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엔 짧은 詩…‘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제 없어’
최근 해외 시집이 이례적으로 국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일이 있었다. 일본 노인의 일상을 담은 ‘실버 센류(川柳)’를 묶은 시집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포레스트북스). ‘센류’는 5·7·5의 17개 글자에 풍자와 해학을 담아낸 일본의 짧은 정형시인데, 관련 공모전 수상작 88수를 담은 이 책이 교보문고 1월 셋째 주 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팬덤이 중요한 국내 시집 분야에서 처음 출간되는 ‘실버 센류’가 인기를 끈 이유로는 ‘짧은 길이’와 ‘생활에 밀접한 웃음’이 꼽힌다.
센류 몇 수를 읽어보면, 인기의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제 없어’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손을 잡는다/ 옛날에는 데이트/ 지금은 부축’ ‘분위기 보고/ 노망난 척해서/ 위기 넘긴다’처럼 짧은 길이 안에 현실의 무게와 웃음을 응축했다. 60대 이상뿐 아니라, 20~50대가 본인의 부모·조부모 세대의 삶을 상상해 적은 시도 다수다. 짧은 시가 세대 간 소통의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설 연휴를 맞아, 읽어볼 만한 짧은 국내 시를 몇 편 소개한다. 작년 12월 계간지 ‘서정시학’ 4행시 특집에 실린 것들이다. 짧은 길이와 정해진 형식 안에 서정적 풍경을 불러오는 작품이 여럿이다. ‘이 섬 안에/ 네가 있는 거// 이따금 멀리서/ 볼 수 있는 거’ (‘기쁨, 슬픔’ 나기철), ‘산책로에서 갈대의 간격을 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촘촘하게 서걱이는 갈대들/ 눈물을 훔쳐 주기 좋은, 부대끼기 좋은,/ 흐느끼는 사람의 곁에서 가만히 외면하기 좋은 간격이 있다’ (‘바람 부는 저녁’ 이현승).
문학동네에서 운영하는 뉴스레터 ‘우리는 시를 사랑해’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를 다수 만나볼 수 있다. 외부 필자가 추천시와 산문을 써 보내는 뉴스레터로, 최근에는 박정민 배우와 김소연 시인이 번갈아 집필한다. 박정민 배우는 최근 이문재 시인의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에 실린 시 ‘문자메시지’를 소개했다. 가족과 사람에 대해 곱씹게 만드는 시. ‘형, 백만 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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