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 투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KBO 新 역사+FA 대박까지 노리는 구승민의 '위대한 도전'
[마이데일리 = 박승환 기자] "'중간 투수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구승민은 지난 2013년 신인드래프트 6라운드 전체 52순번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고 프로 무대에 발을 들였다. 프로 입단 초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2018년 64경기에 등판해 7승 4패 14홀드 평균자책점 3.67의 훌륭한 성적을 남기며 롯데에서는 없어선 안 될 존재로 거듭났다. 이 활약은 결코 반짝이 아니었다. 롯데 역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었다.
구승민은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뒤 2019시즌에는 41경기에 평균자책점 6.25로 부진했으나, 이듬해 57경기에 나서 승 5승 2패 20홀드 평균자책점 3.58로 활약, 데뷔 첫 20홀드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2021시즌에도 6승 5패 20홀드 평균자책점 4.33을 마크, 2022년에는 무려 73경기(62이닝)에 등판해 2승 4패 26홀드 평균자책점 2.90의 성적을 남기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2023년은 구승민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구승민은 지난해 5월 23일 사직 NC 다이노스전에서 2-0으로 앞선 8회초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시즌 10번째 홀드를 수확하는 기쁨을 맛봤다. 4년 연속 10홀드라는 기록도 큰 기쁨이었지만, 강영식 코치(삼성 라이온즈)가 보유하고 있던 프랜차이즈 최다 96홀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구승민이 작성한 기록은 한 차례에 그치지 않았다. 5월 26일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시즌 11번째 홀드를 수확하면서 강영식 코치를 뛰어넘고 롯데 구단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구승민은 8월 31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시즌 20번째 홀드를 기록했는데, 이는 KBO리그 역사로 연결됐다. 이전까지 4년 연속 20홀드를 기록한 선수는 안지만(前 삼성 라이온즈, 2012~2015년) 밖에 없었는데, 구승민이 그 뒤를 잇게 된 것이었다.
20홀드를 넣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구승민은 롯데가 상승세를 타던 지난해 4월 12경기에 등판해 8홀드 2세이브를 수확했다. 그리고 5월에도 3홀드 평균자책점 2.79로 좋은 흐름을 이어가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6월 롯데가 하락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홀드를 쌓을 기회가 줄어들었고, 시즌 초반부터 무리하게 마운드에 올랐던 여파 등으로 인해 6~7월 3홀드 밖에 쌓지 못했다. 하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휴식을 취한 뒤 좋았던 모습을 되찾았고, KBO리그 역대 두 번째 위업을 달성하며 2023시즌 일정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굵직한 기록을 만들어낸 구승민은 이제 두 마리 토끼 사냥에 나선다. 바로 KBO리그 역대 최초 5년 연속 20홀드라는 기록과 함께 FA(자유계약선수) 대박 계약이다. 올해로 33세인 구승민은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셋업맨'으로 정평이 나 있는 만큼 '불펜 강화'를 목표로 두는 구단이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릴 만한 선수다.
FA를 앞둔 시즌은 여느 때와 다를까. 미국 괌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구승민은 "아니다. 그냥 똑같은 것 같다. 주변에서는 신경을 써주시는데, 나와 (김)원중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것 같다. 나와 원중이는 다가올 미래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2~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FA를 할 수 있을지 몰랐는데, 어느 순간 '곧 FA다'라는 이야기들이 들리더라"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은 똑같은 것 같다. FA라고 의식이 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래도 올 시즌이 끝난 후에는 FA 자격을 얻는 만큼, 주변에서의 관심이 고마울 따름이다. 구승민은 '주변의 관심이 부담이 되지 않느냐'는 말에 "20홀드를 할 때도 아홉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만큼 관심이 있고 신경을 써주시는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내게 관심이 없었다면, FA를 비롯해 홀드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감사한 마음으로 듣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크게 의식하지 않지만, 구승민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셋업맨'에 대한 좋은 평가다. 야구에서는 선발 투수를 바라보는 눈과 불펜 투수에 대한 시선에 차이가 있다. 특히 팀의 승리를 지켜내는 마무리 투수에 비해 '셋업맨'의 경우 꾸준한 활약을 펼치더라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 '상황'이 만들어졌을 때 등판하는 마무리와 달리 셋업맨은 근소한 격차로 지고 있거나, 이기고 있을 때는 물론 '하이 레버리지' 상황에서도 마운드에 올라야 할 정도로 등판 타이밍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지만, 선발과 마무리에 비해 주목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구승민은 "개인적으로 불펜 투수들의 보직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말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펜 투수들은 다른 보직에 비해 빛을 못 보는 경우가 있다. 내가 돈을 많이 받는다, 안 받는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간 투수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야 어린 선수들 중에서도 불펜 투수를 기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불펜 투수들이 어떤 보직에 못지않게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후배들도 나를 보고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구승민은 "나도 불펜에서 오래 던졌지만, 정말 매력이 있는 포지션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발 또는 마무리로 가는 모습이 아쉽다. 주위에서 '승민이 형 정말 대단하십니다', '100홀드 축하드립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네도 꾸준히 하면 다 할 수 있는 기록이야'라는 말을 해준다. 내가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고, 그런 목표를 정립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FA와 마찬가지로 구승민은 5년 연속 20홀드 또한 크게 의식하지 않는 모습. 그의 목표는 오롯이 '건강'이다. 일단 따듯한 곳에서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몸은 잘 만들어지고 있다. 구승민은 "페이스는 조금 빠른 편인데, 막상 개막전이 다가올 때 컨디션을 끌어올리면 조급한 것이 있다. 아무래도 개막이 일주일 빠르고, 2~3년 정도 몸을 만들어 보니,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여유 있게 시즌을 준비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더 좋더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구승민은 "작년 막바지에 부상으로 빠졌는데, 안 아픈 것이 첫 번째 목표다. 아프지 않다면 개인적인 기록들은 다 따라온다고 생각하고, 따라왔었다. 연투를 하거나, 조금 많은 투구수를 기록했을 때도 잘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지금까지 나도 가을야구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포스트시즌에서 던지고 싶고 이기고 싶다. 팀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개인 기록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올해는 팀과 개인 성적이 함께 잘 나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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