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1학년 수업’ 오후 1시 끝나는 이유···‘3시 하교 실험’ 이번엔 성공할까
“영유아 때는 어떻게든 버텨. 초등학교 들어갈 때가 진짜야.”
몇 해 전, 초저출생 시대 워킹맘의 길을 선택한 저에게 많은 선배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쓸 수 있고 복직할 때는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으니까요. 수시로 아픈 아이를 챙기느라 눈치보며 연차를 써야 하고, 친구들이 오후 간식을 먹고 하원할 때 저녁까지 어린이집에 머물러야 하는 아이가 너무 안쓰럽기도 하지만 ‘소소한’ 불편일 뿐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불편’은 ‘불가능’으로 바뀝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의 하교 시간은 보통 1시 안팎. 양육자가 퇴근할 때까지 ‘최소한’ 5시간이 빕니다. 학교에 돌봄교실이 있지만 교실이 모자라 탈락자가 생깁니다.
하교부터 퇴근까지 ‘최소 5시간 공백’ 학원 뺑뺑이, 여성 경력단절로
돌봄교실에서 탈락했다고 갓 유치원을 졸업한 초등학생들을 집에 혼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양육자들은 눈이 빠지게 학원 스케줄을 짭니다. 학교 정문에서 하교 시간에 맞춰 차량으로 아이들을 픽업해주는 학원 리스트가 알음알음 엄마들 사이에서 돌아다닙니다. ‘그 태권도 학원은 수업이 끝나면 같은 건물에 있는 미술이나 피아노학원으로 아이들을 데려다 준다더라’는 정보는 얼마나 소중한지요.
그래도 5시간의 공백을 메우려면 학원을 하루에 최소한 3곳은 돌아야 합니다. 양육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갓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에게 휴대전화를 사주고 이동할 때마다 꼭 연락하라고 신신당부한 뒤 매일 학원을 3~4곳씩 돌리느냐, 둘 중 하나가 - 대부분 엄마 -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느냐. 전자를 선택하는 사람도 많고,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2022년 기준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5.2%에 달합니다. 2019년 KB금융경영연구소 조사에서 워킹맘이 가장 퇴사를 많이 고민한 시점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로 나타났습니다.
학교에 2~3시간 정도만이라도 더 머무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초등학교 1학년이 오후 1시가 아닌 오후 3~4시쯤 하교하면 양육자가 퇴근할 때까지 비는 시간은 3시간이 됩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시간을 줄이는 정책이 확대되고 실제로 쓸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하교시간에 맞춰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오는 일도 가능해지겠네요. 오후 1시에 퇴근해서 아이를 데리러 올 수 있는 직장인은 드물 테니까요.
오후 3~4시까지만 돌봄교실에 있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굳이 돌봄교실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지겠지요. 돌봄교실 자리가 조금 여유로워지면 돌봄에서 탈락하는 아이들도 줄어들 겁니다. 그래도 부모가 퇴근이 늦은 아이들은 학원으로 가겠지만 지금처럼 ‘뺑뺑이’를 돌 필요는 줄어들겠지요. ‘하교시간을 늦춰보자’는 논의가 나온 이유입니다.
1950년대에 정해진 저학년 하교시간… 주요국들 대부분 ‘전학년 동시하교’
현재 하교시간이 1시인 것은 발달단계상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오래 앉아 있기 어려워서라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더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은 보통 오후 3~4시까지 정규수업을 하니까요. 전세계 주요국 초등학교들은 대체로 오후 3시를 전후해 전학년 수업을 함께 끝내고 학생들을 하교시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한국 초등학교의 연간 수업시수는 655시간으로 OECD 평균인 805시간보다 훨씬 적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의 하교시간이 오후 1시 전후로 정해진 것은 1950년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의무교육을 전면 시행할 때부터입니다. 학교 건물도 교원도 부족한 상태에서 아이들을 일단 모두 취학시키는 것이 중요했고, 아직 핵가족 체제로 전환되기 전이라 이른 하교 시간이 문제가 되지 않았죠. 베이비붐 세대가 입학한 뒤에는 교실이 모자라 오전반과 오후반이 번갈아 수업을 하는 2부제, 3부제 수업이 흔했기 때문에 수업시수를 늘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가족 형태가 바뀌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올라가고 저출생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전 정부들도 초등학교 저학년 하교를 늦추려는 시도를 꾸준히 했습니다. 2004년에는 초등 저학년부터 방과후교실이 도입됐고, 2009년에는 돌봄교실이 시범운영을 시작해 꾸준히 확대됐죠. 2009년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는 미래교육비전으로 ‘전학년 전일제 운영’을 제시하기도 했고요. 2018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쉬는시간과 점심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활동을 정규수업 내에 배치해 정규수업이 오후 3시에 끝나도록 하는 ‘더 놀이학교’라는 모델을 제안했다가 반대에 부딪혀 현실화시키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3월부터 시작한다고 하는 ‘늘봄학교’도 초기 정책 이름이 ‘초등 전일제학교’였습니다. 이 정책의 목적도 ‘저학년의 하교를 늦추는 것’에 있습니다. 대신 정규수업을 늘리는 것이 아닌 정규수업 시간 전후의 방과후수업과 돌봄을 통해 학교에 아이들을 더 오래 머무르게 하겠다는 것이죠.
물론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과밀학급 문제나 딱딱하고 차가운 교실 바닥, 불편한 책걸상 같은 환경 문제가 있습니다. 유치원을 갓 졸업한 아이들 20~30명을 한꺼번에 돌봐야 하는 초등학교 1학년 교사의 업무량은 EBS <극한직업>에 등장했을 정도죠. 현재로서는 저학년 아이들이 학교에 오래 있는 것이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고쳐나가야 할 문제지 하교시간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결정적인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교원 업무경감이나 외부기관 연계 확대 등 다양한 쟁점이 있지만 일단 예비 초등생 학부모라면 ‘맞춤형 프로그램’에 눈이 가셨을 텐데요. 올해 가장 큰 변화는 초등학교 1학년이라면 별도 자격조건 없이 누구나 정규수업을 마친 후에 학교에 남아서 ‘맞춤형 프로그램’을 하루 2시간씩 들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교육부가 제시한 예시 시간표를 보면 놀이음악이나 놀이체육, 창의과학, 독서 등이 제공되고, 자연스럽게 하교시간이 오후 3~4시로 늦춰집니다. 1학기에는 2700개 초등학교에서, 2학기에는 전체 초등학교에서 제공하고 내년에는 2학년까지 확대할 예정입니다. 1~2학년 하교시간이 3~6학년과 비슷해지겠지요.
시행 서두르며 곳곳 혼란… “어떤 수업 열리나요” 예비학부모들 당황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정부는 원래 늘봄학교를 내년에나 전면 시행할 예정이었는데 시행 시기를 올해 2학기로 당겼습니다. 양육자들의 피부에 가닿을 수 있는 정책이다 보니 4월 총선을 의식해 시행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올해 1학기 시범실시할 학교들은 정책 발표 1개월 만에 준비 없이 늘봄학교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맞춤형 프로그램을 3월부터 당장 개설하려면 몇 명이 수강할지도 파악하고 강사도 구하고 시간표와 프로그램도 짜야 하는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프로그램을 개설할 것인지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1 학부모들에게 맞춤형 프로그램 수요조사를 시작한 학교도 있다고 합니다. 가뜩이나 모르는 것이 많은 초1 예비 학부모들이 어떤 수업이 열릴지도 알지 못하는 채로 ‘맞춤형 프로그램’이라는 말만 듣고 신청할지 말지를 정해야 하는 셈입니다. 급하게 섭외한 강사와 수업의 질은 괜찮을까 의구심도 듭니다.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한 초등학생 아이들이 듣고 싶지 않은 수업을 들으며 학교에 머무르는 것을 즐거워할까요.
프로그램이 끝나도 돌봄이 필요한 경우가 많을 텐데, 돌봄교실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정부는 과밀 문제가 심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돌봄에서 탈락하는 일이 최대한 없도록 하겠다지만,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 곧 아이들이 많은 과밀지역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본적으로 ‘오후 8시까지 아이를 학교에서 돌봐준다’는 것이 저출생을 해결할 방법인지 의문입니다. 부모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아이를 늦게까지 봐주는 곳이 아닌, 아이를 직접 볼 수 있는 시간이거든요. 언젠가 외국에 사는 지인에게 ‘이곳에서는 30~40대 젊은 부부라면 당연히 오후 5시쯤 데리러 갈 아이 한둘은 있다는 전제 하에 모든 것이 굴러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생 아이를 오후 8시까지 학교에 두지 않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획기적인 방법도 정부가 고민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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