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 손녀 감금하고 놀이공원 간 할머니···‘황혼 육아’ 일본 사회의 그림자

박용하 기자 2024. 2. 1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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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지난 5일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 열린 공판에 참석한 오노 아유미(47)는 손주를 방치하고 외박을 반복한 이유를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에게 적용된 죄명은 보호자유기치사와 감금. 40대 할머니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를 감금하고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게된 것이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더위가 극심한 지난해 6월이었다. 오노는 당시 자신의 셋째 아들이 낳은 2살 손녀의 손발을 테이프로 묶은 뒤 감옥처럼 개조한 유아용 울타리에 넣어 감금했고, 그 뒤 자신의 다섯째 아들과 함께 오사카의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USJ)에 놀러가 약 사흘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감금된 손주는 물과 식사 없이 홀로 방치됐으며, 더위에 노출돼 결국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시신에선 장기간의 학대 흔적도 발견됐다.

검찰은 사건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로 뒤늦은 손육(손주 육아)에 따른 스트레스를 지목했다. 오노는 셋째 아들이 이혼 뒤 자신에게 아이를 맡기고 육아를 거의 돕지 않았다며, 손주의 양육은 지금까지의 육아와 비교해 “현격히 힘든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를 시설에 맡기려고 지자체와 상담을 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고도 설명했다. 이에 아이를 점점 방치하게 됐고, 사건 1개월 전부터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아이를 집에 둔 채 자주 놀러갔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 손주를 대상으로 조부모가 범죄를 벌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7월에는 66세 여성이 4살 손자의 목을 졸라 살해하려고 한 뒤 실패하자, 같은날 손자를 차에 태워 도로에 있는 표지판을 들이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손자는 사망하지 않았으며, 그를 보호한 아동상담소에서 몸의 이상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해 범행이 발각됐다. 여성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으며, 수사기관은 손육 과정에서의 스트레스가 원인이 됐을 가능성을 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3살짜리 손자를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데라모토 유미(48)가 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데라모토는 2021년 7월 시내 한 음식점에서 손자의 머리를 때리고, 그 뒤 집에서 추가적인 폭행을 가해 손자를 죽게 한 혐의가 인정됐다. 그는 음식점 이외 장소에서의 폭행은 부인했으나, 검찰은 사망자의 뇌출혈 상태나, 집에서의 학대 정황 등을 근거로 유죄를 주장했다.

데라모토는 재판에서 폭력에 이르게 된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수사기관 등은 손육 스트레스가 작용했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데라모토는 개호사로 일하는 동시에, 장남의 아들(피해자)을 사실상 떠맡은 상태였다. 그는 첫 손주를 처음 맡았을 때 굉장히 귀여워했으나, 장난이 잦자 일상적으로 손찌검을 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시 데라모토의 집은 쓰레기장과 같은 상태로, 유아가 사실상 지내기 힘든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조부모의 손육에 따른 스트레스는 사회적으로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아이를 맡는다고 해도 실제 부모에 비해 직접적 책임이 없고, 일시적인 돌봄에 불과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를 기르는 것이 노년의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이란 시각도 많았다.

하지만 가정 해체로 인해 손주를 자식처럼 떠맡는 고령층이 많아지고, 맞벌이 자녀의 돌봄 수고를 줄여주기 위해 손주를 돌보는 이들도 많아지다보니 손육은 이제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오게 됐다. 육체적 피로, 심리적 스트레스와 함께 손주의 양육 방식을 두고 자녀 세대와 충돌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이에 일본에선 ‘손주 피로’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고정적인 성역할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손육이 여성에게 과다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일본은 여성에게 가사와 육아 부담을 집중시키는 등 성역할 분리가 강한 사회로 평가되는데, 이러다보니 일본 여성들은 본인의 육아에서도 행복도가 저하되는 경향이 나타난 바 있다. 여기에 손육까지 가중되다보니 평생에 걸쳐 육아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일본에서는 지자체나 일부 기업들이 육아 휴가를 쓸 수 있는 대상에 조부모까지 포함시키는 등 제도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손주를 키울 때 자녀 세대와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상호 이해를 넓히는 지침서를 마련한 곳도 있다. 다만 이같은 변화는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이며, 일각에서는 할아버지의 적극적인 손육 참여 등 사회 근저에 깔린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손육에 뛰어드는 고령층이 많아지며 이와 관련된 대응이 중요해졌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과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비경제활동인구 중 미취학 아동을 돌보는 육아를 한 60대 여성은 3만3000명이었다. 육아를 한 60대 여성의 수가 직전 연도와 비교해 3000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손육 인구가 늘어나며 조부모와 손주 간의 비극적인 사건도 언론에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만삭의 며느리를 숨지게 한 혐의로 50대 여성 장모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장씨는 그간 첫째 손자를 돌봐왔으나 며느리가 둘째를 임신하자 ‘더 이상 손자를 돌보지 못하겠다’며 그와 갈등을 벌였고, 불화의 모든 원인은 며느리에게 있다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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