하려고 계획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저개발국에 대한 '토지수탈'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중국은 해외농업투자 방식을 기존의 그린필드에서(투자 대상국에 직접 생산시설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투자방식) 브라운필드(이미 설립된 현지 기업의 인수·합병 방식의 투자형태)로 전환하고, 민간기업보다 국가 차원의 공격적인 역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푸틴의 집권 이후 농업 진흥을 통한 식량 생산 증대와 수출확대를 위한 해외투자 유치를 희망하면서 2005년 '농업발전을 위한 국가우선과제'를 시작으로 2020년 '식량 독트린'까지 지속적인 국가농산물정책을 개발·추진했다.

서방 제재조치 속에서도 식량자급률을 높여 서구중심의 국제시장에서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성을 제고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과 해외투자유치를 기조로 삼았다. 이러한 정책방향은 2016년 러시아가 세계 시장에서 미국을 밀어내고 최대 밀 수출국이 되고 다양한 농축수산물 수출 증대로까지 이어진다.

서구와 대립과 갈등이라는 유사한 환경 속에서 최대 식량수입국 중 하나인 중국과 역내 최대 식량수출국으로 변모한 러시아가 이후 서로의 식량안보와 농산물 수출입을 책임져 줄 주요 협력대상국으로 떠올랐다. 양국의 긴밀한 협력은 곧 국제시장의 가치사슬에서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지며 농산물에서 사료, 축산업, 가공업, 수출입 주요경로를 위한 고속교량 건설 등 인프라 구축까지 협력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러시아 및 중국과 지속적인 마찰을 빚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연합(EU)는 자국의 식량안보에 필요한 곡물이나 비료의 수입, 대중국 수출 분야에서는 오히려 무역량을 늘리고 공동협력관계에 합의하는 등 '실리' 위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외적 이유는 '식량의 무기화 반대'이나 식량 이슈가 각국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이 본질적 이유일 것이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조치를 유지하면서도 우크라이나 곡물의 주요 수출항로인 흑해 봉쇄를 푸는 '흑해 곡물협정'에 있어 러시아의 결정에 일희일비하면서 세계 식량 시장의 가격이 요동치는 현상을 보건대, 에너지와 함께 식량 역시 현대사회의 주요 안보이슈이며 무기이자,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와 중국이 식량안보 정책을 꾸준히 펼쳐온 결과 얻게 된 영향력 확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한국의 식량안보

한국의 세계식량안보지수는 113개국 중 사막지역에 위치한 중동 국가들이나 좁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보다도 낮은 39위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옥수수, 대두, 밀가루, 콩 등 주곡의 자급률은 매우 낮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국가차원에서 장기적인 식량안보 전략도 명확하지 않고 농축산물 무역수지적자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또한 국제사회의 진영논리에 따라 미국, 중국, 러시아의 행보에 국내시장의 향방이 정해지는 매우 불안정한 시장 환경을 가지고 있다. 자국민 식량문제에 있어서만은 '식량의 무기화 반대'라는 극도의 실리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현대 국제사회의 추세에도 맞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식량 문제를 두고 반복되는 러시아와 중국, 서방의 협력과 대립에서 보듯이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 관점을 벗어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정책, 공급원의 다양화, 쌀에만 집중되어 있는 국내 생산 환경 및 농작물의 다변화, 쌀 이외의 농작물 생산 농가에 대한 보조금 지원 등의 정책을 펼친다면 일정부분 식량이슈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그런 것처럼, 국내 인프라 구축과 농업 기업의 해외진출 및 투자 장려, 농산물 공급원이 될 수 있는 대상국들의 다변화와 안정화를 위해 정치적 관점을 벗어난 '실리주의'적 협력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 수확철의 농촌 모습. ⓒ이동문

[김자영 원광대 HK+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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