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기자의 시선]'한동훈-윤석열 갈등' 보도가 씁쓸한 이유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2024. 2. 1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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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지난 1월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읍 불이 난 서천특화시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만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지난달 22일 밤 충남 서천군 서천특화시장에서 큰불이 났다. 밤사이 점포 227개가 탔다고 한다. 보도사진 속 피해 상인들의 표정에는 허망함이 묻어났다. 23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서의 한 상인의 토로는 더욱 직접적이었다. “두 눈으로 볼 수가 없어요. 이렇게 처참하게 우리의 삶의 터전이 망가지다니….”

이 폐허가 된 '삶의 터전'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갔다. 윤석열 대통령도 뒤이어 도착했다. 서울 쪽 언론은 이날 두 사람의 만남에 집중했다. 한-윤 갈등이라는 서사가 극으로 치닫던 중이었다. 서천시장에서의 만남은 극적 화해, 갈등 봉합이라는 의미가 부여됐다. 다음 날 아침 신문을 봤다. 1면에 일제히 두 사람의 만남을 비중있게 다뤘다. 화재 피해 당사자인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는 뒷전이었다.

두 사람이 재난 현장을 화해의 무대로 쓰고, 이에 언론도 동조했다는 비판은 많이 나왔다. 나는 좀 더 사소해 보이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화재 피해 현장을 배경 삼아 화재에 빗댄 비유를 쓰는 기사를 짚으려고 한다.

경향신문은 24일 자 1면 톱기사 제목을 <불씨 안고…윤·한 충돌 일단 봉합>이라고 썼다. '불씨 안고'라는 표현에서 턱 걸렸다. 지역 기자로서는, 이 '불씨를 안고 있다'는 비유적 표현이 본능적으로 불편했다.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생생한 재난의 현장과 그곳에서 절망하고 있는 상인들이 있었다. 서울 정치 서사를 부각하기 위해 쓴 '불씨'라는 표현은 반대로 피해 당사자인 지역 상인들에게는 감정적으로 공감하지 못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하나의 방증처럼 느껴졌다.

▲1월24일자 경향신문 1면.

비유는 안 써도 무방이다. 그럼에도 무려 1면 기사 제목에 쓴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선택의 과정을 대강 세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A. 서천시장에 불이 났다. B. 윤석열-한동훈이 이 화재 피해 현장에서 만났다. C. 두 사람의 갈등도 불같다고 할 만했다.

A는 사실이고 B는 언론이 포커스를 맞춘 사실이자 서사의 중요 대목이다. 반면 C는 오로지 비유적인 생각이다. 무형의 갈등에 실제로 불을 붙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A라는 사실에 뒤이어 B라는 서사가 강조되면서 상인들의 눈물과 상인들의 요구는 뒤로 밀려났다. 그래서 C같은 발상은 B 서사에 과몰입한 부작용이다.

기사 본문에서도 화재에 빗댄 표현이 나온다. “갈등의 도화선이 됐던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의 거취를 두고 양측의 입장 차가 여전해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후 지난달 29일 자 경향신문 <윤석열·한동훈 2시간37분 회동···갈등 잔불 진화?> 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화재에 빗댄 표현은 이어진다.

“이날 오찬은 최근 불거진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간 갈등의 잔불을 끄고 '원팀' 기조를 회복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중략) 지난 23일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공동 행보를 하며 갈등을 임시 봉합한 뒤 엿새 만에 오찬 회동으로 완전 진화에 나선 셈이다.” 경향신문 기사를 사례로 들었지만 연합뉴스동아일보 등 다수의 언론이 엇비슷한 비유적 표현을 썼다.

나는 서울 언론의 지역에 대한 무신경함도 기사에 녹아있다고 본다. 가보지 않은 곳, 일상의 반경에서 벗어나 있는 곳에 대한 감각은 무딜 수밖에 없다. 만약에 배경이 서울이었다면 어땠을까. 기자가 평소 거닐던 길, 자주 가던 어느 곳, 언제든지 감각 할 수 있는 장소였다면 단어도 더욱 예민하게 골라내지 않았을까. 어쩌면 둘의 만남 자체를 더 비판적으로 바라봤을지도 모르겠다.

가정법이긴 하지만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가까운 곳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단어 하나로 머리를 싸매고 종일 씨름하는 곳이 언론사의 편집국이기도 하다. 적어도 전국지를 지향한다면, 의도적으로라도 지역과 지역민이 배제되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지 꼼꼼히 살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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