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는 혹평·해외는 호평? K-콘텐츠, 탕후루 안 되려면?

안진용 기자 2024. 2. 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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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야

"해외 반응은 괜찮은데…."

지난해 넷플릭스와 디즈니+ 등 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통해 소개된 K-콘텐츠에 대한 부족한 완성도를 지적하는 기사에 제작 관계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내놓은 반응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는 맞는 말이었죠. 하지만 오래 된 유행어를 꺼내자면, 이는 ‘비겁한 변명’(영화 실미도 中)입니다. 왜 그러냐고요? 하나씩 따져보죠.

520만 명을 동원했던 영화 ‘독전’의 속편인 ‘독전2’는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직후 포털사이트 네이버 평점 2.1점을 기록했습니다. 역대 최악의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 ‘리얼’의 평점이 4.44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독전2’가 1편 팬들의 마음을 얼마나 할퀴었는지 짐작할 수 있죠.

최근에는 또 다른 넷플릭스 영화 ‘황야’가 그 대열에 합류하는 모양새입니다. 지난달 26일 공개된 ‘황야’의 네이버 평점은 4.99점인데요. 평점 1∼2점을 준 네티즌의 비중이 무려 46%였죠. 흥행보증수표라 불리는 ‘마동석 유니버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 임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큽니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에서는 1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는 대대적인 홍보 포인트가 됐죠. 한국 언론과 대중의 ‘보는 눈’이 부족한 걸까요?

이는 콘텐츠의 힘이라기 보다는 플랫폼의 힘이 만든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리딩 콘텐츠 기업이죠. 게다가 ‘구독’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근간인데요. 한 달 구독료를 내면 모든 콘텐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신작을 선택하는 데 부담이 없습니다. 신작이 공개될 때마다 대대적인 홍보 프로모션을 벌이는 것도 ‘반짝 흥행’을 일구는 이유죠.

여기에 K-콘텐츠에 대한 믿음이 더해집니다. ‘킹덤’의 등장 이후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지옥’, ‘더 글로리’ 등 K-콘텐츠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데요. 덩치만 키운 할리우드식 뻔한 액션과 단조로운 이야기에 싫증을 느낀 글로벌 구독자들이 다양한 장르와 촘촘한 서사로 무장한 K-콘텐츠를 믿고 선택하는 거죠. 여기에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과 애플TV플러스 ‘파치코’ 등 한국인과 한국적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주목받으며 해외 팬들의 유입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K-콘텐츠를 대하는 국내팬들과 해외팬들의 자세가 다르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는데요. 한국에서는 ‘신파’라 불리는 가족주의와 온정주의가 해외 시장에서는 자본주의의 폐해로 파편화된 인간사회의 대안으로 제시되듯, 비교적 최근 K-콘텐츠를 접한 해외팬들은 서양과 사뭇 다른 사고방식과 사건 해결 방식에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죠.

넷플릭스 영화 ‘독전2’

하지만 장기적 관점으로 볼 때, 안일한 기획과 유사한 소재의 남발, 스타의 인지도에만 기댄 졸작이 반복되면 K-콘텐츠를 향한 열기는 금방 식을 수밖에 없습니다. 2023년 기준, ‘더 글로리’ 이후 소위 ‘대박’이라 불릴 만한 넷플릭스 K-콘텐츠가 없다는 것이 그 증거죠.

1년을 결산하며 딱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없다는 겁니다. 분명 제작비가 상승해 덩치가 커지고, 성공한 시리즈의 속편이 줄줄이 공개됐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줄이었는데요. 한 마디로 ‘속 빈 강정’이었다는 거죠.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K-콘텐츠의 첫 1∼2주 성적은, 극장의 개봉 첫 주 성적과 비슷한 패턴을 보입니다. 음식점 하나를 차려도 ‘개업 효과’가 있어서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처럼, K-콘텐츠에 대한 신뢰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작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수치는 공개 3주 이후 성적이죠. 극장 개봉 영화가 공개 3주차에도 1주차 성적을 유지하거나 뛰어넘으면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돌았던 증거이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넷플릭스에서 공개 3주 이후에도 톱3 안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면 이미 챙겨본 이들 사이에서도 호평이 나오며 콘텐츠의 만듦새를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죠.

‘오징어 게임’과 ‘더 글로리’ 등 대박 콘텐츠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각광받았다는 거죠. 국내 시장에서는 혹평을 받는데 해외 시장에서 일정 수준 성적을 낸다는 것은 위안거리일 뿐,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K-콘텐츠가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을 요구받고, 해외팬들도 점차 K-콘텐츠에 익숙해지는 상황 속에서 장기간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한 기획과 탄탄한 스토리 구성이 필요하죠. 호기심에 두어 번 먹는 음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탕후로도 마라탕도 한 때는 뜨거웠지만, 비슷한 자극은 금세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데요. 결국 대중의 관심사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다는 거죠. K-콘텐츠 역시 몇 년 후,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운동화끈을 다시 매야 할 겁니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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