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쟁이" 비난 주고받는 마르코스-두테르테…두 가문은 왜 갈라섰나
장기집권 견제…정국 혼란 속 경제·안보 위기 우려도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위태로워 보였던 필리핀 두 정치 가문의 연합이 파열음을 내고 있다. 반목의 지점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개헌 추진이다.
이를 마르코스 대통령의 장기 집권 시도라고 보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그를 "약쟁이"라 불렀고, 마르코스 대통령도 이에 질세라 똑같이 응수하고 있다.
두 가문은 이제 남부 지역의 영토 분리를 놓고 충돌하면서 자칫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아찔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두고 중국과의 충돌이 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 가문의 충돌은 필리핀 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갈 데까지 간 두 가문
9일(현지시간) 현지 일간 필리핀스타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에 따르면 마르코스 대통령과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서로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두테르테 가문과 동맹을 맺고 202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한때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 사라가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됐지만 두 가문 간 동맹으로 사라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나섰다.
이런 동맹 관계에서 먼저 공격한 쪽은 두테르테다. 두테르테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시장을 지낸 남부 다바오시의 한 집회에서 마르코스를 향해 "마약중독자"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마르코스 대통령 역시 그 다음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발언이 "펜타닐 부작용 때문"이라며 "의사들이 그를 더 잘 돌봐주길 바란다"라고 맞받아쳤다.
이후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돌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남부 민다나오섬의 발전을 위해 분리 독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이에 "민다나오의 분리는 중대한 헌법 위반이다"라며 관련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고, 에두아르도 아노 국가안보보좌관도 "그 어떠한 탈퇴 시도를 진압하고 막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다"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마르코스 '헌법 개정'에 흔들리는 동맹 갈등의 중심에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개헌 추진이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시민혁명 이후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불리하다며 이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두테르테 측은 2028년 대선을 앞두고 마르코스 대통령이 6년 단임제로 제한된 대통령 임기를 연임제로 바꿔 장기 집권하려는 시도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두테르테 가문은 내년 중간선거와 2028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노리면서 공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또 마르코스 대통령이 두테르테와 달리 친중에서 친미 외교노선을 택하면서 지정학적인 불안이 커지자 이에 대한 불만으로 견제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커지는 경제·안보 위기
마르코스와 두테르테 가문의 갈등으로 경제와 안보 위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SCMP는 "현재로서는 마르코스-두테르테 갈등으로 경제가 즉각적인 희생양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시장은 불확실성을 기피하고 투자자들은 절실히 필요한 경제 개혁에 대한 희망을 저버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두 가문 간의 반목이 이어져 두테르테의 '분리 독립' 요구가 현실화되면 중국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두테르테 전 대통령과 재계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친미 외교 노선으로 필리핀이 지정학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고해왔는데, 양 가문 간 갈등이 격화할수록 마르코스 대통령이 일관된 정책을 밀어붙일 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아시아타임스는 전했다.
이에 월든 벨로 뉴욕주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SCMP에 "정부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 권력투쟁은 효율적인 행정과 경제 성장, 개발 촉진에 필요한 관심을 차단할 것"이라며 "자기 중심적인 엘리트들 간의 권력 다툼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평범한 사람들이다"고 꼬집었다.
jaeha6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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