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고용 훈풍에도 찬바람 부는 실리콘밸리···해고가 계속되는 이유

김경미 기자 2024. 2. 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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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계속된 실리콘밸리 해고폭풍
성장 대신 효율 택하는 빅테크 선두로
달라진 성공 공식 따라 해고 이어질 우려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위치한 메타의 본사 /AFP연합뉴스
[서울경제]

2일(현지시간) 발표된 1월 고용지표에 따르면 미국은 35만 3000건의 신규 일자리를 추가하며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1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를 보인 것은 물론 전문가 전망치인 18만 5000건과 비교해도 두 배 높은 회복세를 보였다. 얼어붙은 고용 시장이 풀리고 있다는 기대가 크지만 여전히 찬바람이 부는 지역이 있으니 바로 실리콘밸리다. 이곳에서는 2022년부터 불어닥친 ‘해고 폭풍’이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까지 26만 명의 기술직 근로자를 해고했던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들은 올해도 연초 한 달여 동안에만 3만 3000여 직원의 책상을 치워버렸다. 고연봉과 넘치는 복지혜택, 앞으로의 미래가 더 기대되는 커리어로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테크 업계의 기술 전문가들은 왜 갑자기 갈 곳을 잃어버린 걸까.

①낙관주의의 실패···과도한 몸집 불리기의 반작용

“성장에 대한 과도한 낙관주의가 고용 과잉을 낳았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로서 회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한 책임을 느낀다.”

마크 저커버그는 2022년 11월 8일 열린 메타의 임원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9일 직원의 13%에 해당하는 1만 1000여 명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2004년 메타 창사 이후 18년 만에 이뤄진 첫 대규모 구조 조정이자 앞으로 계속될 실리콘밸리 해고 폭풍의 신호탄이었다.

마크 저커버그/서울경제db

저커버그의 반성문은 수많은 실리콘밸리 테크 경영진의 심경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언택트(비대면) 서비스 수요가 급증했고 테크 기업들은 장밋빛 미래를 낙관하며 앞다퉈 몸집 불려갔다. 때마침 경기 침체를 우려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 수준을 제로(0) 수준까지 떨어뜨리며 갈곳 잃은 자금도 실리콘밸리로 쏟아졌다. 기술 기업들은 웃돈을 주면서까지 인력 유치에 공을 들였다. 아마존, 알파벳 등 주요 빅테크에서만 90만 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났고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완전한 언택트나 메타버스, 확장현실(XR)이 실현되는 건 여전히 먼 미래라는 자각도 찾아왔다. 기술 투자가 줄었고 클라우드 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구매는 위축됐으며 빅테크의 수익성도 악화됐다.

성장보다 생존이 중요해진 기업들은 재정비에 들어갔다. 과도해진 몸집을 줄이는 동시에 벌려놓았던 ‘미래 유망’ 사업을 축소해나갔다. 팬데믹 당시 급성장했던 비대면 서비스 줌(Zoom)은 2023년 2월 전체 직원의 15%에 해당하는 1300여 명을 해고한 후 1년 만인 지난 1일 재차 약 150명을 감원했다. 아마존은 팬데믹 때 과감하게 투자했던 스트리밍 사업과 약국 사업부 등에서 수백 여명씩 해고했다. 자회사 트위치도 최근 500명을 해고했는데 CEO인 댄 클랜시는 “사업 규모보다 회사 규모가 더 크다”는 말로 구조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②고금리에 급락한 주가···투자자의 거센 ‘개선’ 압박

아무리 수익성이 악화됐다지만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테크 기업의 해고 폭풍이 과도해보이는 측면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테크 기업들이 투자자들로부터 수익성을 좀 더 개선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기술 기업들의 성장은 벤처 투자가들로부터의 투자(차입)과 주식을 통한 자금에 크게 의존해왔다. 미국 기준금리가 2022년 1월 0~0.25%에서 1년 6개월에 걸쳐 5.25~5.5%까지 급격하게 오르는 동안 이른바 ‘고PER(주가수익비율)주’로 분류되는 미국 기술주들의 주가는 큰 타격을 입었다. 20년만에 최고 수준인 고금리 환경 속에서 기술 기업이 미래 벌어들인 수익은 크게 할인을 받았고 투자 가치 역시 급락했다. 실제 2022년 나스닥은 1만 5800선에서 1만 88까지 36% 가량 수직 낙하했고 고점 대비 주가가 반토막 아래로 내려앉은 기업들이 속출했다.

이미 덩치가 커질대로 커져 과거 같은 성장을 보여주기는 어려운데다 투자자들마저 테크 기업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상황에서 테크기업 경영진들은 과감한 결정으로 ‘우리가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했다. 깜짝 놀랄만큼 대담한 인력 감축을 통한 비용 절감 노력이 그 결과다.

그리고 전략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2일 발표된 메타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은 S&P500 기업들 가운데 가장 좋았고, 이날 메타의 주가는 20.32% 폭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아마존도 2023년까지 3만 5000여 명을 대량 해고하는 전략에 힘입어 지난해 4분기 멋진 성적표를 제출했고 주가 역시 오름세를 이어가며 전고점 돌파를 눈앞에 뒀다. 블룸버그통신은 메타와 아마존에 대해 “지난 16개월 간의 긴축 전략이 타당했음을 입증했다”고 분석했다.

③AI의 부상과 달라진 미래

또 다른 원인으로는 인공지능(AI)의 부상이 거론된다. AI의 발전으로 미래 일자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곳이 AI 개발에 매달려온 기술 기업들이라는 점은 어쩌면 아이러니하다. AI의 잠재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기술기업 경영진들은 미래를 더 빠르고 더 멀리 내다보며 인력 감축과 고용 동결에 나서고 있는 양상이다.

41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뉴욕 기반의 빅데이터 스타트업 데이터마이너(Datamine)는 지난해 11월 말 직원의 약 20%에 해당하는 150명을 해고하며 “AI 플랫폼의 급속한 발전”를 사유로 들었다. 글로벌 후불결제(BNPL) 시장을 선도하는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나(Klarna)의 공동창립자이자 CEO인 세바스찬 시미아트코프스키도 지난해 12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당분간 고용을 동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 기술을 쓰면 과거 많은 시간이 걸리던 일을 훨씬 더 빠르게 훨씬 더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고, 같은 일을 하는데도 더 적은 인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당장 채용하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및 알파벳 CEO/AP연합뉴스

AI가 우선순위가 된 것도 구조조정을 통한 인력 재편성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빅테크들은 분기마다 수천 명을 고용하는 대신 AI에 투자하는데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WSJ은 “AI를 자체 개발하는 기업은 (감원으로) 더 많은 투자를 할 여지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저커버그는 컨퍼런스콜에서 “AI에 대한 장기적이고 야심찬 비전에 투자하기 위해 직원을 해고하고 비용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 역시 지난달 사내공지를 통해 “우선순위(AI)에 투자하기 위한 역량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선택(감원)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④성장을 대체한 ‘효율’···나스닥의 新성공 공식

실리콘밸리의 대량 해고 사태가 시작된 초반만 하더라도 업계의 시선은 낙관적이었다. 부침이 많은 성장산업의 특성상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를 개선하고 금융환경 등이 좋아지만 다시 성장에 박차를 가하며 고용을 늘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년 넘게 이어지는 해고의 물결 속에 낙관론은 점차 비관론으로 번지는 중이다. 특히 빅테크 기업들이 성장보다 ‘효율’을 외치고 투자자 역시 구조조정을 악재가 아닌 호재로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실리콘밸리의 구조조정은 당분간 더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브라이언 올브라스키 아마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투자 대상에 신중을 기할 것이며,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구글도 직원들에게 올해 내내 해고가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역시 “우리는 더 간결한 회사로 더 잘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기술기업 경영진들이 해고를 망설일 이유가 사라지는 것도 해고 폭풍이 계속 불어올 우려를 남긴다. 과거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나쁜 신호로 감지할 것을 우려해 대량 해고를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 1200여 기업이 해고를 단행하는 상황에서 수익이 크게 나쁘지 않은 기업의 경영진도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방향을 고민 중이다. 또 기술기업의 구조조정은 오히려 월가에서 ‘좋은 결정’으로 호평받는 양상이다. 실제 2022년 시총 3분의 1이 사라졌던 나스닥은 2023년 43% 상승했다.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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