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전부터 검찰 고발까지···‘대통령 시계’가 뭐길래
‘윤석열 시계’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 갈등 소재가 됐다.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이 “고무신 선거”라며 강승규 대통령실 전 시민사회수석을 비판한 것이 한 사례다. 홍 의원은 지난달 30일 YTN 라디오에서 “1960~70년대 막걸리·고무신 선거를 연상케 할 정도로 대통령 깃발이 결혼식장, 출판기념회 등에 나타나고 있다”며 “대통령 시계가 (유포됐다고) 신고가 들어온 게 벌써 25건 정도”라고 주장했다.
강 전 수석은 ‘가짜뉴스’라고 맞섰다. 그는 지난 6일 같은 라디오에서 “가짜 정치, 거짓말 정치 더이상 방치돼선 안된다”며 “시민사회수석실에는 전국에서 수천명, 1만명 가까운 단체 주민들이 대통령실에 와서 국정 홍보도 듣고 철학도 공유하고 간담회도 하는데, 오면 시계나 손수건을 기념품으로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충남 홍성 선거관리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 조사에 나선 상태다. 최근엔 경북 구미 선관위가 국민의힘 구미시을 예비후보 지지자 A씨를 검찰에 고발하는 일도 벌어졌다. A씨는 지지 예비후보자인 B씨를 위해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기념 시계와 음식물 등 100만원 상당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지지자 인기 상품···‘박정희 첫 시계’ 이후 전통
대통령 기념 시계는 지지자들에게 상징적 의미를 지녀 인기가 좋은 상품이다. 고위층과의 친분 과시에 사용하는 사람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 기념 시계 첫 제작, 증정 사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한다. 새마을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한 뒤 자신의 친필 서명을 담은 대통령 시계를 선물했다. 이후 전 대통령 전두환씨, 노태우 전 대통령도 기념 시계를 국가유공자, 스포츠 스타 등에게 선물하며 일종의 전통이 만들어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 기념 시계는 시계 뒷면에 새겨진 ‘大道無門(대도무문)’ 문구로 유명했다. 김 전 대통령 좌우명으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 시계는 이례적으로 사각형이어서 화제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념 시계는 대통령 부부의 친필 사인으로 장식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 기념 시계는 뒷면에 ‘사람이 먼저다’라는 글귀를 새겼다. 문 전 대통령 별명을 따 ‘이니시계’로 불렸으며, 인기가 좋아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수십만원 선에 거래되기도 했다.
시계 유통량은 정권마다 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 기념 시계는 정권 초기엔 여당 의원에게도 남녀 시계 1쌍만 줄 정도로 배포가 적게 이뤄졌다고 한다. 이후 새누리당 의원 및 원외 당협위원장 등에 남녀용 손목시계 5세트를 배포해 유통량이 늘었으나 전체적으로 수량 관리가 잘 됐다는 평을 받는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3월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총회장이 교회 활동에 따른 감염병 확산을 사과하는 기자회견 현장에 봉황 문양에 ‘박근혜’ 글자가 적힌 금장 시계를 차고 나와 이목을 끌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는 “우리(박근혜) 시계는 금장 시계가 없고 은색만 있다”며 “(해당) 시계는 가짜”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시계’는 대량 유포됐고, ‘짝퉁’ 시계를 유통한 업자가 적발돼 실형을 선고받는 일도 벌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권 1년 차인 2022년 8월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를 앞두고 각 의원실에 대통령 시계를 선물했다. 강 전 수석 설명대로 대통령실 차원에서 방문자 등에 시계를 선물하기도 해 시장 유통량이 적지는 않다는 평을 받는다.
■급기야 ‘시계 민원’···총선 전 배포, 부적절 인상
‘대통령 시계’ 인기 탓인지 관련 민원이 간혹 목격되기도 했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맏형으로 한때 당권 중심에 섰던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대표 사례다.
권 의원은 지난해 11월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에게 “남자시계 20개, 여자시계 10개를 저희 사무실로 보내주실 수 있는지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윤 비서관이 “네 의원님 바로 조치하겠습니다”라고 답한 것도 당시 카메라에 담겼으나 윤 비서관은 6일 뒤인 그달 7일 국회 운영위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에서 ‘(윤 대통령) 손목시계를 (권성동) 의원실로 전달했느냐’는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전달) 안 했다” “저런 요구가 무지 많은 건 사실인데, 일일이 다 해드릴 수는 없다”고 답하며 선을 그었다.
김대남 국민의힘 경기 용인시갑 예비후보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지난해 대통령실에 초청된 지역주민 등에게 시계를 제공한 사실이 최근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관변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 자문위원으로 임명된 유튜버가 용산 대통령실에 초청돼 다녀온 뒤 기념품으로 ‘윤석열 시계’를 받아왔다며 자랑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대통령실에 시계를 요청하거나 시계 배포 사실이 알려진 인물들이 실제 어떤 용도로 시계를 바라봤는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 시계’가 거듭 출마 의향자들을 통해 유포되는 게 부적절하다는 인상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공직자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거나 선거 운동을 해선 안 된다. 공직 후보자 및 가족은 선거구민이나 선거구와 연관 있는 자에 대한 기부 행위가 제한된다. 법상 규정된 제한된 방법을 제외하고는 선거운동 기간 전 좌담회, 토론회, 향우회, 동창회, 반상회, 그 밖의 집회, 정보통신, 선거운동기구나 사조직의 설치 등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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