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미국산 사과 맛좀 보세요" 못하는 이유는…
가격 치솟으면서 물가관리 '한숨'
수입 주장에 "병해충 우려도 고려해야" 의견도
“올해 물가의 양대 변수는 원유, 그리고 ‘사과’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올해 물가 관리에 대한 자신감을 묻자 이 같이 답했다. 그는 “원유야 ‘상수 같은 변수’지만, 사과는 어떻게 될지 가늠이 안 돼 고민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과 생산량이 급감한 것이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인지, 기후 변화에 따른 장기적 추세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는 것이다.
2023년 사과 생산량, 전년 대비 30% 줄어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39만4428t으로 최근 10년 새 가장 적었다. 전년(56만6041t) 대비로는 30.3% 줄어든 수치다. 봄엔 냉해와 우박이, 여름엔 장마와 태풍이 겹치면서 ‘사과 참사’가 벌어졌다는 설명이다.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은 치솟았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사과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56.8%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인용하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조사 결과에서도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2일까지 사과 가격은 1년 전 성수기 때보다 12.2% 올랐다. 사과 가격이 치솟으면서 귤 등 대체 과일들의 가격까지 들썩이고 있다.
사과밭도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성과수(열매를 생산할 수 있는 나무) 재배 면적은 2021년 2만6302㏊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엔 2만4687㏊까지 6.1% 줄어들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2024년 농업 전망 보고서에서 고목 폐원과 노동력 부족 등의 영향으로 올해 성목 면적이 전년 대비 약 2% 줄어들 것으로 관측했다.
현재 한국은 사과를 신선과일 형태로 수입되고 있지 않다.
사과 수입에 가장 가까운 나라는 일본으로 알려져 있다. 사과를 수입하려면 접수 – 착수통보 – 예비위험평가 - 개별 병해충 위험 평가 - 위험관리 방안 평가 - 검역 요건 초안 작성 - 입안 예고 - 고시 등 총 8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본은 가장 앞선 5단계에 머물러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3단계에 멈춰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사과 수입을 요구하는 외국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2년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NTE)’ 한국 편에서 미국산 과일의 수입을 허가하도록 한국 정부에 압박을 계속 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과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방되면 중국산 사과가 가장 많이 들어올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에서 사과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중국이어서다. KREI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국의 사과 수출량은 108만t으로 전체의 14.7%를 차지했다. 폴란드와 이탈리아가 92만t(12.6%)으로 각각 2~3위였다. 미국은 64만6000t(8.8%)으로 4위였고 프랑스가 30만8000t(4.2%)으로 5위를 기록했다. 한국도 수입을 안 할 뿐 수출은 하고 있다. 같은 해 한국의 사과 수출량은 1264t으로 집계됐다.
병해충 우려에 수입개방 못해
정부가 국내에선 물가 압박을, 해외에선 통상 압박을 받는 이중고에도 사과 수입을 막는 이유로는 통상 농민들의 반발이 꼽힌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입된 과일이 자칫 국내 과수농가에 전염병을 퍼트릴 수 있어서다.
‘과수의 에이즈’로 불리는 과수화상병이 대표적이다. 잎이나 줄기, 꽃, 열매가 마치 불에 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변하다 결국 고사하는 병이다. 한번 걸리면 방제가 불가능하다 보니 반경 100m 이내의 과일나무들을 뿌리째 뽑아서 태워야 한다. 과수화상병은 2015년 5월 경기 안성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올해 작황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탄저병도 문제로 꼽힌다. 탄저병은 습기가 많고 기온이 25도 전후일 때 감염이 잘 이뤄진다. 여름철 폭우가 지나간 직후에 유행하는 이유다. 탄저병에 걸리면 껍질에 검은색 작은 반점이 나타나다 점차 과실 표면이 움푹 들어가면서 과실 내부가 갈색으로 변해버린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각종 유행병 세균의 유전자를 분석해보면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수입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도 세균이 퍼지고 있으니 수입 개방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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