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뜨거운 스프를 ‘확’…‘막장 드라마’ 아니라 ‘경제 사건’ 이라고 [김기정의 와인클럽]
가수 조용필은 미소가 없는 모나리자의 표정을 보며 ‘슬픔’을 노래합니다. 예전에 저도 모나리자를 직접 눈으로 알현한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인파에 떠밀려 가다 보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제가 본 모나리자는 분명히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모나리자의 왼쪽 입술은 일자이지만 오른쪽 입술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기 때문에 ‘썩소(썩은 미소)’에 가깝다는 연구결과가 나올 정도로 모나리자의 알듯 모를 듯한 ‘미소’는 신비로움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꼽히는 모나리자는 이 ‘유명세’ 때문에 종종 수난을 당합니다. 이번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프랑스 농민시위와 와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중요하냐. 예술이냐, 아니면 지속가능한 식량에 대한 권리인가!”
빨간색과 노란색의 액체가 모나리자 얼굴 위로 흘러내립니다. 다행히 모나리자는 유리로 덮여 보호되고 있습니다. 지난 1956년 볼리비아 남성이 돌을 던져 그림을 훼손한 이후부터입니다. 2009년에도 프랑스 시민권을 따지 못한 러시아 여성이 모나리자에 찻잔을 던졌고 2022년에는 한 남성이 케이크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날 루브르 박물관에서 여성들이 모자리자에 액체를 뿌리는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정작 그들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지는 잘 전달되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이들은 프랑스 농민들의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 모나리자에 수프를 끼얹은 겁니다.
당시 프랑스 농민들은 물가상승으로 경작비용이 급등하고 있는데 값싼 우크라이나 농산물이 시장에 유입돼 생존권을 위협당하고 있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의 탁상행정식 환경규제가 어려움에 부닥친 농민들의 ‘농심’을 자극했고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거리를 봉쇄하는 등 무력 시위를 벌였습니다.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재배 농가’의 시위도 프랑스 농민시위 역사의 한 획을 그었습니다. 와인산업도 기본적으로는 ‘농업’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포도생산자들의 시위 중 가장 격렬했던 것 중 하나는 1907년 벌어진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 포도생산자들의 시위입니다.
발단은 1856년 랑그도크에서 파리까지 철도가 연결되면서 부터입니다. 철도운송을 통해 랑그도크의 와인이 값싼 가격에 파리 소비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고 수요가 늘자 랑그도크 지역의 포도 재배면적이 많이 늘어납니다. 하지만 과잉생산은 결국 와인가격 하락을 가져옵니다.
로드 필립스가 지은 ‘와인의 역사’에 따르면 랑그도크의 포도 재배업자들은 민생고 해결을 위해 1907년 4~6월까지 매주 일요일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입니다. 시위대의 규모는 점점 불어나 60만명 이상이 참가하며 ‘프랑스 혁명’과 비슷한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합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군대를 파견해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고 양측간 충돌로 시위대 5명이 사망합니다.
사실 프랑스 포도밭의 확산과 공급과잉은 과거부터 큰 문제였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같은 면적의 땅에서 포도만큼 환금성이 좋은 작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땅이 포도밭으로 바뀌어 곡물공급이 부족해지고, 반대로 또 포도재배 농가는 공급과잉으로 와인가격이 폭락하며 농가가 파산하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실제 프랑스의 1인당 와인 소비량은 1926년 약 180병(750㎖)으로 정점에 달했습니다. 이후 와인 소비량은 점차 줄기 시작해 지금은 연간 약 53병 정도입니다.
인건비, 물류비 등 각종 생산비용은 늘어났는데 와인 소비는 줄어드니 포도재배 농가가 수익을 내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결국 와인 가격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나서는데요. 와인의 과잉 생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개입한 것은 300년 전부터 있었던 일로 사실 새로운 뉴스도 아닙니다.
이미 1731년 프랑스 정부는 포도 경작규모를 통제하는 데 ‘3권 분립’으로 유명한 사상가 몽테스키외 같은 ‘투자자’들이 반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몽테스키외는 유명 와인생산지 보르도 출신으로 샤토 오브리옹 인근의 포도밭을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대중교통이 끊기고, 에너지 회사 노동자의 파업으로 주유소에 기름이 떨어지는 등 각종 시위로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프랑스 시민들의 ‘시위’에 대한 반응은 다른 국가와 조금 다릅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시위하는 다른 사람 의사표현을 존중한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언제든 나도 시위에 나설 수 있다”는 생각이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고나 할까요.
이번 농민시위와 관련해서도 결국 프랑스 정부는 농민시위에 ‘백기’를 들었는데요. 농민 시위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지지도가 89%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선 농민 시위가 누그러들자 이번엔 경찰이 시위를 예고하고 나섰습니다.
독일에서도 농민 시위가 있었는데 독일 정부는 농가 보조금 삭감을 강행했습니다.
한국도 프랑스처럼 와인소비가 절정을 치고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와인 종주국 프랑스가 남아도는 와인을 폐기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주목할 점은 포도재배 농가가 그냥 와인을 버리는 게 아니고 정부가 이를 매입해 공업용 에탄올로 전환하는 등 정부가 와인가격 방어를 위해 적극 개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포도밭을 휴경지로 돌리거나 올리브 등으로 경작물을 바꾸는 생산자에게도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포도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와인의 공급과잉과 폐기가 최근에 벌어진 현상이 아니고 이미 1700년대부터 반복적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점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살펴보지 않고 지금의 현상만 보면 마치 와인산업이 곧 붕괴될 것처럼 느낄수 있습니다. 그러나 와인을 수입해 마시는 한국 소비자 입장에선 오히려 프랑스 정부가 와인가격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수천억 원을 투입하고 있다는 점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프랑스에서 폐기가 이뤄지는 와인은 품질 경쟁력이 떨어지는 ‘저가’와인으로 부르고뉴나 보르도의 프리미엄 와인은 가격이 계속 상승세입니다.
와인 소비추세를 보면 한국의 와인 소비량은 코로나 이전 1인당 연간 0.8병이었습니다. 코로나 기간 혼술, 홈술로 인해 1인당 와인소비가 연간 2.4병까지 늘어납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끝나니 와인소비의 주력이던 MZ세대가 해외여행에 나서고, 전반적인 경기하락으로 소비심리도 위축되면서 지난해 한국의 와인소비량은 1인당 연간 2병 정도로 주저앉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웃나라 일본의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 5병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프랑스의 53병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소주’라는 강력한 대체재가 있기는 합니다.
국내 와인시장이 얼마나 더 성장할지를 예측하는 것은 모나리자의 미소가 ‘기쁨’인지 ‘슬픔’인지를 구분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와인시장은 좀 더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술술 빠진 이 돈 뭐죠”…해외 카드결제 때 ‘이것’ 뜨면 바로 취소, 뭐길래? - 매일경제
- 국산 비행기 만든 지 70년만에…항공기 수출 1조 돌파 - 매일경제
- “월급쟁이가 봉이냐”...직장인 불만 부글부글 - 매일경제
- “어쩐지 줄이 제일 길더라”…휴게소 ‘최고 인기’ 음식은 바로 - 매일경제
- “우리 의사선생님은 바지사장이었다”…악마의 꼬드김 사무장병원 [어쩌다 세상이] - 매일경제
- 포천 군부대가 왜 여기로 와…남양주 별내면 ‘반발’, 이유는 - 매일경제
- 1.1억에 산 아파트, 1.4억에 전세 줬다…‘돈놓고 돈먹기’ 이들의 정체 - 매일경제
- “설 연휴, 커피 마시고 영화본다”…달라진 명절 풍습 - 매일경제
- 패딩 이어 ‘조끼’ 완판…이재용 걸쳤을 뿐인데 난리난 이 옷 뭐길래 - 매일경제
- 다저스 합류한 오타니 “다시 신인이 된 기분” [현장인터뷰]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