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당원, 자가 보유, 외동”…중국 공원에 공개 구혼 수천장
허모씨, 여성. 1979년생 키 165. 미혼. 외동딸. 신체건강. 베이징쟈오퉁대 석사, 해외 석사(공상관리MBA), 국영기업 청두 지사 근무. 집·차 있음. 부모 모두 퇴직. 부모 연락처 000 0000 0000.
*원하는 남성 : 40세 이상 키 170 이상. 학사 이상으로 미혼이거나 이혼했더라도 아이 키우지 않아야 함.
여성. 미혼. 1990년 8월생 키 161. 미혼에 인품 좋고 건강함. 단정하고 성격이 좋음. 대학 졸업하고 청두의 외국 기업에 근무. 청두시에 집 있고 대출 없음. 부친은 중학교 교사이고 모친은 국영기업 퇴직함. 가정이 화목함. 부모 연락처 000 0000 0000
*원하는 남성 : 미혼에 1985~1991년생, 키 173 이상, 대졸 이상 학력에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인품이 좋으며 밝고 책임감 있고 신체 건강하고 나쁜 취미가 없어야 함. 청두에서 근무하고 자가 보유해야 함. 부모 모두 솽바오(사회보험과 의료보험 등 두 개의 보험) 있어야 함. 다른 사항은 논의 가능.
여성. 미혼. 1991년 1월생. 키 168㎝, 55㎏. 영국에 유학해 두 개의 석사 학위 있음. 국가 인증 회계사. 중국석유 중앙재무 회계 담당. 근무지에 차와 집 있음. 이혼 가정 아님. 형제자매 없음. 부친은 재직 중이고 모친은 퇴직함. 부모 연락처 000 0000 0000
*원하는 남성 : 석사 이상 학력에 청두에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 남성. 키 173 이상, 1985~1990년생의 우수한 남성. 부모 모두 솽바오 있어야 함.
남성. 이혼. 1984년 11월생. 키 170. 외아들. 대졸. 외국 기업 컴퓨터 분야. 재택근무. 연수입 30만위안(5600만원). 청두에 온 지 반년 됐고 정착 계획 있음. 저금은 있지만 아직 자가는 없음. 깨끗하며 단정. 술·담배 안 함. 식사와 운동 중시하고 건강함. 온화한 성격에 노인을 존경함. 6개월 결혼 생활했고, 자식 없음. 부모는 허난성에 있으며 퇴직함. 부모 연락처 000 0000 0000
*원하는 여성 : 1988년 이후 생. 키 158 이상. 대졸 학력 이상. 청두에서 직장생활. 깨끗하고 술·담배를 안 해야 함. 너그럽고 대화가 잘 통하며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폭력 성향이 없어야 함. 효심이 있고 부모의 기본이 갖춰져야 함.
남성. 미혼. 1974년생. 키 170. 고졸. 청두에 집 있고 대출 없음. 신체 건강하고 성격 좋음. 본인 연락처 000 0000 0000
*원하는 여성 : 1981년 이후생. 열심히 살고 효심과 책임감이 있어야 함.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어야 함.
지난 6일 오전 중국 쓰촨성 청두시 런민(인민)공원 한쪽에 결혼 상대를 찾는 내용이 적힌 구혼 서류들이 수 천장 붙어 있었다. 분홍색 종이는 여성 쪽, 파란색 종이는 남성 쪽이 붙인 것으로, 분홍색 서류가 7 대 3 정도로 더 많았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에는 딸이나 아들의 짝을 찾으러 온 듯한 이들과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로 붐볐다. 자신의 짝을 찾는 것으로 보이는 청년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결혼을 연결하러 나온 중매쟁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 중년 여성은 기자에게 다가와 “어떤 여성을 찾느냐. 공원 앞에 사무실이 있는데, 거기 좋은 여성 명단이 있다”고 했다. 그는 명단을 보는 것은 무료이고, 직접 만나려면 2천 위안(37만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서류에는 구혼 당사자의 나이와 키, 몸무게, 결혼 경력, 형제자매, 학력, 직장, 자가·차 보유 여부, 성격, 건강 상태는 물론 부모의 직장, 부모의 보험 보유 여부 등 다양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원하는 상대에 대해서는 나이와 키, 학력, 직장, 재산, 성격 등의 조건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서류의 마지막 부분에는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었다. 1970~1990년대생 남녀가 대부분이었고, 드물게 1950~1960년대 생으로 노년의 동반자를 구하는 경우가 있었다.
구혼 서류를 붙이는 이들은 대부분 당사자의 부모였다. 여성들의 구혼 서류에는 거의 모두 부모 연락처가 적혀 있었고, 남성 역시 20~30%만 본인일 뿐 나머지는 부모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구혼 서류를 붙이는 이들이 짝을 찾는 이들의 부모이듯, 이를 확인하러 오는 이들도 거의 부모 세대로 보였다. 한 중년 여성은 “종종 구경 오는데, 부모가 자식 몰래 구혼 서류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성 쪽이 그렇다”며 “부모가 서류를 확인하고 사전에 만난 뒤 맘에 들 경우 자식에게 만나도록 한다”고 했다.
“(공산)당원에, 집이 있고 차도 있는 여성들이 많네.”, “학력도, 직업도,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좋아 보인다.” 이곳을 한참 둘러보던 관광객 차림의 여성들이 주고받은 대화이다.
이들의 얘기처럼 학력과 직업, 재산 등이 좋은 여성들이 상당히 많았다. 석사 이상 학력에, 국영기업이나 외국 기업에 근무하고 집과 차를 가진 여성들이 상당수였다. 당원임을 밝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반면 남성 가운데는 고졸이거나 전문대를 졸업한 이들이 꽤 있었다. 직업을 회사원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적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남성 중에도 석사 이상 학력에 집과 차를 보유한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본인이 당원이라는 것을 밝힌 이들은 거의 없었다.
공개 구혼서를 통해 현재 중국인들이 어떤 결혼 상대를 원하는지, 중국인들이 어떤 사회·경제적 조건을 중시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다만 공개 구혼서가 부모에 의해 작성된 것이 많아, 상대적으로 장년·노년층의 시각이 더 많이 반영됐을 수 있다.
우선 나이와 키, 학력, 직장, 재산, 외모, 성격 등은 한국과 비슷한 조건을 원하는 것으로 보였다. 짝을 찾는 여성을 기준으로, 남성의 나이는 5살 이내 연상이어야 하고, 키는 170㎝ 이상을 원했다. 또 안정적인 직장에 자가를 보유해야 하고, 원만한 성격을 가진 상대를 찾았다. 짝을 찾는 남성의 경우 상대적으로 요구 조건이 적었다. 본인보다 2~3살 이상 연하여야 하고, 단정한 외모에 상냥한 성격을 요구했다. 일부 남성은 효심이 있고, 출산 생각이 있는 여성을 원했다.
중국만의 독특한 조건도 눈에 띄었다. 우선 자신이 공산당원임을 밝힌 경우가 있었다. 공산당 가입은 중국 사회에서 엘리트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이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산당원은 중국 전체 인구의 14분의 1인 1억명 정도이다.
또 구혼 당사자의 형제자매 여부를 밝힌 경우도 많았다. 주로 형제자매가 없는 ‘독자’라는 사실을 강조했는데, 이는 부모의 유산 상속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부모의 직장 재직 여부와 보험 여부를 밝힌 경우도 꽤 많았다. 직장에 재직하고 있거나 양로 보험 등이 있는 경우 부모에 대한 부양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 블로그 등을 보면, 청두 런민공원의 공개 구혼 문화는 2005년께 이곳에 자주 놀러오던 부모들에 의해 시작됐다. 인터넷이 활성화하고 결혼 중계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생겼지만, 이곳은 여전히 자식 결혼을 걱정하는 부모들이 애용하는 공간으로 남아있고, 관광 명소로도 주목받고 있다. 청두 외에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 등 중국 대도시의 공원들에 이런 장소가 있다.
중국은 출산율 감소와 함께 결혼을 꺼리는 현상이 심각하다. 중국의 결혼 건수는 2013년 1347만건에 달했지만, 2022년 683만 건으로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청두/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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