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기피 이유는 ‘법적 분쟁’? 의대생 세미나 가보니
3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의 한 강연장. 의과대학 학생 72명이 ‘필수의료 진로 세미나’를 듣고 있었다. 어느 과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의대생들을 위해 의대생단체 ‘투비닥터’가 주최한 행사다. 응급의학과와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4과목의 대학병원 교수와 개원의가 나와 의대생들에게 각종 정보를 줬다. ‘수련·업무 강도’ ‘업무 만족도’ ‘법적 분쟁’ ‘전망’ 등을 이야기하고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다. 과목당 1시간씩 총 4시간 진행됐다.
이날 세미나를 들은 대부분이 20대 초중반 의대생이었다. 군의관, 공보의 등도 있었다. 투비닥터 측은 “필수의료를 이루지만 ‘기피과’로 불리는 과목들을 주제로, 학생들의 진로 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했다”고 밝혔다.
세션에서는 공통적으로 필수 의료진들이 겪는 ‘법적 분쟁’에 대한 우려가 많이 제기됐다. 심보선 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료진이 최선의 노력을 했음에도 환자가 사망했을 때 책임을 의료진에 물으면 중증 환자를 살리려는 의료진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양임용 소아과 전문의는 “상급병원으로 갈수록 법적 분쟁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불가항력적 사고에 의사가 보호받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고 했다.
의대생들도 “고령 산모가 늘어나는 가운데, 노산 산모의 분만 과정에서 생기는 소송 리스크”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도움받을 수 있는 법” 등 법적 분쟁 관련 질문을 수차례 했다. 지난 5일 의료정책연구원 ‘의과대학 정원 및 관련 현안에 대한 의사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의사 4010명 중 1445명(36%)이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근본적 원인으로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 부재’를 꼽았다.
각 과목별 적합한 MBTI나 성격, 역량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T(사고형)와 F(감정형) 중 소아과와 어울리는 MBTI 특징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한 소아과 전문의는 “T 같은데 실제로는 F인 사람. 필수의료를 다루는 대부분 과가 그런 것 같다” 답하기도 했다. 이밖에 “외과 의사를 하려면 손재주가 타고 나야 하는지” “저출생 시대에 산부인과와 소아과의 전망은 어떤지” 등의 질문도 나왔다.
필수 의료를 기피하는 분위기는 여전했다. 의대생 신모(23)씨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치료를 하는 필수의료 분야로 가고 싶지만, 주변에는 비교적 근무 강도가 낮은 과를 고르는 친구들이 6대 4(필수의료) 정도로 대부분”이라고 했다. 의대생 류모(24)씨는 “산부인과를 희망하지만, 주변에선 ‘남들이 안 하는 덴 이유가 있다’ 등의 말을 한다”고 했다.
정부는 6일 올해 고3이 치르는 2025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린다고 발표했다. 5년간 최대 1만명의 의사 인력이 확충될 것으로 보고 있다. 늘어난 의대 정원은 비수도권 의대를 중심으로 배분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1일에는 필수의료 분야 붕괴를 막기 위한 대책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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