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설날엔 특별한 의미가 있다?..."제국주의 위협을 막아낼 사상의 방패"[문지방]

김경준 2024. 2. 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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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설날, 즐겁게 보내고 계신가요? 설날이 주말인 탓에 짧아진 연휴를 아쉬워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하지만 음력 설이 연휴로 자리 잡은 지도 불과 35년밖에 안 됐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일제강점기 전통문화 말살 정책에 따라 음력설 대신 양력 1월 1일을 설날로 여겼기 때문이죠. 신정(新正)이라고 부르면서 말입니다. 그 신정 연휴가 없어진 것도 1999년이었으니, 24년밖에 안 된 얘기네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열린 학생소년들의 설맞이공연을 관람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정치적으로 유용한 양력설 중시하는 북한

하지만 북한에선 여전히 음력보다 양력설을 중시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정치적 이해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양력 설은 '지난해를 평가하고 새해의 목표를 향해 인민들을 다그치는 날'로 정치적 의미가 큽니다. 북한 주민들이 읽는 노동신문은 몇 날 며칠을 할애해 최고 지도자의 신년사와 새해의 지향에 대한 결의를 보도합니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올해 1월 1일 자 노동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경축대공연 관람, 축하연설, 주요 지휘관 회의 등의 기사로 도배됐습니다. 지난해 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대해, 노동신문은 이례적으로 12월 31일 자로 보도했습니다. 예년엔 1월 1일 자로 내보냈었죠. 하지만 노동신문이 연초 김 위원장의 연설 내용을 재차 강조한 기사들을 잇따라 보도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연설에서 군 정찰위성 발사 성공 등 2023년 국방력 강화 성과를 선전하며, 남북관계를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고 2024년 과업으로 '남조선 전 영토 평정을 위한 대사변 준비'를 제시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서해 포격, 수차례 순항미사일 발사, 핵어뢰 시험 등 다양한 도발을 일삼고 있습니다.


체제 유지에 무용한 명절… 김일성 "봉건 잔재"

그렇다면 음력 설은 어떨까요? 김일성 주석은 1967년 "봉건 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이유로 양력설을 제외한 나머지 명절들을 모두 철폐했습니다. 북한에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거나 백두혈통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날이 아니라면 민속 명절들은 정치적으로 쓸모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이유로 설날이 수난을 겪은 것이죠.

공휴일을 살펴보면 북한 기념일의 지향점이 드러납니다. 지난해 북한의 공휴일은 총 18일인데, 이 중엔 김정일 출생일(광명성절·2월 16일), 김일성 출생일(태양절·4월 15일), 김정일 선군정치 개시일(선군절·8월 25일)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밖에도 건군절, 조선소년단 창립일,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 정권 수립일, 노동당 설립일 등이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세계여성의 날과 24절기 중 청명도 포함됐다는 점입니다. 어찌 됐든 연휴를 제외한 공휴일 종류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11일보다 훨씬 많습니다.

1965년 1월 1일 어린이 설모임을 찾은 김일성 주석이 박수를 받고 있다. 노동신문

사회주의권 몰락에 위기감… 민족 강조하며 부활한 '설날'

북한이 음력설을 부활시킨 건 1989년입니다. 추석을 명절로 허용한 이듬해 연달아 이뤄졌습니다. 김일성이 봉건 잔재라며 철폐했던 명절이 왜, 어떻게 되살아난 걸까요? 북한 연구자들은 이를 북한의 정치적 선택이라고 분석했습니다.

1980년 말 사회주의 국가들의 급격한 변화로 체제 유지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북한은 변화를 추구하는 외풍을 차단하기 위해 '우리민족제일주의'를 들고 나서게 됩니다. 1985년부터 민족주의를 새롭게 정의·해설하는 논문이 대거 출판되더니, 1986년 7월 김정일은 담화를 통해 '우리민족제일주의'를 공식화했습니다. 민족을 중시하려다 보니 봉건 잔재였던 음력설도 민족 명절로 재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80년대 말 북한이 민족 개념을 통일·한반도 문제로 확장시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시절 최초로 김일성과의 남북정상회담 논의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북한의 이 같은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던 셈이죠.

90년대 들어 북한은 1991년 소련 붕괴, 1994년 김일성 사망, 1996~99년 '고난의 행군' 등을 거치며 북한식 민족주의를 체계화시켜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달리, 우리는 위대한 김일성 수령을 모신 제일의 민족이므로 끄떡없다'는 체제 수호 전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노동신문은 2005년 2월 10일 자 음력설 보도에서 김일성 동상에 헌화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 사진을 실었다. 노동신문

2005년 '민족 명절' 격상… 반미·반제국 방편

2000년대 들어 북한의 음력설은 또 한번 위상을 업그레이드합니다. 2005년 노동신문은 처음으로 음력설을 언급했습니다. 나아가 그 중요한 양력설을 '새해 명절'로 음력설을 '민족 명절'로 표현했습니다.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여기엔 제국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2005년 2월 9일 자 노동신문은 '언어사멸의 방지, 민족어 수호를 위한 투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제국주의자들의 언어의 '세계화' 책동은 각이한 민족들을 없애버리기 위한 민족사명화책동이다"라고 보도했습니다. 같은 날 또 다른 기사에서는 "세계화의 간판 밑에 지구상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퇴폐적인 미국식 생활양식이 야속민족들의 민족적 전통의 장벽들을 여지없이 허물고 있다"며 미국 문화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989년 음력 설의 부활이 사회주의권 붕괴로부터 북한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2005년 '민족 명절' 격상은 미국 등 제국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사상적으로 북한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던 셈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근 선대가 쌓아 올린 민족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에 나섰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와 더 이상 동족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통일', '민족' 개념을 빠르게 지워나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제2의 건국'을 위한 포석으로 분석하기도 합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음력설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상기시키는 매개체로 사용됐다'는 연구 결과에 비춰보면, 머지않아 북한에서 음력설은 또다시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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